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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성희롱 피해자를 얼마큼 지켜주고 있나?

르노삼성 성희롱 항소심 판결의 의미와 과제(上)


※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회사 측 책임과 ‘불이익 조치’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살펴보며 그 의의와 한계와 과제를 짚어봅니다. 필자 나영 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의 종합판,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은 2016년 직장내 성희롱 상담 309건 중에서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에 관한 상담 비율이 47.25%(146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피해에 대해 문제 제기한 노동자가 회사 측으로부터 각종 ‘불이익 조치’를 당하는 일이 절반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회사 측에서는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징계를 내리기도 한다. 부당한 인사 조치를 하거나 조직 내에서 왕따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성희롱 2차 피해 실태 및 구제강화를 위한 연구>에서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 450명 중 40.2%인 181명이 성희롱을 당해도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봐’가 34.8%, ‘고용상의 불이익을 당할까봐’가 19.9%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성희롱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각종 불이익 조치는 성희롱 사건을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법적으로 이러한 불이익 조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14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사업주는 성희롱 피해노동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2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회사 측이 처벌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2015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린 항소심 판결은 중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과,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의 불법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3년부터 피해자의 문제 제기로 대응이 시작된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문제 제기 이후 회사 측이 행한 각종 불이익 조치,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까지 직장내 성희롱 사건의 종합판 같은 문제들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항소심 판결의 의의와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성희롱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력자’로서 동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르노삼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르노삼성자동차 소속 중앙연구소에서 일하던 피해자는 2012년부터 1년 동안 직속 상사인 팀장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2013년 3월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리자, 부서 책임자는 “두 사람 모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인사팀에 이 사실을 공식화하거나 회사 밖에서 문제 삼을 경우 내가 다친다”는 등의 발언으로 사실상 피해자가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르노삼성 서울사무소에 사건을 신고하자 소위 ‘왕따’ 분위기를 만들어 피해자를 고립시켰다.

 

또한 사건의 내부 조사를 담당한 인사팀의 직원은 피해자의 성격 운운하는 발언 등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소문이 유포되게 하였고, 인사팀장 역시 이를 방기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담당 이사, 그리고 인사팀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동료에게 진술서를 받자, 회사는 도리어 피해자에게 “동료를 협박해 진술서를 받았다”며 2013년 9월 견책 징계를 내렸다. 다음 달에는 연구직에서 일반 사무직으로 업무를 전환시켜버렸다. 심지어 민사소송을 도운 동료까지도 갑자기 근무태만을 이유로 정직 징계를 받았다.

 

이와 같은 불이익 조치들에 대해, 피해자와 동료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호소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 판정이 내려지자, 이틀 뒤 회사는 사물함에 있는 짐을 싸서 퇴근하는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기밀문서를 빼돌렸다”며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고 고소까지 했다. 대기발령 조치 이후 두 사람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항소심에서 회사의 ‘불이익 조치’ 일부 인정

 

피해자는 가해자와 소속 부서의 책임자, 인사팀장,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는 가해자인 팀장의 성희롱 사실만 인정하고 1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밖의 2차 피해와 부당징계,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회사 측의 책임 등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 18일 선고/사건번호 2013가합536064)

 

피해자는 다시 르노삼성자동차의 대표이사를 상대로 항소심을 제기했다.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와 인사팀 직원의 비방과 협박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사용자 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제10민사부는 회사 측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피해자에게 1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 12월 18일 선고/사건번호 2015나2003264)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피해자가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이후 회사측이 그동안 해 왔던 연구 업무에서 피해자를 배제하고 사무 업무로 배치한 사실에 대해 남녀고용평등법 14조를 위반한 위법 행위로 판단한 지점이다.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는 보호대상 아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외에 피해자에 대한 사측의 견책처분, 직무정지, 대기발령, 고소 등에 대해서는 모두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의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회사 측의 조치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피해자의 문제 제기’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른 실질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본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가 행한 조치들은 실제 다수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의 문제 제기 사실을 덮고, 행동을 제약하거나,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 회사 측이 흔히 자행하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 측이 불이익 조치들을 더욱 악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다. 회사 측은 얼마든지 다양한 명분을 내세워 성희롱 피해자들을 압박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치들이 성희롱 문제제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명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면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성희롱 사건 해결에 함께하는 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평범한 용기> 중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또한 1심과 항소심 판결에서 여전히 중요한 문제점으로 남는 것은,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게 가해진 직무 정지 등의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이익 조치’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서 조력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장 동료들의 증언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료들의 지지로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을 때 사건 해결은 물론 조직문화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는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만큼이나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함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 모두 법이 보호할 수 있어야

 

이와 같은 한계들을 개선하기 위해 장명선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2차 피해 금지 규정’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2016년 8월 26일 ‘르노삼성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판례 평석회 <법원,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 책임과 사측의 ‘불리한 조치’를 인정하다 -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항소심 판결의 의의와 과제>에서 발표.)

 

장명선 교수는 공익신고자보호법 2조 6호의 불이익 조치 조항과 성폭력피해자보호법 8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의 금지 규정’을 참고로 하여,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의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파면, 해고 등 신분상의 조치와 징계, 정직, 감봉 등 부당 인사 조치를 포함하여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치, 평가에서의 차별, 임금이나 상여금 차별 지급, 기회 차별이나 근무조건에서의 차별 조치, 집단 따돌림, 폭행이나 폭언, 이와 관련된 암시나 협박, 비난 등을 구체적인 예시로 명시하자는 것이다.

 

또한 불이익 조치의 대상을 성희롱 피해자만이 아닌 동료 조력자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성희롱 피해자 또는 성희롱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 및 성희롱 피해와 관련 있는 자에게”라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취업규칙의 제정 과정과 마찬가지로,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 ‘성희롱 예방 및 사건 처리 규정’을 의무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들은 직장 내 성희롱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며, 향후 적극적으로 실제 법안의 개정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가야 하겠다.  (※2편 기사 http://ildaro.com/7817)  나영_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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