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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여성혐오 문제 이해 못 한다”
여성혐오 사회에 변화를! 거리로 나온 여성들 

 

 

지난 달 17일 강남역 부근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 이후, 6월 1일 정부는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CCTV 설치 확대, 남녀 화장실 분리 사용, 강력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소시오패스(반사회적인 인격장애)에 대한 맞춤형 엄벌 정책 등 치안을 강화하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 이번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진단한 바 있는 경찰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강제 입원을 요청할 수 있게 하고, 정신증이 처음 발병하는 청소년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조기에 정신질환자를 발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등의 대책을 내 놨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의 근원으로 지적한 여성혐오 문화와 성차별 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고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6월 6일 홍대 부근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일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홍대 부근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라는 표제를 건 이번 행사는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들이 제안하여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14개 단위가 공동 주최했으며, 2백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조현병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모이면 세상이 변한다” 등의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며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한 시간 남짓 행진했다.

 

‘여성혐오 사회, 더 이상 숨죽이지 않겠다’

 

이 날 행사 중 반(反)여성혐오 자유발언대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여성혐오에 맞서 싸우겠다”는 여성들의 발언과 결의가 이어졌다.

 

조은별씨는 “그동안 여성으로 사는 게 괜찮다고,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여성으로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수년간 살아오면서 침묵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이번 한 번의 집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일상 속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불편함을 제기하고 우리는 왜 불편한지 얘기하고 불편함을 던지며 살겠습니다. 앞으로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등 젊은 페미니스트 그룹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일다 
  

이원윤씨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모였던 여성들이 신상 털릴 것에 대비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써야 했던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왜 우리는 죄지은 것도 없는데 얼굴을 가려야 할까요? 이건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남성 권력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를 겁주고 협박해서 침묵시키고 얼굴을 숨기게 만들려는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저급한 논리와 욕지거리에 움츠러들지 맙시다!”

 

이원윤씨는 이어서 “너 페미니스트니?”, “너 페미니즘 같은 거 하니?”라는 질문을 바꿔서 “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니?”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자고 제안해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더 이상 (여성혐오의) 수동적인 방관자로만 남아있는 게 결코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려줍시다.”

 

정부 대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치안 강화, 가해자 엄벌’ 기조의 대책을 내놓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나 아동 대상 강력범죄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가 이를 기회 삼아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정책들을 입안한다”는 것이다.

 

▶ ‘치안 강화, 가해자 엄벌’ 대책을 내놓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일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 대책이 “기존 여성안전 관련 정책 짜깁기와 실효성 없는 처벌강화 남발”로 채워져 있다고 진단하며, “일단 시끄러운 상황을 덮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례로 정부가 “형기 종료된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죄자를 별도로 수용해 관리, 감독하며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하겠다고 하는 ‘보호수용제’는 이중 처벌 논란으로 작년 국회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으로 폐기된 법안이다.

 

‘보호수용제’는 2회 이상의 살인 또는 3회 이상의 성폭력 범죄, 13세 미만인 아동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검사의 청구에 따라 1년 이상 7년 이하의 기간 동안 별도의 보호수용시설에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형기를 마친 후에도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고 또다시 형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중 처벌 논란에 더해, 무조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오랜 시간 격리하는 것이 근본적인 범죄 예방책이 될 순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경찰이 ‘여성안전 특별 치안대책’을 발표하며 ‘남-녀 갈등을 일으키는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 전담 인력까지 배치해 찾아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을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잇을 활동가는 경찰의 이번 대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고 말하면서 “‘남-녀 갈등’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여성혐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 자체를 단순히 (개인의) 감정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다를 바 없으니 양쪽 다 삭제하겠다고 접근하는 방식은 결국 여성혐오를 은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으로 신고된 몰카(몰래카메라)나 도촬(도둑촬영) 등 온라인 상의 여성에 대한 범죄 ‘인증사진’부터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처벌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지, 신고된 것도 아닌 온라인 게시물을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삭제 요청한다는 것은 “본분을 넘어선 행위”라고 지적했다.

 

▶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참가자들이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일다 
 

정신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검열 우려돼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참가자들은 정신장애인을 겨냥한 정부 대책이 인권 침해적이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나아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감시가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검열과 탄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언니네트워크의 나기 활동가는 반(反)여성혐오 자유발언대에서 “정부에서 조현병 환자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조현병 환자 체크리스트’를 만든다는데, 이것이 과연 조현병 환자만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국가 권력이 과연 누구를 스크리닝(선별)할까요? (성 정체성은) 질병이 아님에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강제로 행정입원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미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인자로 낙인찍히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대책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여성혐오를 뒤엎기 위해 나왔지만 그런 ‘우리’가 (사회적 소수자들로) 더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잇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정부의 대책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이라서 죽은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성으로 보여서’ 겪게 되는 차별이나 폭력과도 떼어서 생각할 수 없어요. 여성으로 ‘보여지는’ 사람, 규범적이지 않은 젠더 표현을 하고 있는 사람, 트랜스젠더 등의 인권도 고려해야 돼요. 그런데 정부 대책 중 남-녀 분리 화장실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성별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혐오하게 만들고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게 될 여지가 있어요.”

 

잇을 활동가는 “일상에 깊이 스며있는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지금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나 폭력을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 공포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게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전반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본인들 판단에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사회와 분리시킨다거나, 사회를 전반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문제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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