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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싸워야할 때고 우리는 이길 거예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행동하는 20대 여성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여성들의 추모와 고백의 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는 20대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밤길을 되찾자”, “여성혐오 사회를 바꾸자”고 외치며 강남역 부근에서 밤길 행진을 하는가 하면,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이 사건을 규정한 서초경찰서 앞에서 “여성혐오가 죽였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 5월 27일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에게 F학점을 주는 퍼포먼스 중인 20대 여성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단계여서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불꽃페미액션 제공

 

‘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20대 여성 네 명을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만났다. 대학생 세정(24살), 희정(23살), 정하(24살)씨와 직장인 미현(27살)씨. 이들은 “오늘 낮에도 대검찰청 앞에 가서 F학점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왔다. 내일은 또 우리가 어디에 가 있을지 우리도 모른다”고 말하며, 인터뷰 내내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5월 24일과 27일 밤, 강남역 부근에서 ‘나쁜 여자들의 밤길 걷기’ 행진을 주최했는데, 어떻게 기획하게된 건가요?

 

희정: 올해 3월에 “여자들도 모여서 농구를 해 보자!”하면서 ‘불꽃 여자 농구팀’을 만들었어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20명 정도 모였죠. 그 중에는 페미니스트도 있고, 그냥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야, 우리 더 해야 돼” 이러면서 한 달에 한 번 하던 걸 2주에 한 번 하게 되고, 다시 일주일에 한 번씩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터졌어요. “우리 뭔가 행동을 기획해보자” 해서 ‘밤길걷기’를 하게 됐죠.

 

미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나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 늘 “그러니까 왜 여자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느냐”, “그 여자 옷차림 때문에” 이런 얘기를 듣잖아요. 평소에 이런 얘기에 불만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이번 사건을 접하고 우리가 모였을 때도 ‘추모하고 슬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걸 넘어서야 된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더 이상 여자들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든 작은 대부분 여성들이 폭력 피해 경험을 갖고 있잖아요. 스스로도 ‘내가 그때 옷차림이 어땠지’, ‘내가 그때 괜히 술을 마셨던 거 아닐까’ 자책을 하곤 하는데, 그런 걸 털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달빛시위’를 했다는 얘길 듣고, 우리도 ‘밤길 걷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달빛시위는 2004년~2009년까지 매년 여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축이 되어 진행한 밤길 가두시위다. 2004년 유영철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 언론이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공포감을 심어주는 정책과 보도를 쏟아내자 많은 여성들이 이를 비판하며 거리로 나와 행진했다. 당시 여성들은 “야한 옷이 무슨 상관? 성폭력은 가해자 탓!”, “밤길이 위험하니 숨으라고 할 거면 니들부터 들어가!” 등의 구호를 외쳤다.)

 

▶ 5월 24일 밤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진행된 <나쁜 여자들의 밤길 걷기>  ⓒ일다

 

세정: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매일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1인 시위를 하고 있어요. 24일 낮에 제가 1인 시위를 했는데, 그때 제가 든 피켓을 보고 얘기 나누던 분들이 밤에 진행한 ‘밤길걷기’에도 오셨더라고요. 24일에 70명, 27일에 50명 가까이 모였어요. 앞으로 건국대입구역이나 왕십리 쪽에 가서도 진행할 생각이에요. 여성들은 강남에서만 위험한 게 아니잖아요.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을 뿐이지, 여성들에겐 (범죄로부터의 공포나 위험이) 너무나 일상적이죠. 강남역에만 머물 순 없어요. 우리 여자들이 밤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곳곳에서 보여줘야 이 싸움이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지역을 옮겨서도 진행하려고 해요.

 

-‘밤길걷기’에서도, 추모의 공간에서도, 자유발언대에서도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은 폭력과 차별경험을 쏟아내니까 언론은 “여자들이 왜 새삼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보이고 있는 반응이기도 하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정: 저도 데이트 폭력의 경험이 있는데, 사실 그걸 친구들에게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나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방관자, 가해에 일조한 사람이라는 자책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범죄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닌 거예요. 이 사건을 보면서 여자라면 누구나 다 ‘아 내가 조심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발화하게 된 것 같고요. 이렇게 잔인하고 어이없는 일이 터져야 여성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듣게 됐다는 게 슬프죠.

 

정하: “여자들이 갑자기 왜 이래?”라는 반응은 여자들이 그 동안 말할 기회나 상황을 갖지 못했다는 반증인 것 같아요. 사실 성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했는데, 이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일, 사소한 일로 여겨졌고, 여성들의 경험은 여자들끼리의 뒷담화에서만 얘기돼왔어요. 이번 사건으로 튀는 ‘꼴페미’들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기 시작하니까 당황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겠죠.

 

희정: 남자들에겐 ‘새삼’이 맞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그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서사를 이렇게 절규하듯 얘기하는 걸 처음 들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처음 들었다면 그들은 정말 (여성혐오 범죄의) 공범자들인 거예요. 자신이 여성을 향해서 어떤 눈빛을 보냈고 어떤 말투로 여성을 대했는지 성찰을 안 했다는 거잖아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성찰을 안 하고 살았다면, 남성의 위치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차별했을 게 불 보듯 뻔하죠. 그래서 “왜 새삼?”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너도 여성혐오의 공범자”라고 말하는 거예요. “넌 ‘새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너만 몰랐던 거야. 나는 네가 너무 너무 불편했단다. 이제 말할게, 넌 가해자였어.”

 

미현: “왜 새삼 그러느냐”는 질문에는 화가 나는데, 저도 왜 이 시점에 우리들이 이곳에 이렇게 모여서, 상처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고 행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요.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서는 여성들의 발언을 제지하려는 사람들과 마찰이 있었죠, 그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들려주세요.

 

▶ 5월 27일 <나쁜 여자들의 밤길 걷기> 행진에서.  ⓒ불꽃페미액션 제공


세정: 추모 행사할 때 추모를 방해하는 몇몇 남성들이 있었어요. 그 남성들을 여성들이 둘러싸고 소수 대 다수로 엄청 싸웠어요.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튀어나와서 여자들 편을 들면서 남자들한테 “자네들 그러면 안 돼지” 이러는 거예요. 그때 여자들이 “아저씨는 뒤로 빠지세요!”, “아저씨는 말하지 마세요!” 그러는 걸 봤어요. 사실 우리가 어딜 가든 “여자들은 뒤로 물러나세요, 위험합니다.” 늘 이런 소릴 듣잖아요. 이제는 그게 역전된 거예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발언하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말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발언권을 줘야 합니다.” 당당하게 소리치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놀라웠어요. 거기 있던 분 중에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평소에는 남자들이 시비 걸면 무섭고 그랬는데 여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저리 꺼져라’ 욕을 하고 그럴 때 너무 너무 용기가 났다”고. 그날 밤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잤어요.

 

희정: 저도 이 상황이 정말 흥분됐는데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그런 싸움터가 네다섯 군데 있었어요. 마치 전쟁터처럼 여자들이 다 싸우고 있는 거예요. 건너 건너 건너서 여자들이 다 말싸움을 하고 있고, 남자들이 말도 안 되는 말 하면 깔깔깔깔 대면서 웃고 조롱하고. 말싸움하다 어떤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 “울지 마, 울지 마” 이러면서 연대하고 힘을 주고… ‘아 이런 게 정말 해방의 공간이구나’ 싶었어요.

 

-추모 현장에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를 비롯한 남성들이 출현했죠. 행진할 때도 “아가씨 어디 살아요?”하는 식으로 시비 거는 남자들이 있었는데, 두렵진 않았나요?

 

정하: 무섭지만, 우습기도 해요. (우린) 당당하니까요. 또 시비 거는 놈들한테 그냥 화가 났어요. 신체적으로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같이 있는 사람들 덕분에 덜 무서웠어요. 하지만 혼자 있을 땐 무섭기도 해서 그럴수록 사람들을 찾아서 더 같이 있으려고 해요.

 

미현: 우리 사진이 일베 게시판에 올라가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외모 품평을 당해요. 거의 ‘언어 강간’에 가까워요.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추모 과정 중 온, 오프라인에서 사진, 신상 정보가 노출되거나 악성댓글이 달린) 사례들을 모아서 대응할 예정이어서 우리도 우리 사진이 올라온 글들을 캡쳐해 모으고 있어요.

 

-그럼, 자기 사진에 달린 악성 댓글을 다 읽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런 과정이 힘들지는 않나요?

 

희정: 혼자 있으면 우울하고 불안하기도 해요. 강간에 가까운 언어폭행을 당했는데 안 그렇겠어요? 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다음 날도 해야 할 일이 많고 계속 싸우다 보니까 강해지는 것 같아요. ‘맷집이 길러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싸우면서 연대감이 생기고 역할이 나눠지고 있어요. 일베 게시판의 댓글 캡쳐할 때도 친구가 “희정아, 이런 거 올라왔는데 내가 캡쳐해 줄게. 나중에 괜찮을 때 한번 봐”하고 대신 캡쳐를 해 줘요. 이런 식으로 정신적 고통을 분담하죠.(일동 웃음)

 

세정: 제가 일베 게시판을 훑어보고 (인권침해 글들을) 캡쳐해서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24일에 ‘밤길걷기’를 할 때 크롭티(기장이 짧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일베에서 엄청 회자되더라고요. 친구한테 말했어요. “내가 그렇게 입은 게 잘못일까?” 그랬더니 친구가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더 그런 옷을 입어야 돼” 하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 듣고 ‘그래, 내가 뭐가 무서워서 그랬나’ 싶었어요.

 

▶ ‘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20대 여성들.  ⓒ일다

 

-여성들이 분노를 표출하니까 많은 남성들이 “억울하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 남성을 일반화하지 말아라” 항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정: 남동생이 있는데, 제가 이런 활동하는 걸 어떻게 알게 됐나 봐요. 전화로 “누나야 다치지 말고 밤에 조심해라”라고 하면서 “남녀 편 가르기 아니냐”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어요. 조심하지 않아서 죽은 게 아니라고. 내가 조심해봤자 누가 쑤시면 나는 죽는 거라고. 그리고 내가 먼저 편 가르기 한 게 아니라, 내가 불만을 말하니까 누군가가 ‘편 가르기’라고 이름을 붙인 거라고.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도 여자들은 한 적이 없는데, 자신이 가해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이 먼저 시작한 말 아니냐고. 나는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지, 누구보고 잠재적 가해자라고 말한 적 없다고. 전화 끊고 나서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구나’ 싶었죠.

 

미현: 남자사람인 친구와 엄청 많이 싸웠어요. 그 친구가 남성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어떤 사례를 들면서 “이런 사례도 있지 않냐”고 얘기하더라고요. 전 이 부분에선 단호한데, 어떤 사람의 마음에 더 공감하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그 장면에서 남성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여성이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어떤 건지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냐고 물었어요. 누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누구의 마음에 공감하느냐의 문제인데 왜 더 힘들어하는 쪽에 공감하지 않고 덜 힘들어하는 쪽에 공감하느냐고 묻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공범적 가해자’라고 생각해요.

 

희정: 인간이라면 아픈 사람한테 공감하고 위로를 해 줘야지 “난 안 그랬어”라고 선을 긋는 게 도리인가요? 그리고 여자들한테 “짧은 치마 입고 다니지 말아라” 하는 논리가 ‘남성의 성욕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건데, 그런 논리라면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게 맞잖아요. 남자들은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내가 짧은 치마 입으면 성폭력 당한다는 거 아니에요? 여자들보고 일반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가해자가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했어요. 이미 여성들은 일반화돼서 남성들이 살인을 하고 범죄를 하는 대상이 됐어요. 남성들이나 먼저 여성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정하: 여성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이미 ‘여자’로만 일반화되어 살아왔는데,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리니까 그런 식의 (방어적인) 태도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남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말로는 성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어떤 권력을 갖고 행사해왔는지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는 증거라고 봐요.

 

-이 사안을 젠더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담론들도 많습니다. 경찰과 언론은 조현병이나 남녀공용 화장실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잖아요.

 

세정: 정부와 경찰과 언론의 행태를 보면서 ‘정말 이 사회는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사회구나’라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여성혐오가 만연했고 그게 이 사회를 유지시켰는데, 이제 이 범죄가 수면위로 떠오르니까 정신질환자나 특정한 공간(화장실)을 계속 코너로 몰고 그런 걸 욕함으로써 사회를 유지시키려는 의도가 보여요. 진짜 없애야 될 건 여성혐오인데, 이 문제로 계속 가다보면 자기들한테 득 될 게 없고 사회 근간이 흔들린다고 보니까, 다른 소수자집단(정신질환자)으로 원인을 몰아가서 사회를 이대로 유지시키려는 거죠. 진짜 어이가 없어요. 정신질환자들에게도 엄청난 실례인 것 같고요.

 

미현: 경찰이나 정부나 언론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남성이잖아요.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만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전 그 사람들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애써 이해시켜 주고 싶지 않아요. 모르면 그들이 배워야 되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더 많은 여성들이 모이는 방식으로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에 반대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알려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추모공간이 남녀 대립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5월 28일에는 서울 시청 앞에서 양성평등연대가 주최하는 ‘혐오를 넘어 화합으로’라는 행사도 열렸죠.

 

정하: 그냥 “이 사회의 (여성혐오) 사태를 지속하면서 살자”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평등하게 살자”라고 말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자’, ‘화합하자’라고 말하잖아요. 친하게 지내는 것, 화합하는 건 권력 관계가 평등하지 않은 채로도 할 수 있거든요.

 

▶ 5월 27일 밤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진행된 <나쁜 여자들의 밤길 걷기>  ⓒ불꽃페미액션 제공

 

-‘불꽃페미액션’의 앞으로의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미현: 건대입구역과 왕십리 쪽에도 가서 ‘밤길걷기’를 할 계획이고요, 서초경찰서나 검찰청 앞에 갔던 것처럼, 언론사나 국회에도 갈 생각이에요. 교육부에도 갈 거예요! 잘못된 교과서로 성차별을 조장했고 나를 ‘여성’으로 자라게 한 원흉이니까요.

 

세정: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도 가주면 안 되니? 우리 부모님도 만나줬으면 좋겠다. (일동 웃음)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미현: 우리가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페이스북을 봐도 그렇고, 친구들도 만나면 다 이런 얘기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하고 먼저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거겠죠. 성격이 더 급해서 먼저 한 것뿐이에요.(웃음) 더 많은 여성들이 같이 할수록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기사를 읽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는 어쩌면 운이 좋아서 여성들의 분노가 터지는 시기에 이런 액션을 하게 됐고 분노를 해소하면서 고민할 수 있는데, 그 전에 이미 활동해 오신 분들도 정말 많은데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게 죄송하고 감사해요. <일다> 기사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해요.

 

희정: 저는 지난 겨울에 6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3월에 불꽃여자농구팀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남성애인에게 의존을 했는지 그게 정말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남성과의 연애 관계에 너무 몰입하고 나를 많이 망가뜨리면서 사랑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들과의 연대가 나를 되돌아보고 찾아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여성들은 분리되어져 왔잖아요. 남성이 정해놓은 프레임 안에서 너는 된장녀, 너는 김치녀, 너는 개념녀야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김치녀들을 혐오하면서 개념녀를 간택하잖아요.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너네는 너네끼리 싸워, 우리는 우리 여자들끼리 연대를 강화시켜 보자.” 지금까지 겪어온 여성혐오, 여성차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우리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얘기해보자. 그런 힘을 주는 게 여성들 간의 연대라고 생각해요.

 

세정: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말을 하고 다닐 때는 솔직히 말하면 어떤 희망이 보이진 않았어요. “나를 지키고 그냥 나로 살고 싶어서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 였다면 이제는 좀 바뀌었어요. 내가 사는 동안 뭔가 바뀔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봤어요. 강남역 10번 출구 앞 추모공간에서 해방을 맛 본 것처럼 그 이후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진짜 뭘 할 수 있겠다’, ‘앞이 좀 보인다’는 느낌?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제가 이 말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어요. 지금은 싸워야 할 때고 우리는 이길 겁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함께 싸워요!   나랑 기자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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