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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우울, 몸의 발견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몸을 인식하다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질병은 자신을 찾으려는 평생에 걸친 분투의 역사의 정점이다.” -게이버 메이트(홀로코스트 생존자)

 

1. 몸의 우울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호하네요. 조직 검사를 하거나 추이를 지켜보든가 해야겠어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한 MRI촬영 결과였다.

 

‘오른쪽 무릎 안쪽으로 뼈 안에 직경 3.7센티의 원모양의 검은 물질이 있다. 양성일 가능성이 높지만 악성일 가능성도 있다. 정확한 것은 조직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검사는 마취하고 뼈를 뚫어야 한다. 4일간 입원하고 한 달 보름간 목발을 짚고 다녀야하는 큰일이다. 본인이 알아서 결정해라. 그냥 놔두고 추이를 지켜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에 종양이 악성라면, 불이 난 것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 된다.’

 

의사의 말이었다. 이런 경우 의사인 자신은 ‘조직검사를 하라고 권한다’고도 덧붙였다.

 

“좀 두고 지켜보지요.”

“그러면 석 달 뒤에 다시 검사를 합시다. 그 안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와야 합니다.”

 

▶ 흐린 날처럼 늘 흐린 몸.   ⓒ김혜련

 

삼십 대 중반부터 수십 년간 몸이 늘 피로했다. 자고나면 밤새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몸이 아프고 시렸다. 하루 종일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이런저런 처방도 받아보고 한약도 먹고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만성피로 증후군이라는 공통된 이야기를 들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호르몬 검사를 받아 봐요.”

 

내 증상을 듣고 한 지인이 말했다. 자기 숙모가 나와 증상이 비슷했는데, 알고 보니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였다고 했다. 그럴 듯했다. 호르몬 검사를 하는 병원은 몇 곳 안됐다. 서울 아산병원 내분비내과에서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류머티즘이 의심된다면서 류머티즘 내과로 의뢰를 했다. 검사를 위해 전신 뼈 조영 촬영을 한 결과, 류머티즘은 없고 오른쪽 무릎 아래 뼈 속에 제법 큰 염증이 발견되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몸이 몹시 우울한데 그게 마음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로 의뢰를 하면서 류머티즘 내과 의사가 권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쉬쉬쉭~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서글프게도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이야기였다.

 

‘정신과 상담, 그거 이십대에 받았어야지요. 환자였으니… 그러나 그 때는 지금처럼 정신과 상담이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으니까요. 정신과 가는 대신 연애를 했지요. 결혼하고, 이혼하고, 넘어지고, 깨지고, 나뒹굴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내 정신을 찾기 위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어요. 내 정신은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어요. 문제는 몸이에요. 나간 정신 찾느라고 몸이 다 망가졌으니까요.’

 

의사에게 할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댔다.

 

검사 예약을 하고 돌아오면서 계속 “몸의 우울”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처음 듣는 언어였다. 그 언어로 내 몸을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게 많았다. 내 몸은 전반적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신체적 움직임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내장 기관들도 그렇다. 위도, 장도 다 무력하다. 좀처럼 소화가 안 되고, 늘 변비에 시달린다. 그게 우울이라고? 그럴 법했다. 평생 우울했는데, 그게 마음의 우울이기만 했을까? 아마도 세포 구석구석 우울이 깊게 배었을 게다. 우울한 마음에 우울한 몸. 그 생각은 참으로 우울했다.

 

“아들은 아주 건강해요. 엄마가 문제지.”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어서 정신과 상담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엄마와 떨어져 지냈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엄마가 없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언제나 살얼음이 낀 듯 시렸다. 아들 내면에 무엇이 있어서 저렇게 힘든 사춘기를 겪을까…

 

청소년 상담을 잘 한다는 곳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그 중 ‘로샤’ 검사(좌우 대칭의 잉크 얼룩으로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카드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무엇처럼 보이는지, 무슨 생각이 나는지 등을 자유롭게 말하여 피험자의 성격을 테스트하는 검사)라는 것이 있었다. 상담가는 엄마인 내게도 그 검사를 했다.

 

▶ 로샤검사. 스위스 정신과 의사 로르샤흐가 개발한 잉크 반점 검사.

 

“인생 초기에 이렇게 심각한 우울이 있으면 걸어 다니기 힘든데… 정신과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혼자 애 많이 썼겠어요.”

 

그래, 혼자 애 많이 썼다.

 

2. 몸의 발견

 

복습하듯 정형외과 검사 결과를 요약해 봤다. 무릎에 종양이 있는데 그게 악성, 즉 암일 확률이 있다는 거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온통 공포였다. 만약 그게 암이라면 ‘골육종’이라는 것인데, ‘수술을 해도 다리 하나 절단에 심장으로 전이… 흔한 암이 아니라 별로 개발된 치료법이 없고 다른 암과 달리… 곧 죽을 것이다.’

 

그 공포의 말들을 진정시키고 나니 결론은 당연했다. 만약 암이라면 치료를 받아도 곧 죽고, 안 받아도 죽는다. 치료를 받으면 처참한 고통을 당하며 죽고, 안 받으면? 마찬가지일까? 그건 모르겠다. 어쨌든 병원 치료는 받지 않겠다. 혼자 그리 생각했다.

 

집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죽는 건 별로 아쉽지도 안타깝지도 않았다. 전 같았으면 안 죽겠다고 발버둥을 쳤겠지만. 죽음에 대해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었다. 의외였다. 늘 ‘지금 죽을 순 없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참 영성에 관심이 있던 시절, 동사섭(同事攝,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였다. ‘독배(毒杯) 명상’이라는 명상이 있었다. “내 앞에 달고 맛있는 주스 한 잔이 놓여 있다. 마시면 아무런 고통 없이 죽는다. 이 잔을 마시겠는가?” 이 상황을 실제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독배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드는 거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그러니 나오라고 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려는 시늉을 했다. 나간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죽을 사람이 머리카락이 아깝나요?” 그건 아니라는 거다. 이 명상의 핵심은 죽을 수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생명을 지닌 존재는 당연히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는 거였다. 곧 자신이 삶에서 가장 집착하는 게 뭔지 발견하고 그것을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명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이나 부모가 그 이유였다.

 

나 또한 죽고 싶지 않았다. 부모도 자식도 아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내가 누군지 알고, 나로서 살아보려는 시작을 하는데 죽는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깊이 몰입을 했는지 난 안 죽겠다고 엉엉 통곡을 하고 있었다.

 

▶ 집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김혜련

 

그 때와는 달리 죽는 게 안타깝지 않았다. 지리산 수행에서 만난 내 안의 아귀(餓鬼), 지독한 자기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서야 역설적으로 그 결핍은 사라졌다. 영혼의 허기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수행의 길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허기를 해소했다.

 

나는 더 이상 삶에서 해결해야할 그 무엇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냥’ 살면 되었다. 그러니 죽는다 해도 눈을 감지 못할 한스러움이나 안타까움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들도 다 컸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 두려웠다. 처참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한다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걱정하던 모든 일들이 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죽음 앞에 문제가 될 게 무엇이겠는가? 종종 속을 뒤집어놓는 목수도, 군대에 가 있는 걱정스런 아들도 다 괜찮았다.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는 듯했다. 비현실적 세계에서 둥둥 떠 있는 듯도 했다.

 

삼 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까지 어떻게 지낼까? 그냥 손 놓고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손 놓고 있으면 안 되었다.

 

만약 내가 얼마 못 산다면 가장 용서를 받아야 할 대상은 내 생명, 곧 내 몸이었다. 평생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툭 하면 학대하고, 내 멋대로 지치도록 쓰고… 내 몸에게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라도 내 몸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몸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김혜련)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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