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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하기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16. 불편한 질문들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왜 ‘누나’는 기억하고 ‘소녀상’은 치워야 해?
연말 가족휴가 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 뉴스를 접했다. 우리 부부는 있는 욕, 없는 욕을 쏟아내며 휴가를 보냈다. 아들은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잠잠히 있더니 휴가에서 돌아온 다음날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엄마, 일본이 또 쳐들어온대?” 아, 그건 아니다만.
그날부터 나는 며칠 째 아들에게 일본군 ‘위안부’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녀석은 그저 무심한 듯 시크하게, 현실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구분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덜컥덜컥 질문을 쏟아내고, 이에 나 혼자 진땀 빼고 있을 뿐이다.
‘왜 전쟁하는데 여자들을 끌고 가?’ ‘아니, 그건 성폭력이잖아. 성폭행하면 감옥가야지, 그 군인들은 감옥 갔어? 군법에 의해 다스려야 하느니…(사극 톤으로. 육룡이 나르샤 오마주)’, ‘근데 왜 전쟁에 성폭행이 필요해?’ ‘우리 대통령(?)은 보고만 있었어?’ ‘완전 병탄 당했구만(역시 오마주)’, ‘그래서 정확히 어디로 끌고 갔는데?’ ‘그렇게 멀리까지? 압록강을 건넜단 말야? 회군했어야지(육룡이)’, ‘위안소는 나치 유대인수용소 같은 거야?’ ‘그나저나 전쟁은 왜 시작한 건데?’
이번 한일외교장관회담 합의 내용도 전했다. 아들의 반응을 요약하자면 ‘다신 이 일을 꺼내지 말라며 사과했다니, 그건 조폭이거나 사기꾼’이라는 거다. 평화의 소녀상을 치우라는 조건까지 있었다고 말하자 “그걸 왜 치워? 그게 할머니들이라며. 그리고 얼마 전에는 그 할머니, 아니 그 소녀? 누나? 그거 꼭 기억하라며. 교과서에 넣어서.” 뭐? 교과서? 나는 잠시, 무슨 말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또 뒷목을 잡고.
맞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유관순도 알지 못한다며 공익 광고를 내보내던 정부였다. 물론 그들은 유관순을 저항운동가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민족 감성을 자신들 편의대로 이용하고자 불러내었던 것이지만. 그런 서사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는 나로서는 별로 모순적일 일도 없었던 연말의 한일 합의였으나, 아이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인가 보다.
아들은 왜 ‘누나’는 기억해야 하는데 ‘소녀상’은 치워져야 하는지 도통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급한 불을 끄듯 답해주고는 있지만, 질문 공세에 치여 며칠 내로 ‘신이 우리를 버렸나봐’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몰려있다.
‘네 딸과 네 아내에게 똑같이 해주마’
안 그래도 심정이 좋지 않은데 이에 기름 붓는 이들도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다.
1월 첫 주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1,2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사람들은 한일 합의 내용에 반대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다. 이에 질세라 어버이연합도 등장했다. 특히 그날의 시작을 연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말이 참으로 충격적이라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는 일본을 두둔하는 게 아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이렇게 보복을 하고 싶은 게 저희 보수단체들입니다. 말 그대로 일본여자, 말 그대로 우리가 위안부 끌려가듯이 그것들도, 우리도 끌고 와서 그 짓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 보수단체의 생각이고…”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이번 합의 내용은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보다 며칠 전에는 엄마부대도 나선 바 있다. 그녀들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정신 승리’를 강조하며 이번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이 거침없는 발언만큼이나 엄마부대를 향한 비난에서도 불편한 말이 많았다. “너희는 엄마 자격도 없다”는 말은 이제 귀여운 수준이다. “네가 가라 위안부”, “당신들이 진짜 창녀다.” 하물며 “엄마부대 모두 지금 독일로 보내버려, 성폭행 당하게 하자”(독일 쾰른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시점이었다)는 글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한일 합의에 찬성하는 사람이건 반대하는 사람이건, ‘너와 네 딸과 그리고 네 아내에게 위안부가 당한 것처럼 똑같이 해주마’ 식의 보복성 말들이 넘실댔다. 그런 말들의 대부분이 성적 위협이라는 사실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진실로 난망하다는 것을 예감하게 한다.
너무 식상한 말이라 여겼는데, 이런 반응들을 보고 있자면 절실한 한마디는 여전히 이것이구나 싶다. ‘여성은 그 누구의, 그 무엇의 소유물도 아니다.’ 여성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나라의 외교적 힘을 가늠할 바로미터도 아니고, 어느 아버지나 오라비의 재산도 아니다.
자녀에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건가
▲ 1992년 1월 8일,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첫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혹시 아들 성교육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오히려 긴밀하게, 핵심적인 문제들을 폭발적으로 터트리는 사례이기에 아무도 쉬이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여성’의 이야기이자 ‘민족’의 이야기이다. 이 둘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민족’이란 것이 어떤 남성성/여성성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 식민화된다는 것의 실질적 맥락과, 식민주의의 상흔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탈(脫)식민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와, 젠더와 결부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복잡한 질문들이 동시에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여러 이유들을 댄다. 민족의 ‘수치’를 어떻게 애들에게 이야기하겠냐는 케케묵은 생각부터, 아이들의 밝은 미래 앞에 전쟁과 같은 어두운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다는 쿨(cool)내 진동하는 이야기들까지. 설사 이야기 한다 해도 한일전 축구인 것마냥 이상한 승부 근성과 결부시켜 말하기도 한다. ‘성’적인 부분 때문에 아이가 더 커야 이야기하겠다는 사람도 숱하다.
나는 이런 모든 이유들이 그저 핑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다양한 핑계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전혀 보듬지 못한다. 차라리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바가 없고 고심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당신이 아는 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자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자. 며칠간 나는 이에 대해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아무도, 여전히, 사과하지 못했다
괌, 사이판, 팔라우, 하이난, 오키나와, 민다나오, 세부, 라바울… 이런 지명들을 아는가? 최근 핫하다는 풀빌라와 리조트가 가득한 해양 휴양지 위주로 적어봤다. 이곳 중에서 가족휴가를 다녀왔던 추억이 있는 장소가 있는가? 모두 ‘위안소’가 있던 곳이다. 어디 이 곳뿐이랴. 우리는 여성들이 왜, 어디로 끌려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잘 모른다. 그저 그녀들이 당해야 했던 행위들만 기억한다.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는 성적 행위라는 자극적 사건 앞에서 뭉뚱그려졌다.
조선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적, 민족, 종족의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곳에서 뿌리 뽑혀 물설고 낯설다는 이런 곳들로 흩뿌려졌다. 전선의 이동과 함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섬에서 저 섬으로, 군이 이동하는 만큼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왔을까? 돌아올 수 있었던 이들은 몇이나 될까? ‘귀향’이라는 짧은 단어 안에 넣을 수 없을 그 여정을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아들의 많은 질문 중 내 말문을 막히게 한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들은 다 데려왔어?”
고맙구나, 물어봐줘서. 미처 생각 못했다. 과연 누가 그녀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데려오려고 노력이나 했던가. 오히려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그나마 이 사실은 아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수치스러운 역사이기에,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그녀들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었다고. 몸 버린 창녀라며 손가락질하고 배척했다고. “우와, 그럼 그 사람들도 사과해야겠네.”
그렇구나. 우리는 아무도, 여전히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우리가 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하는지 생각해보자. 그 이유 중 하나에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이제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함부로 그런 식의 비난을 하는 이는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많은 댓글들에서 ‘너도 당해봐라’식의 성적 위협이 마치 역지사지를 말하는 것처럼 숱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이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가보자
피해자 할머니들은 몸소, 지치지도 않고 자신들의 생을 바쳐 우리에게 아버지나, 오라비, 민족이나 국가, 가족, 그리고 제국과 식민,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질문하라고 여기까지 되돌아 오셨다.
그녀들이 몸으로 던지는 질문들은 너무도 많아서, 또한 중요해서 불편하다. 불편함을 누군가는 수치, 슬픔, 보복, 그리고 종국에는 ‘해결’로 꾸역꾸역 막아두려고 한다. 우리는 최대한 불편해야 한다. 쉬이 해결이라는 말을 꺼내지 말고, 쉬이 사과 받지도 말고, 계속 그 불편한 질문들에 마주하고, 무엇보다 이를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다.
▲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내부 전시실. © 일다
껄끄러움 그 자체로 알리자. 그러니 우선 가자. 어디로?
당장 시간이 되는 주말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아이와 함께 가보는 것은 어떨까. 방학이기도 하니 평일에 시간이 된다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와 관련한 동화책들도 나와 있으니 스리슬쩍 겨울방학 독서 리스트에 추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할머니들의 증언들을 먼저 읽어보고 옛날이야기처럼 해주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거대’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이해하기 버거울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고개 똑바로 들고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나의 대답 속에 성적 편견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확정적 언설들이 숱할 것이다. 해놓고도 멈칫하는 대답들로 열흘 넘게 보내고 있다. 지금 대면해야 한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오래된 인식들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마주할 때 스스로 그 한계를 어떻게 확장시켜갔는지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씨앗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하게 흩날리고 있음을 알리고 또 알리고, 당장 그 생각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오늘 다시 아이와 일본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의 다양한 의미들을 읽어봐야겠다. ▣ 김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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