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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합의, 아시아의 모든 피해자 무시한 것

14차 아시아연대회의서 각국 참가자들 강도 높은 비판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당연히 아시아 전역의 모든 피해자에게 그런 마음을 표명해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가 속하는 국가에 따라 사죄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면, 그건 누가 봐도 말뿐인 사죄입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이자 재일조선인인 양징자씨는 “가해국의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 양징자씨  ⓒ 일다

 

‘위안부’들의 뜻 모아 연대해온 ‘아시아연대회의’

 

제1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이하 아시아연대회의)가 지난 18일~20일 서울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아시아연대회의는 1992년 8월, 한국 서울에서 1회가 개최된 이래 아시아 전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 활동가들과 생존자들이 모여 그간의 활동을 공유하고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장(場)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를 민간법정에 회부했던 ‘여성국제전범법정’(2000년)도 아시아연대회의의 결의에 따라 개최된 것이었다.

 

또한 지난 2012년에 열린 12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각국 피해자들의 뜻을 모아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제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적, 법적 책임을 지기 위해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리하였고, 이후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토대가 되고 있다.

 

▶ 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 


올해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는 동티모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중국, 일본, 미국, 네덜란드, 한국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작년 12월 28일에 있었던 한일 정부간 ‘합의’(이하 12.28 한일 합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12.28 합의 후 일본사회 반응 “이미 끝난 문제”

 

양징자씨는 12.28 한일 합의 이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양징자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는 합의 직후 일본 정부에 항의문을 발표했다. 또 171개 시민단체와 1천909명 개인의 서명을 받아 2월 5일, 외무성에 직접 항의문을 전달한 바 있다. 같은 날 외무성 앞에서 시민 1백여 명이 모여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양징자씨는 “대다수의 일본 시민들은 12.28 한일 합의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라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치 문제, 외교 문제로만 인식하는 시각이 확산돼 온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는 ‘외교 문제에선 어느 한쪽만 이기는 일은 없다. 서로가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전시 여성인권 침해 문제이며, 피해자가 양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상식적인 감각조차 없다”는 것.

 

양징자씨는 이런 인식이 확산된 데에 일본 언론이나 국회의 책임이 크다고 보았다.

 

“12.28 한일 합의 직후 보수에서 진보 언론까지 모두 ‘합의 지지’를 표명했다. 한국의 4월 총선 다음 날 일본의 각 언론은 ‘(총선에서) 한국 야당의 승리로 인해 12.28 합의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사설을 일제히 게재했다. 아베 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공산당, 민자당, 사민당 등 야당들 또한 ‘합의의 착실한 이행’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일본 국회 안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 현실이다.”

 

양징자씨는 일본 사회의 이러한 반응이 “그동안 일본 사회가 과거의 역사적 책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일본의 시민사회는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기 위한 활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 5월 18일~20일 서울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 동티모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중국, 일본, 미국, 네덜란드, 한국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 일다

 

아시아 전역 피해자들 “우리는 인권 회복을 원해”

 

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 모인 각국의 활동가들과 피해자들은 이번 12.28 한일 합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합의 과정에서 한국의 피해자들은 물론이요, 다른 아시아 피해자들 또한 철저하게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1월 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마잉주 대만 총통이 주일 대만 대표부를 통해 대만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와 협상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대만과는 새로운 협의의 장(場)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대만 부녀구원 기금회’의 캉슈화씨는 “대만의 생존자들이 원하는 건 배상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돈을 주지 않아도 생존자들은 생활할 수 있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한 명예와 인권 회복을 원한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에 진실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부센터’ 주임이자 상하이사범대학교 교수인 쑤즈량씨 또한 이번 합의를 비판했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12.28 한일 합의는 한국 사회가 지난 25년간 기울여 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합의 후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일본 보수 내각과 주요 언론이 ‘위안부’라는 전쟁 범죄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아시아 각국이 힘을 합쳐 범죄를 부인하는 일본에 계속 맞서야 한다.”

 

‘홍콩 역사 감시단’의 메이 리씨는 홍콩의 경우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약 1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하면서 “일본은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에게도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서 “한국은 ‘위안부’ 평화비를 지켜내야 한다. 우리도 홍콩 정부에 조속히 ‘위안부’ 평화비를 건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참가자들은 “12.28 한일 합의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1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결의 및 행동 계획’을 채택했다.

 

“일본 정부는 모든 피해자와 시민사회의 요구에 귀 기울여 12차 아시아 연대회의의 ‘제언’을 수용하고 이행하라”, “한국정부는 12.28 한일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존중하여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올바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12.28 한일 합의의 심각한 문제점을 각국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뜻을 담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랑 기자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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