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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보다 여성노동자에게 더 절박한 ‘최저임금’
전 연령에 걸쳐 “십년 일해도 최저임금”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최저임금은 매년 8월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며, 지난 4월 7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약 1만7천원, 현재 10달러)로 인상하기로 확정했고, 일본의 아베 총리도 최저임금을 3%씩 올려 1천엔(약 1만원, 현재 약 800엔) 대까지 인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국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9파운드(약 1만5천원, 현재 6.5파운드)까지 올려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고무적인 소식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4월 총선에서 각 정당들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진행한 2017년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 중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주요 이슈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청년유니온, 전국여성노동조합 등 노동단체들이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효과도 있지만,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유력한 해법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없는 시대에,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높여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평균임금이 최저임금’
근래 들어 최저임금 인상은 주로 청년층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따져보면 여성노동자들에게 더욱 절박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은 주로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반면,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평생에 걸쳐 최저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직으로 첫 취업해 임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후 시간제나 파견제, 용역직 등 열악한 일자리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과 젠더, 그리고 사회정의” 워크숍은 이같은 현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김혜진 세종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다’라고 할 만큼 평생 최저임금만 받는 일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들보다는 영구적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 훨씬 중요한 핵심 대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25세 미만 청년층에게 저임금은 젠더를 불문한 공통의 문제다. 그러나 남성은 청년기가 지나면서 저임금 노동자 수가 줄어드는 반면, 여성은 30대 후반부터 임금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역시 “20대 알바, 30대 계약직, 40대 파견직, 50대 용역직 여성노동자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며, “실제로 매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최저임금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미조직 女노동자’의 자리 확보해야
▶ 2015년 5월, 광화문 광장 앞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 기자회견.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최저임금은 매년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근로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은 매년 합의점에 다다르지 못해, 결국 공익위원들의 안(案)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어 왔다.
그런데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에 따른 대통령 위촉으로 선출된다. 결국,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공익위원이 구성되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결정이 내려지는 셈이다.
노조에 속해 있지 않아 회사 측과 임금 협상을 할 수 없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 이들에겐 최저임금 인상은 유일한 임금 인상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2000년 말부터 최저임금의 당사자인 청소노동자들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높이자는 주장을 해 왔으나, 아직도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이나 내용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세종대 교수는 근로자위원 9명 중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자리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로자위원은 대부분 양대 노총 중심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에 여성의 자리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노총에서 여성대표자를 보내는 방식이어서,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는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사회적 약자’가 피해볼 것
워크숍 참여자들은 최저임금을 연령별,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작년 최저임금위원회 일부 사용자위원들은 “집에서 애 키우던 엄마들이 반찬 값 벌려고 서비스업체에 취직한 건데”, “10대 20대 어린 애들이 용돈 삼아 아르바이트하는 건데 남들처럼 최저임금 주는 게 맞느냐”, “주유소, 편의점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몸이 굼떠서 일을 잘 못 한다”고 말하는 등,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당사자 집담회에서도 한 사용자위원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돈을 버는 PC방 알바생들이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액수를 적용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 5월 12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과 젠더, 그리고 사회정의> 워크숍 ⓒ일다
이에 대해 송효원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사용자위원의 이런 발언에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송효원 사무처장은 “최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차등 적용’에 대해 발언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논의도 점차 진척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차등 적용이 시행된다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여성, 장애인, 청소년, 비정규직, 고령층 노동자들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주휴수당 미지급 등 최저임금 위반 사례도 많아
그런데, 최저임금이 정해져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있다. 작년 8월 기준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여성이 16.6% 남성이 7.6%로, 여성이 남성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기혼여성의 18.4%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기혼여성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KLSI 이슈 페이퍼> 2015년 1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위법 행위는 바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주휴수당이란, 1주 동안 소정의 근무일수를 다 채운 근로자에게 유급 주휴일을 주는 것이다. 주휴일에는 근로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며, 하루 분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주휴일은 상시근로자 또는 단기간 근로자에 관계없이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한 모든 근로자가 적용 대상이다.
노동자가 매일 출근하고 있음에도 ‘일용직’ 명목으로 고용하고 임금을 일당으로 계산해서 주휴수당을 주지 않거나, 일한 시간만큼만 시급으로 지급하면서 주휴수당을 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적발하더라도 대부분 시정 조치로 마무리할 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사법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많은 여성들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저임금이 올라도 여성들이 그 수혜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올해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 현황을 실태조사하는 등 ‘젠더 관점에 입각한 최저임금 현실화 운동’을 적극 펼쳐 나갈 계획이다. ▣ 나랑 기자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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