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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되다
<이 언니의 귀촌> 유목민의 村스런 체류기(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여자들을 위한 민박이 있다면 좋겠다’

 

가평으로 이주하면서 주 40시간 전일제 노동 시장을 떠나기로 이미 마음먹은 터, 다양한 방식의 먹고 살 길을 개척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막연하게, 혹은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이 많아지면서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숙소가 참 별로 없구나’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햇볕과 바람 내음이 기대된다.   ©펭 
 

서울에서 여생을 다 보낼 마음도 없었던 터라 ‘언젠가’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는 시골집살이를 꿈꾸며 막연하게 ‘여자들을 위한 민박’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쉽게 말해, 누구나 한번쯤은 해봄직한 생각,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게스트하우스나 하면서 살아볼까?” 그런 정도였던 거다.

 

게다가 구체적인 생각이란 훨씬 더 간단했다. 햇볕이 꽉 찬 마당 가득히 천을 빨아 널고 바람에 넘실대는 것을 보며 나는 절대 대청마루에서 책은 읽지 않고 꼭! 낮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 한숨 자고 일어나서 천을 걷고 개켜 넣기 전에 꼭! 햇볕과 바람 내음을 맡아야지 하는 생각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막연하면서도, 엉뚱하게 구체적이었던 생각을 불현듯 실행에 옮기게 된 건 ‘둘이 살기에 너무 너르고, 난방비 걱정이 태산인, 조금쯤 적적할 법도 한 집’을 얻게 되면서부터다.

 

게스트하우스 = 난방비 벌이

 

첨에 지금 사는 집을 소개받았을 때 첫인상은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집이었다. 일단 둘이 쓰기에는 너무 넓었다. 청소는 어떻게 할 것이며, 난방비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또, 산을 깎아 낸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에 비슷하게 들어앉은 집들이 있는 주변 환경 때문에 ‘투자’인지 ‘투기’인지 뭔지 모를 달갑지 않은 냄새가 풍기는 멀끔한 ‘전원주택’이었다. 나름 환경과 자연을 아끼며 살고 싶었던 지라, 자연을 훼손해 가며 지은 집에 산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제법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딴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미 지어진 집이다. 누가 어떻게 쓸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가진 자들이 가끔 쓰려고 크게 지어놓은 별장이 될 바에야 누구라도 들어가서 살면서 좋은 공간을 남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공간을 낭비하지 않고 쓸모 있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너른 공간을 공유하며 햇볕과 바람,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즐길 수 있다고. 이렇게 애써 장황한 정당성을 찾고 나니 비로소 흐뭇해졌다.

 

▲  손님이 남긴 흔적. "더울때는 바닥에 납작 누워 낮잠 자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햇볕에 잘 마른 시트를 접자. 햇볕 냄새는 덤으로." © 펭 
 

가족과 연인들의 ‘천국’인지 ‘천지’인지, 삼척동자도 어른들 손에 이끌려 한 번쯤 다녀갔을 법한 이름난 휴양지 가평. ‘촌’에 걸 맞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가평은 ‘촌’으로 이주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타 지명들과 다른 느낌이다. 가족 단위가 휴양을 위해, 혹은 남녀 연인들이 둘만의 공간을 찾아 떠나올 법한 장소들이 즐비한 곳, 아니면 대학생 엠티 장소, 그것이 대체로 가평에 대한 짙은 인상이다.

 

그런 이미지 탓에, 홀로 여행하는 여성이나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 여자들이 절대 혼자 갈 법한 곳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가족과 남녀 연인들의 휴양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가평에 혼자, 혹은 둘이 온 언니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을 터이므로. 또 ‘가족과 남녀 연인’이라는 뻔한 공식을 깨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라고 하지만 손님을 받는 날보다는 안받는 날이 더 많고 주인장의 사정으로 쉬는 날도 부지기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라고 하여 우리가 굉장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적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람을 기피하고 칩거 생활을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낯을 좀 가리고 나름 까다로운 인간인 편이다.

 

우리는 노동보다는 쉼과 놀이를 중심으로 살고 싶었다. 난방비를 충당할 정도의 적당한 수의 손님이 목표였고, 과도한 노동은 절대 삼가고 싶었다. 그런데, 언니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싶은 욕심에 청소와 빨래, 정리 등 게스트하우스 관리를 위한 노동은 언제나 지나쳤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적당함’을 찾기 위해 즉, 손님들에게 쾌적하면서도 우리가 과도한 노동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기준을 찾기 위해 온갖 궁리를 했다.

 

다른 종류의 단시간 노동도 겸하고 있고, 우리도 충분히 쉬고 놀아야 한다. 매달 손님을 받는 날을 최소로 정하고 그 날에만 손님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가끔 예외는 있다. 한번은 여자 둘인데 묵을 수 있냐고 전화가 걸려왔다. 하필 그날은 쉬는 날이었고 그래서 안 된다고 하고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저희가 중고등학생이라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이런 경우에는 딱 자르기가 어렵다.

 

햇볕 중독의 나날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햇볕에 천 말리고, 낮잠 자고, 말린 천에서 나는 햇볕과 바람 내음을 맡는 것’이었던 만큼, 게스트하우스 관리 노동에서 제일 신경을 쓰고 열심히 즐겁게 하는 일은 빨래와 청소 그리고 햇볕 소독이다. 종종 ‘햇볕에 천 말리는 즐거움 때문에 민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햇볕&자연바람 건조 서비스를 하는 세탁업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과장된 생각도 든다.  

 

▲  비단 나만 햇볕 중독은 아닌갑다. 빨래널기에 빠진 일군의 손님.   © 펭 
  

햇볕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늘 햇볕이 넘치는 데도 볕만 들면 뭐든 내다 말리고 싶어진다. 빨래는 당연하고 이불도 수시로 말리고, 행주와 걸레도 소독하고, 수저도 말리고, 도마와 칼도 내다 말리고, 가끔은 무거운 침대 매트리스도 내다 말린다. 볕만 보면 ‘오늘은 뭘 말리지?’ 거의 무조건반사다.

 

햇볕은 중독성이 있는 만큼 치명적인데, 자주 내다 말리는 천을 삭혀버리기도 하고 물건을 탈색시키기도 하지만 ‘볕바라기’를 멈추기 어렵다. 심지어 나 자신을 빨래 줄에 대롱 대롱 말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물론, 햇볕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손님들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아무리 가평이 가족과 남녀 연인들 천지라 해도, 혼자거나 둘이 여행하는 언니들이 어디에나 있듯이, 이곳이라고 없겠는가. 전세계 자유영혼들이 출몰하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십 년 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매력 가득한 언니들도 꽤 가평을 찾는다. 손님들을 만나고 그들이 사는 세상, 나에게는 조금 낯선 세계와 그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 즐거움이다.

 

꼼지락 꼼지락 ‘손놀이’ 공작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를 함께 도모하는 것 역시 기쁨이다. 매년 봄이 되면 손님들과 함께 봄나물을 채집해 먹는다. 가평살이 첫해, 주변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새싹들을 보며 연신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묻는 내게 양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풀들을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독초도 아주 어린 새싹이면 독이 생기기 전이라 먹을 수 있다”고.

 

사실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먹을 게 많다는 얘기 아닌가. 나물이 지천이니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나물로 밥상을 차려먹자. 자연 채집에서 섭취에 이르는 전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해보는 재미를 챙겨보자는 취지로. 그렇게 일명 ‘봄소밥-봄나물과 함께 하는 소박한 밥상’을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뜯어먹을 수 있는 나물은 굉장히 빈곤했다. 나물도감을 들고 산으로 들로 나가 사진과 일일이 비교해봐도 당최 알 수가 없다. 역시 이런 건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산 지식인 모양이다. 첫해 밥상에는 쑥, 돌나물, 망초나물, 고들빼기, 그리고 야생 미나리. 지나가던 동네 반장님이 우리의 수확량을 안쓰러워하시며 한 대야 뜯어주신 미나리가 아니었다면 허기를 달래기도 어려웠을 뻔했다.

 

해가 거듭되어 이제는 좀 나아졌다. 봄나물 뜯으러 가면 아는 척도 좀 한다. 가끔은 취나물, 머위나물, 가시오가피 새싹도 뜯어먹을 줄 알고, 이 녀석들을 다 뜯어먹지는 말아야 다음해 그 자리에 또 자란다는 것도 안다.

 

쉬는 날이 많지만 추석, 설날 등 명절에는 꼭 손님을 받는다. 명절이라고 모두가 ‘고향집’에 가거나 ‘고향집’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건 아니다. 집에 가기 싫거나 혼자 있기 적적해 하는 언니들을 위해 명절은 꼭 ‘대피소’가 필요하다. 이렇게 모인 언니들과 밤을 깎아 송편을 빚어먹거나 만두를 빚어 만둣국을 끓여먹는다. 자기가 먹을 개수만큼만 빚으면 된다고 하지만 모처럼 해보는 손놀이와 수다에 언니들은 그칠 줄 모르고 어느새 반죽은 다 떨어지고 만다.  

 

▲   한여름 어느날,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면생리대 만들기에 몰입 중.  © 펭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쉬러 온 언니들과는 꼼지락꼼지락 면생리대를 손바느질로 만들기도 한다. 면생리대를 이미 사용하는 언니들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언니들도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 이틀 꼬박 면생리대 만들기에 심취했던 언니와 똑딱이 단추를 보내 온 언니.

 

이미 면생리대를 사용해 온 첫 번째 언니는 두레 생협에서 산 면생리대가 다 떨어졌다며 머무는 이틀 동안 면 생리대를 무려 다섯 개나 만들었다.

 

다른 한 명은 면 생리대를 처음 접해 본 생리통이 무척 심한 언니였다. 집에 돌아간 후에 자기 몸에 맞게 스스로 면생리대 패턴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단다. 완전 ‘면생리대 전도사’가 돼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똑딱이 단추를 한 묶음 보내왔다. “우리와 함께 면생리대 만들 때 똑딱이 단추가 모자랐던 게 생각나서 자기 것 살 때 좀 더 샀다”면서.

 

나도 가끔 머리 속이 복잡할 때는 면생리대를 만든다. 바느질은 정신을 정화시켜주는데 효험이 있다. 일단 바늘에 찔려 피 보지 않으려면 딴 생각은 금물이다. 반복적으로 한 땀 한 땀 나아가다 보면 좀더 일정한 간격의 바늘 땀에 욕심이 나고 몰입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여러 명이 둘러앉아 바느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공동의 적에 대한 뒷담화. 자매애도 나누고 정신건강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비혼 촌(村)여자의 이웃들

  

▲  동네 양언니가 남긴 끄적거림.   © 펭 
 

비혼 여자로 이곳에 살면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다지 불편한 점은 없었다. ‘촌’으로 이주할 때 가장 골칫거리가 되는 문제 중에 하나는 ‘사생활 침해’다. ‘거리 두기’가 익숙하지 않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신경 써주는 농촌 ‘미덕’에 맞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불쑥 거리를 좁혀 ‘참견’해 들어오는 통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의 첫 이웃들은 아직 농촌의 ‘미덕’을 쌓지 못한, 다소 ‘도시 때’가 많이 남아있는 새내기 ‘촌’ 이주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사생활을 침해 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여러 세대가 빽빽이 들어차 살던 다세대 주택에 살 때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이웃을 아는 즐거움이 있었다.

 

명절이거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식을 나눠주고, 잡초만 무성한 우리 텃밭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도 “뭐 그렇게 키울 수도 있지, 자꾸 하다 보면 알게 된다”며 우리를 좌절시키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아랫집 중년 부부. 항상 과하게 주문한 홈쇼핑 상품들을 나눠주던 건넛집 언니.

 

이사 온 첫해. 그 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눈을 치웠던 것 같다. 겨울이면 으레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 기온 때문에 눈을 즉시 치우지 않으며 큰 낭패가 된다. 건넛집 언니는 눈치우기에 항상 앞장이었다. 아침마다 차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큰 창 덕택에 집안에서도 눈 치우는 언니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나도 눈삽을 들고 나선다. 곧 아랫집 아주머니도 나오신다.

 

100미터가 넘는 내리막 길의 눈 치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셋이서 서로 도와가며 눈을 치우다 보면 추위는커녕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끔은 남정네들이 다 일찍 일하러 나가버리는 바람에 매번 ‘힘 없는 여인들’끼리 눈을 치워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누군가 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웃‘언니’들과 눈 치우는 일이 즐거웠다. 이웃끼리 공동의 편의를 위해 함께하는 소소한 즐거움.

 

물론, 결혼에 대해 묻거나 여자끼리 사는 것에 대한 호기심 섞인 내색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결혼을 지상 최대 과제로 우리에게 짐 지우려 하지 않았을 뿐. 다소 어려 보이는 덕에, 결혼할 나이로 안 보였던 탓(?)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거나.

 

한번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결혼은 안 하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 아들도 마흔이 넘어 결혼해서 얼마 전에야 아기가 태어났다”하시며 “요즘은 결혼도 늦게 하고, ‘능력’만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건넛집 언니는 종종 “친구끼리 그렇게 사는 게 부럽다. 자기도 결혼 안하고 그렇게 살걸 그랬다”고 하다가도, 어떤 때는 “그래도 남자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건네기도 했다. 결혼을 한 사람도 결혼 생활에 대한 의견이 뒤죽박죽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비혼 여자로 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약간은 ‘생소한’ 모습으로,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뒤죽박죽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양 언니의 “사는 모양새가 남과 같지 않고 생소한 것이 신선하다”는 말을 애정 어린 응원이라 믿고, “놀 궁리만 하는 게으른 년”이라는 ‘비난’을 그 언니의 부러움이라 해석하며.

 

도시사람도 아니고 촌사람도 아닌 생소한 모양새로 살아가는 지금, 딱 좋다. 가끔 잊지 않고 들러주는 게스트하우스 단골친구들도 있다. ‘고립감’보다는 반촌의 ‘이중생활’이 주는 만족감이 더 크다. 그래서 인근에 집이 나올 때마다 지인들을 열심히 꼬셔보았다. 가평 와서 살자고. 혼자가 아니니 재미날 거라고. 아직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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