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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일 뿐이다

여성연예인들의 안전한 일자리 보장하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기자



‘남배우 A 성폭력 사건’. 이 사건은 2015년 7월,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남성배우 A가 ‘연기’라는 명목으로 상대 여성배우에게 미리 고지하거나 합의하지 않은 행동을 해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여성배우는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15세 관람과의 휴먼 드라마로 노출 씬은 없을 것이라고 들었다. 해당 장면에 대해 감독은 피해자에게 “몸의 멍자국을 보여줌으로써 평소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공소 사실에 따르면 배우A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감독, 피고인, 피해자가 사전 협의한 내용과 전혀 다르게 피해자를 폭행하고, 속옷을 찢고, 가슴을 만지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추행하는 행위를 했다.

 

여성배우는 해당 장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 A의 행동에 대해 항의하고 스태프와 감독에게 추행 사실을 알려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1년 5개월만인 지난 해 12월 2일, 수원지법 부천지원 제1형사부는 A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감독과 피고인이 충분한 해명 또는 사과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상황을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A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배역에 몰입해 연기’한 것이고 이는 업무상 행위이므로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죄 판결의 취지였다.

 

▶ 3월 8일 서울고등법원 앞.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기자회견 ⓒ일다

 

‘배역에 몰입해 연기’한 것? 피해자 진술에 귀 닫은 판결

 

남배우 A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에 항의하고, 항소심 재판부에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기 위한 여성운동계 기자회견이 열렸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은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와 한국여성민우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법원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묵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영화계의 관행’이라 이름 붙이며 폭력을 장려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기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합의 과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저예산 영화 촬영의 ‘특수성’”으로 판단한 재판부를 비판하며, “이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해 더 많은 수익을 내려는 투자사나 제작사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합의되지 않은 연기는 ‘배역에 몰입한 연기’가 아니라 ‘연기를 빙자한 폭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찍는 페미’의 신희주 영화감독은 “재판부가 어떤 사람의 증언보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피해당사자의 진술을 배제하고 A씨 측에 유리한 진술만을 택해서 판결을 내렸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또한 신희주 감독은 “남배우 A씨에게 묻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수많은 필모그래피(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리스트) 중에서 남성배우를 상대로 그렇게 사전에 말도 없이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까? 교통사고 장면을 찍을 때 말도 없이 차를 박고 폭행 장면을 찍을 때 합도 맞추지 않고 상대 배우를 때린 적이 있습니까? 살인 장면을 찍을 때 정말로 사람을 찔렀습니까?”

 

백재호 감독은 “제가 참여한 영화에서 폭력 장면이나 베드신을 촬영할 때는 다른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보다 충분히 논의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촬영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카메라 앵글 밖의 부위를 만지고 옷을 찢기고 벗겼다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연기로 용인된다면 또 어떤 범죄가 영화, 연기라는 미명 아래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하며, 항소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했다.

 

▶ ‘남배우 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일다

 

영화가 뭐길래, 여성영화인의 ‘안전한 일자리’가 우선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해당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 또한 규탄했다. 신희주 감독은 “피해자는 지난 2년 동안 허위 사실로 비방당하며 철저하게 고립된 채 고통을 받아왔다. 무책임하게 방관해온 감독과 제작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신 감독에 따르면 “해당 영화의 감독과 제작과, 스텝들은 사건 직후에는 ‘추행 사실을 몰랐다, 고소한다면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

 

신희주 감독은 이어서 “한국영화계에 만연한 성범죄와 강간 문화는 가해 행위에 침묵하는 다수의 영화인들 때문이기도 하다”고 일침을 가하며, “이제라도 멈춰 서서 무엇이 정의인지 생각할 것”을 촉구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영화가 만들어진지 100년이다. 그런데 그동안은 이 장면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나올지가 중요한 100년이었지, 이 사람이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나 안전하게 일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은 100년이었다”고 말했다.

 

“영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람의 안전을 무시하고 피해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가. 내일도 모레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안전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3월 8일 서울고등법원 앞.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기자회견 ⓒ일다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 새롭게 제작 예정

 

한편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영화계를 포함해 다양한 연예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연예인들의 안전한 노동을 위해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을 제작,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제작되는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은 지난 2011년 제작본의 새로운 버전으로, 급변하는 연예계 실태에 맞게 수정되어 배포될 예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연예계 내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폭로한 故장자연씨의 죽음 이후, 지난 2010년에 <여성연예인 인권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윤정주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2009년 장자연님이 돌아가신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연예산업 안에서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연예인 인권지원센터>가 개소된 후 지난 7년간 상담이 많이 접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배우 일이나 연예계 일을 이제 정말 접겠다는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쉽사리 문제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어요. 각종 인맥으로 얽혀 있고 한번 ‘문제 제기하는 애’로 낙인이 찍히면 연예계를 떠나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은 여성연예인들이 부당한 행위를 당하거나 항의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지침을 담을 계획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제작되는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은 각 대학의 연극영화과 등에 배포할 예정이며, 향후 여성연예인 인권에 대한 강의 등을 통해 여성연예인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가이드라인’ 제작 후원하기-> http://bit.ly/2lFYN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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