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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월장’에서 #OO_내_성폭력 운동까지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된다
※ 작년 12월 28일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에서 주최한 집담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기사입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예비역 문화를 비판한 여학생들, 경찰조사를 받다
벌써 15년도 더 전의 일이다. 2001년 4월 25일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은 첫 번째 특집 기획 기사로 “도마 위의 예비역”을 공개했다. 그 중 하얀자두가 쓴 ‘예비역이 싫은 몇 가지 이유’는 학내에서 예비역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군사주의 문화와 권위주의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풍자와 조롱, 농담을 섞어가며 가볍게 쓴 에세이였다.
예비역 스스로가 ‘셀프디스’를 했다면 격하게 공감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하얀자두의 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월장>의 게시판은 삽시간에 욕설과 협박성 글로 도배되었다. 비공개 커뮤니티는 해킹을 당했고, 커뮤니티 회원들의 연락처가 포르노 사이트에 공개되는 등 사이버 테러와 성폭력이 이어졌다. 나아가 온라인에서 조직된 예비역 남성들이 <월장>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 급기야 필진들은 경찰조사까지 받게 되었다.
▶ 2001년 4월 25일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은 첫 번째 특집 기획 기사로 “도마 위의 예비역”을 공개했다.
월장(越牆)은 ‘담을 넘는다’는 뜻이다. “여성의 목소리여! 치마를 걷어 부치고 가부장제의 담을 뛰어넘자!” 이것이 월장이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2001년 부산대 월장 사건은 담장을 용감하게 넘은 여성의 목소리가 어떤 무시무시한 저항에 부딪쳐야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
월장 사건은 명백하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가보다 ‘누가’ 그 말을 했는가의 문제였다. 그동안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이 말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전혀 낯설거나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2000년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 위원회’)는 진보진영 내 성폭력을 문제 제기하며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때 활동했던 시타는 성폭력 사건을 부인하고 비껴나가기 위한 남성들의 전략 중 하나가 “(말해지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를 비난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음해성 공격은 일반적으로 일어나며, 대개 ‘원래 문란한 여자였다’거나 ‘당할 만한 짓을 했겠지’라는 피해자 유발론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있을 경우, 공격의 화살은 그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타 “‘우아한’ 폭력과 그 점잖은 공모자들? 학습되는 무력감, 재생산되는 폭력, 대물림되는 절망”, <페니스 파시즘>(개마고원, 2001)
그리고 2016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시작되었다. 오타쿠_내_성폭력, 출판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문학계_내_성폭력, 음악계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그 어떤 테두리 안에서나 성폭력은 끝도 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대안이라고 여겼던 운동사회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충격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 체제에 불화하고 저항한다고 믿었던(?)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들은 강간문화가 우리의 일상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을 통해 여성들의 입지가 어떻게 흔들리고 사라지고 지워져왔는지를 체감하게 되면서, 불이 번지듯 각기 다른 집단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잇따랐다.
표면적으로는 성폭력의 가해자들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문이 연이어 게시되었고, 여성들의 폭로가 이들의 입지를 뒤흔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해자와 그의 측근들이 피해자들을 추적하거나, 개인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무마하려 하는 시도가 잇따랐다. 피해자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에 목소리를 냈던 이들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도 뒤따랐다.
월장 사건이 일어났던 부산에서도 2016년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다. 지역성이 너무나 분명하고 익명의 공간으로 숨기 어려운 환경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찾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모인 이들은 이 기이한 침묵 속에서 또다시 ‘비명을 지르는 심정으로’ 발화를 시작했다.
한 명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성폭력에 대한 발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 사례가 공론화되자, 가해자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은 피해자와 이를 지원하는 모임 구성원들의 신원을 찾으며 입을 막으려고 압박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기보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가 여전히 이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집요한 공격이 결국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입을 닫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너무도 자주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해시태그 운동, 지금까지의 침묵을 발견하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지켜보면서, 그동안의 침묵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고통스럽게 되묻게 된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침묵하거나 침묵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힘겹게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는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 아닐까.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기에, 이전까지의 무시무시한 침묵을 지금 발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의 발언권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었던 <월장> 사건에서 당시의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던 이들 중 유일한 남성인 진중권은 “폭력은 다수의 묵인 속에서 비로소 저질러질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 「월장」사건과 군사문화적 집단폭력, <페니스 파시즘>) 2000년대 초반 ‘100인 위원회’의 활동 역시 ‘학습된 절망과 강요된 침묵’(시타)의 장에서 비명을 지르는 심정으로 시작되었고, 2016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 부산에서도 2016년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온신경이 곤두섰다. ‘말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적 있었나 싶다. 내가 내뱉은 말이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계속 검열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표현할지, 어디까지 말해도 될지, 다른 사람의 피해 사실을 내가 말해도 될지, 피해 사실을 서사화 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와 내 친구들의 경험이 ‘이야기’로 소비될까 우려하면서도, 동시에 이 이슈가 많은 이의 주목을 끌어 해결되길 바랐다. 그래서 말하기를 계속 했다.” (남순아, “#영화계_성폭력, 한 명의 동료도 더 잃을 수 없다”, <일다> 2016년 12월 7일자)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 경험을 다시 해석해나가는 과정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피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 문화에 대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은 여러 겹의 괴로움과 혼란스러움을 가져온다. 피해자를 규정화하는 말을 내뱉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문제의 해결에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끝도 없는 자기검열이 이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관계를 망치고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으로 찍히게 될까 두렵다. 무엇보다 이대로 고립될까 두렵다.
이는 무엇보다도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는 일들을 부단히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안타까운 시도이기도 하다. 피해 당사자가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 공적 영역에서 그 말들은 아직 제자리를 찾거나 얼굴을 드러낸 언어가 아니다. 낯-설고 불/편하다는 것 자체가 언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굴이 없고, 자리가 없는 언어다. 언어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차마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공적 영역에서 성폭력 문제는 언론에서 “나쁜 손”, “몹쓸 짓”과 같은 문제적 표현으로 등장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이미지와 그림으로 묘사된다. 용기를 낸 발화자와 그 곁에 선 사람들이 끝도 없는 자기 검열과 강요된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동안, 피해자는 왜곡되고 성폭력 사건의 본질은 사라진다.
여성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란, 여성이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여성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사적 발화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글을 쓰고 말을 하는 힘겨움 속에서도 피해자의 발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성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잃어버린 주체의 자리를 회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폭력 문화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 오고 새로운 공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성폭력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부산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왔다
“여성들이 대부분 잠겨 있는 현장.”(장필화, 또하나의 문화 제9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살아남기 위한 말, 살리기 위한 말’ 대담, 1992년) 사적 영역에 대해 이런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여성이 잠겨 있는 그 곳은 깊고 깊은 심연 속일 수도 있고, 문고리 안쪽일 수도 있다. 그곳에 잠겨 있는 여성들은 이야기를 다시 쓰거나(박완서, 같은 책) 쓰려고 보니 적절한 언어가 없어 몸부림을 치는 시를 쓰거나(김혜순, 같은 책) 해왔다.
그동안의 세계가 완전한 침묵의 세계만은 아니었다.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말하기를 해왔다. 문자나 소리와 같은 공적인 장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더라도,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여성의 말하기’는 공적 영역에서 담론이 되어가는 중이다.
다시, 2001년 월장 사건이 일어났던 해를 떠올려본다. 월장의 필진들은 사이버 성폭력을 당한 이후, 이전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자 한동안 이어졌던 침묵의 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게시판으로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해방공간처럼 열리던 그 활발한 논쟁의 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몇몇 여성들이 자신이 겪어왔던 차별의 경험들을 드러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상적으로 겪어왔던 성폭력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월장 <웹진>을 만든 필진 중 한 명인 박혜정 씨가 최근에 부산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다음과 같은 운동을 제안했다. 1)같이 싸울 사람들을 만들기, 안전한 환경 만들기 2)성폭력 행태에 정색하는 문화 만들기 3)성폭력 피해자 지원하기. 나는 이것이 <월장>이 웹진이라는 공적 영역의 장을 만들며 여성의 말하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우리는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공적 매체에서 여성의 언어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물론 피해자의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으며, 아직까지도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시태그 운동은 폭력으로 인한 분노와 상처를 공론화시키는 발화로 이어가고 있다. 말 못할 고통이기보다 말하고자 하는 고통이다. 여성의 경험에 대한 공론화는 낯설고 불편하다는 수식어를 거부하는 여성의 말하기이자. 이 ‘총체적 가부장제’(박혜정)의 세상 속에서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말하기이다. ‘어떻게 여자가 감히’의 시대를 넘어, 여성의 말하기가 곧 공론장의 언어가 되는 세계를 우리는 함께 상상하고 있다. (변정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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