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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완경아” 그 여자들의 완경파티
7명의 여자, 7개의 완경 이야기 (나랑 기자) Feminist Journal ILDA
완경. 월경이 닫힌다, 폐기처분된다는 뜻의 ‘폐경’말고 완성된다는 의미의 ‘완경’이라는 말을 쓰자는 운동이 시작된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완경’을 떠올리면 호르몬 변화, 안면홍조, 열감, 복부비만 같은 갱년기 증상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완경이 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지긋지긋했던 생리가 끝나니 홀가분한 기분일까? 아니면 삼십년 넘게 치러온 월례 행사가 사라지니 허전할까? 어떤 이는 여성에게 완경 이후가 영적인 수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이번 설 연휴 마지막 날, 서울 은평구의 어느 옥탑방에서 완경한, 혹은 완경을 앞둔 여자 7명이 모였다. ‘완경파티’를 열기 위해서다. 이 파티를 주최한 타로 마스터 프시카(50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어떤 단계를 넘어가는 시기에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해요. 성인식처럼 말이죠. 나의 무의식에 ‘이제 인생의 다른 국면이 왔다’라고 알려주는 행위가 필요한 것 같아요.”
▶ 완경파티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 ⓒ일다
“완경이 자랑스럽고, 칭찬받고 싶었어요”
“44살인데 작년에 완경이 왔어요. 갑자기 생리를 안 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경’이래요. 엄마도 43~44살에 완경이 왔다고 하는 걸 보니 유전인가 봐요. 37살에 애 낳고 3년간 모유 수유할 때 생리 안 하다가, 2년 더 생리하고 완경한 거죠. 생리할 땐 생리전 증후군이 심했는데 그게 없어서 너무 편하고, 뭔가 완전체인 인간으로 거듭난 느낌이에요. 너무 자랑스럽고 칭찬받고 싶고 축하받고 싶었어요.” (뿜, 44세)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완경을 해서 행여나 의기소침한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웬걸, 뿜의 얼굴에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쿠바에 가서 3개월 동안 춤만 추고 왔단다. 춤과 연애 빼면 시체라는 쿠바 사람들 틈에서 몸의 감각이 되살아난 듯 했다.
“초경 후 생리를 36~37년 꼬박 했어요. 비혼이라서 임신, 출산의 경험이 없거든요. 생리 주기도 24일이라서 1년에 15번 정도 해 왔어요. 작년부터 한 달씩 생리를 건너뛰고 있고 곧 완경할 것 같아요. 아쉬움은 없어요. 오히려 더 이상 세상이 말하는 ‘예쁜 여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생물학적 조건에 지배받지 않는 또 다른 시간으로의 진입이랄까요.” (소라, 49세)
소라는 더 이상 ‘젊은 여성’으로 누군가에게 어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자유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여성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족쇄였기 때문에 홀가분하다고. 그래서인지 요새는 욕하고 싶을 때 욕도 마음대로 한단다.
“생리주기가 짧아서 1년에 16~18번씩 생리를 했어요. 늘 임신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고, 돈 생기면 난관 수술을 하려고 했어요. ‘이걸 50살까지 해야 해?’ 끔찍했죠. 그래서 완경이 오면 너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냥 덤덤해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 (낮달, 47세)
의외로 덤덤하다는 낮달은 초경을 했을 때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생리를 하는 건 여자가 된다는 뜻이었는데, 낮달에게 여자는 곧 엄마였고, 엄마는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같은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에 울었다는 그녀는, 이제 와서 보니 그건 여성혐오가 아니었을까 반추했다.
“52살에 완경했어요. 한번은 끝난 줄 알았는데, 한 10달 만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더라고요. 그러더니 멈췄어요. 완경 후에 몸도 허약해지고 살짝 우울했다 말았다 하고 관절염 생기고 살도 많이 쪘어요. 그런데 사실 완경보다 더 충격적인 건 노안 판정이었어요. 시력이 좋은 편이었거든요. 나름 아름답게 늙는 법에 대해서 책도 많이 읽으면서 준비해 왔는데 ‘노안입니다’에서 무너졌죠.” (이분, 54세)
이분의 이야기처럼 완경은 도둑처럼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온다. 낯설기만 한 몸의 변화와 질병들과 함께. 이제는 그만 몸에 굴복하고 몸의 소리를 들으라고 계속 사인을 보낸다. 이분은 요새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멀리 하려고 애쓰고 있다.
완경의 섹슈얼리티
▶ 완경 후 내 삶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 ⓒ일다
“아직 월경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완경 전조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늘 고독했고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서 젊어서부터 연애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오르가즘도 많이 느꼈고요. 그런데 3년 전부터 내내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어요. ‘완경=퇴물’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이제 나라는 존재가 없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껴요. 유난히 여성성에 집착하고 있어요.” (은주, 50세)
다양한 사람과 연애를 해 온 이력에 어울리지 않게, 은주는 자신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성적 수치심이 많았다고…. 은주는 완경을 받아들이는 건 책을 읽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진짜 자기 안에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싸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테다.
“완경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완경에 대해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성성을 부정하면서 살아왔고 ‘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생리할 때면 패드를 화장지로 둘둘 말고 또 검은 봉지에 싸서 버리곤 했어요.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죠. 이제는 제 여성성을 찾아가고 싶어요. 원피스도 입고 싶고 예쁜 신발도 신고 싶고….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예쁘게 밥상을 차리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소피아, 50세)
소피아는 내면 작업을 오래 해 왔다. 그 끝에 만난 건 회복을 원하는 자신의 여성성이었다. 소피아에게는 완경이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계기인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 여성성을 잃어버릴까 두렵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여성성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여성성이 도대체 뭐냐고, 남자들이 좋은 건 다 차지하고 남는 영역이 여성성인 것 같다고, 여성성에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가부장제 안에서의 협소한 여성성이 아닌 넓은 의미의 여성성, 대지 그 자체에 대해 말했다.
사회적으로는 그냥 ‘아줌마’로 퉁쳐지는 중년여성들에게 이처럼 다양한 섹슈얼리티 이야기가 있다. “아줌마도 여자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완경을 하거나 앞둔 여자들의 섹슈얼리티 이야기가 더 많이 발굴되고 회자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나온 삶의 궤적만큼이나 각자에게 완경의 의미는 다채로웠지만, 이날 7명의 여자들 사이에 흘렀던 에너지는 공통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보다 솔직하게 야성적으로 살 거라고, 온전한 자기 자신에 다다르는 길을 가게 될 거라고.
n명의 여자, n개의 완경 이야기
완경에 대한 얘기를 하자고 모였는데 자연스럽게 얘기는 각자의 인생 스토리로 흘러갔다. 어린 시절 이야기, 엄마 이야기,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 살아온 세월만큼 사연도 차곡차곡 쌓여서일까. 한 명 한 명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이 꼭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참, 이날 파티에서 완경 말고 또 축하한 것이 있다. 참가자 중 두 명이 얼마 전 이혼을 한 것이다. 한 명은 보름 전에, 한 명은 석 달 전에 이혼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이혼 축하 인사가 오갔다.
▶ 살사 스텝 배우기! ⓒ일다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살사 스텝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쿠바에 가서 3개월 동안 살사만 추고 온 뿜이 전수했다. 자꾸 어깨가 같이 들썩거려서 ‘가슴만’ 흔드는 경지까지는 못 갔지만, 다들 ‘엉덩이’는 신나게 흔들어댔다. 한의사 이유명호는 여자들이 완경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잘 살아갈 수 있는 건 여자들의 풍만한 엉덩이와 젖가슴, 체지방이 돕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절묘한가.
자궁 명상과 완경 이후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까지 갖고 나니, 7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도 할 말이 더 남아서 2차 파티 날짜를 잡는단다. n명의 여자가 모이면 n개의 완경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완경을 한 우리가 아이들 초경파티를 열어주는 거 어때요?”
“재밌겠다!”
“이런 게 진정한 ‘피자매 연대’ 아니겠어요?”
“이혼했다니까 사람들이 선물로 뭐 받고 싶냐고 해서 바이브레이터 받고 싶다고 했어요.”
“아니, 그것보다는 우머나이저(클리토리스 자극기)가 좋아요.”
“쿠바 여행 가면 체류비가 얼마나 들까요?”
“식비는 하루 3천원인데, 아침마다 춤 배우고 저녁에는 배운 거 복습하러 무도회장에 가야 해요. 그러면 음…”
완경 이후를 살아갈 지혜와 팁을 서로 나누는 가운데, 이날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는?
“생리컵이 편하다던데 그거 못 써 본 게 너무 아쉬워!!!” (나랑 기자)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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