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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이 정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나봐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19. 아들의 몽정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의 저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제는 동생이랑 같이 목욕 안할 거야’

 

큰 녀석은 11살, 작은 놈은 31개월. 우리 아이들은 최근까지도 함께 목욕을 했다. 나이 차가 많아서 큰 녀석이 어린 녀석의 위험을 감시하는 역할이 더 크긴 했지만, 종국에는 욕실을 물 천지로 만드는 일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그렇게 목욕인 듯 놀이인 듯, 첫째가 둘째와 한 시간 정도 놀아주면 나는 간만에 자유의 향기를 힐끗 맛본다. 그 향기 속으로 간간히 수도세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열린 욕실 문을 향해 의자를 돌려놓고 앉아 애들을 곁눈질로 살피며, 차를 한잔 하거나 밀린 시사잡지라도 읽을 수 있다. 애들도 물에서 노는 시간을 참으로 좋아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한 시간.

 

그런데 최근 아들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 동생과 목욕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달콤한 여유 시간을 빼앗길 것이 아쉬웠고, 둘째는 마냥 싫어했다. “시여, 시여. 오빠양 가치해”를 연발하지만, ‘오빠’는 단호했다. “나는 이제 너랑 같이 하기 싫다고. 나는 이제 너랑 수준이 달라졌어” 한다. 순간 나는 웃음을 집어삼키느라 이를 꽉 물었다. 첫째에게 나름 확고한 이유가 있구나 싶어 “그래, 이제 같이 목욕하는 건 끝!”을 선포했다.

 

이후로 첫째는 따뜻한 욕조 안에서 만화책 탐독하는 맛에 푹 빠졌다. “아, 역시 목욕은 이런 맛에 하는 거지. 조용해서 좋네”하며 나에게 시원한 주스 한 잔을 부탁하는 만행도 저지른 바 있다. 둘째는 좀 심심해했지만 이내 혼자서 욕조를 독차지하고 노는 맛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둘째가 낮잠을 자고나서 학교 다녀온 첫째와 오붓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던 때였다. 아들이 나에게 조용히 대화를 청한다. “내가 왜 동생이랑 이제 목욕하기 싫은 줄 알아, 엄마?” 그래, 너에게서 뭔가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싶다. 기다리던 날이 오늘인가? 슬쩍 무심한 척 해봤다. “그냥 혼자 조용히 하고 싶은 거 아냐?”, “아냐, 이유가 있다고.” 역시! 우선 나는 가장 평범한 이유를 댔다. “동생이 귀찮지, 많이?”

 

“그것도 그렇지. 아, 생각만으로도 귀찮아. 그런데 실은 나 지난번에 언제 팬티에 오줌은 아닌데, 하얀 게 묻어나왔어. 그래서 이제는 동생이랑 같이 목욕하면 안돼서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그래~에? 그럼 같이 하면 안 되겠네”라고 맞장구 쳐주었다. 아들은 “그렇지. 이제 수준이 다르다고. 동생이 내 몸을 보면 안 되는 거야, 이제”, “너는 동생 봐도 되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물었더니 “걔는 완전 쪼꼬맹이 잖아” 한다.

 

아들은 지금까지 늘 동생과 목욕하며 물장난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말의 의심과 걱정으로 늘 욕실 문을 열어두었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만큼 둘이서 물놀이에 집중하며 노는 일은 보는 나도 유쾌해질만한 것들이었다. 이제 아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더는 싫다. 그러면 안 된다.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 의지, 생각을 보였다. 나는 아들의 이 의견을 존중하면 된다.

 

남매 간 목욕이나 가족 사이에 벗은 몸을 보는 것에 대해 은근히 많은 부모들이 고민을 한다. 가족 구성원 한 명이라도 보기 싫다고 하거나, 괜스레 시선을 피한다든지 거부의 표현을 한다면 이를 세심히 받아들여주면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남매 간 목욕이 괜찮은지, 가족 간에 벗은 몸을 봐도 되는지 안 되는지가 아닐 거다. 사실은 ‘벗은 몸’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같이 사는 법’의 문제이니까 말이다. 구성원 중 거부감을 보이는 이는 없는지, 그리고 왜, 언제 거부의 표현을 하는지를 경청하고 이를 가족들의 삶에 반영하면 된다.

 

생리현상에 대해 제대로 듣고 싶어진 아들

 

나는 내친 김에 아들에게 물었다. 학교 들어가서부터 샤워 정도는 혼자 했지만 가끔 목욕할 때 내가 마무리를 해주곤 했다. 이제는 그것도 싫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럼 씻을 때 엄마도 들어가지 마?” 아들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그래, 엄마가 검사 안 할 테니 대신 더 깨끗하게 샤워해. 그때 네 팬티에 묻은 게 몽정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

 

아들이 몽정에 대해 자세히 물어본다. ‘그러니까 그게 정확히 뭐야? 다시 말해봐’ 하면서 말이다. 일전에 간략히 말해준 적은 있었지만 역시 직접 체험해보기 전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음이 틀림없다. 이제는 제대로 듣고 싶어졌는가 보다.

 

“네 몸이 이제는 정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나봐. 정액은 요도를 통해 밖으로 배출되지. 고추에서 오줌 나오는 길, 알지? 꿈을 꾸는 등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성기가 발기하고 정액이 분출될 때가 있는데 ‘꿈 몽’ 한자를 붙여서 흔히 ‘몽정’이라고 말해. 누구나 겪는 일이야. 혹시 놀랐어?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꿨어?” 

“꿈 안 꿨는데? 이상하네. 어쩔 때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면 고추가 딱딱해져 있을 때도 있어.”

 

“앞으로 더 그런 일이 많아질 걸. 너도 모르는 사이에 발기한 성기가 더는 참지 못하고 정액을 뿜어냈을 경우 흔히 몽정이라고 해. 꼭 꿈을 꿔야 일어나는 일은 아냐. 그러니 이상한 것 아니고. 성기는 꽤나 민감해서 꼭 야한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자극들에 발기할 수 있어. 네 몸이니까 너 스스로 익숙해지게 될 거고, 잘 다룰 수 있게 계속 길들여 봐.” 

“길들이라고?????”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올려놓고 잘은 모르겠다는 표정, 그러나 계속 더 해보라는 속내가 드러난 얼굴.

 

“발기한 성기를 잘 만져주면서 달랠 수도 있고, 일부러 성적 흥분을 즐기기 위해서 네 성기를 스스로 만지면서 발기를 유도할 수도 있고. 뭐 그런 건 자위라고 하지. 자위 방법은 너무 무궁무진해서 너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잘 발전시켜봐.”

 

“아하, XX가 맨날 하는 게 역시 자위구만.”

“XX가 자위하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자위는 혼자 하는 건데.”

“XX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 문에 자기 거스(아들 학교 애들은 성기를 거스라고 부른다)를 막, 막 비비대고 문질러. 아, 진짜 우웩이라고. 여자애들이 맨날 소리치고 싫어하는데도 하는데. 자기는 좋다면서 애들 놀리려고 더 하고. XX, 그럴 때는 진짜 싫은데.”

학교에 꼭 그런 아이들 한, 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나중에 XX에게 그런 건 혼자 자기 방에서 조용히 하면 더 좋다고 말해줘.”

“내 말 안들을 걸.”

“너가 하는 것 나빠, 라고 말하지 말고 더 재미있는 게 있어, 라고 말하면 언젠가 관심 있어 할지도 모르잖아. 아직 자위나 성적인 것에 대해 잘 아는 게 없어서 XX이도 궁금해서 더 그런지도 몰라. 누구 어른이 알려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XX이가 이상한 짓 하면 가까이가기도 싫은데. 그래서 난 자위 싫어.”

자위를 하필이면 이상한 예제와 묶어버리는 건가 싶어 말을 이었다.

 

“네 몸을 부드럽고도 정성스레, 관심을 주고 만져주는 것은 스스로에게 매우 좋은 일이야. 근데 네가 보기에도 남들 보는 앞에서, 남들이 싫다는 표현을 하는데도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으면 참 흉하지? 자위는 단어 그대로 ‘스스로’ 처리하는 게 예의겠지. 남들이 보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뒤처리도 깔끔하게 말야.”

“뒤처리? 뒤처리도 해야 돼?”

“그러게나, 너는 그게 어렵겠구먼. 방청소도 안하니 말이야.”

자기를 비난하는 내 말투에 뾰로통해서 힐끗 나를 째려본다.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어린이성교육 장면.    ⓒahacenter.kr


“발기 후에 정액이 분출되면 일단 그걸 깔끔히 닦아야겠지. 네 속옷이나, 아무데나 그런 게 묻어있길 원해? 그나저나 몽정하고 팬티에 묻었다는 건 어떻게 했어? 그러고 보니 엄마 빨래하면서 눈치 못 챘는데.”

 

“치, 이미 알아서 ‘뒤처리’를 한 거지. 내가 닦아서 빨래통에 놓은 거야. 내가 무슨 청소를 안 해. 그냥 하는 일이 많아서 그래.”

아들은 참으로 하는 일이 많으시다. 레고 치우라면 그것도 하는 중, 만화책 치우라면 그것도 읽는 중, 장난감 치우라면 그것도 노는 중. 그러니 방은 늘 쓰레기장.

 

“그런 뒤처리뿐만 아니라 네 몸을 스스로 만져주려면 너 손톱 좀 자주 깎는 게 어때?”

“이게 자위하는데 문제 돼?” 자기 손톱을 내려다본다.

 

“야, 지금 네 손톱 좀 봐. 너는 너무 네 몸의 청결에 무관심해. 손톱이 이만큼 길어서 먼지가 끼어도 무관심하고, 샴푸 거품이 다 지워지지 않았는데도 샤워 다 했다고 하고. 게다 자기 몸에 관심을 두고 보살피라는 말은 이 닦고 세수하고 샤워하고 잘 말리고, 그 이상을 넘어서 좋은 음식을 제때 잘 주고 변화하는 몸을 잘 관찰하고 아픈 곳은 잘 위로하고 달래고 하는 거라고. 성적인 것도 그냥 ‘야한 일’이 아니라 네 몸을 아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활용하라고.”

 

여기까지 가자 아들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스리슬쩍 거리를 두었다. 잔소리의 서막이 열린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꼭 잔소리 하나는 추가해야만 했다. 더 멀어지기 전에 얼른 이야기를 꺼냈다.

 

“포피를 당겨서 귀두를 노출시키고 깨끗이 닦아주어야 해. 꼭꼭. 알지?”

제 방으로 가려다 말고 “뭐? 포피?” 한다.

“음경을 덮고 있는 부분이 포피야. 겉껍질이라는 말이니까 어렵다고 생각할 것 없어. 네 고추 제일 끝부분을 살짝 잡고 들추면 그 안쪽에서 귀두가 나올 거야.”

“끝에 올리면 동그랑땡처럼 생긴 그거 말하는 건가?”

푸핫. 동그랑땡이래.

 

“그래. 거기를 진짜 잘 씻으라고. 깨끗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병균이 침입해서 병에 걸릴 수도 있어. 염증 생기면 너 고추 엄청 붓고 아프다. 진짜야. 상상만으로도 아픈 기분일 걸.”

“으으… 알았어. 근데 염증 생기면 죽어?”

“모든 질병 예방은 여하간 잘 씻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게다가 성기에 병균이 들어가면 너 자신에게도 안 좋지만, 나중에 성관계를 할 때 파트너에게 병균을 옮길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어려서부터 습관을 잘 만들어야지.”

“아, 알았어” 하면서 얻을 건 다 얻었다 싶었는지 제 방으로 간다.

 

나는 뒤통수를 향해 ‘자신 없으면 포경수술이라도 하던가’ 라며 최후의 잔소리를 건넸다.

아들은 고개도 안 돌리고. “수술은 싫어. 나 잘 씻는다고~오” 한다.

 

몸의 낯섦에 귀 기울이고 객관화할 수 있길

 

뭔가 위생 문제로 마감된 대화 같아 며칠 아쉬웠다. 하지만 씻을 때만큼 자기 몸을 샅샅이 탐구하고 만지는 순간은 흔치 않으니까. 몸은 개인의 영역을 알려주는 최소 단위인지도 모른다. 몸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일 수 없고, 그렇다고 그저 몸만으로는 인간답지 못하다. 자기 몸에 ‘잘’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다른 몸을 잘 이해하고 대우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들이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스스로를 한껏 추어올리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사실만 잘 기억했으면 싶다. 자신의 변화를 인지한 아들이 자신을 한껏 주관화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자신을 객관화 시키라고 사춘기 시절 우리의 몸들은 그토록 변화무쌍한지도 모른다. 가장 자아에 도취되기 쉬운 순간에 자신을 조금은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몸의 낯섦에 당혹해 도망치지 말고 귀 기울이고 집중하길 바라야겠다. 아마도 ‘자위’란 그런 것일 테니까.  ▣ 김서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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