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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일하는 사회, 산재는 인정될까?

<반다의 질병 관통기> 이토록 무방비한 산업재해 사회(2)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산재보험, 알면서도 못 쓰는 이유

 

“아프냐, 나도 아프다.”

회사원들의 흔한 점심시간 대화다. 일시적 통증이나 피로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만성적으로 안 아픈 사람이 드물다. 한명이 아프다는 말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나도 아프다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두통, 소화불량처럼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질병부터 허리디스크, 거북목증후군, 고지혈증, 뇌졸중에 이르기까지 온갖 병명이 등장한다. 이어서 어떤 음식이 좋다더라, 어느 병원이 잘 한다더라, 이런 운동을 해봐라 같은 이야기를 왁자하게 나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실제 그것들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얻은 것에 위안 삼는다. 그리곤 다시, 죽도록 일을 하러 사무실로 돌아간다.

 

아파도 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즉 질병이나 피로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출근해서 일하고, 그로 인해 업무 생산성도 떨어지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직장에 만연해 있다. 지난해 프리젠티즘 현실을 보여주는 조사가 진행됐다. ‘최근 일주일 동안 건강 문제가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57.4%로 절반을 넘었다. 건강 문제가 일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보통을 넘는 ‘심각’ 수준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16.9%에 달했다. 업무에 영향을 미친 건강 문제는 근골격계 증상이 가장 많았고, 수면 문제가 뒤를 이어 만성적인 피로가 업무를 포함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한국노총, 원종욱 연세대 의대교수)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고 출근을 한다. 그나마 병원에서 치료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병원 갈 틈을 낼 수 없어서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병원비가 몇 배로 들지만, 병이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으로 삼는다. 의사는 잦은 야근과 과로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온 것(산재)이라며,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 약물치료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휴식만 취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 산재보험, 나도 실제로 적용받을 수 있을까?  ⓒ출처: 노동건강연대

 

사실 많은 직장인들은 너무 오래 많은 양의 일을 하느라 몸이 아프게 됐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일하느라 아프게 된 것이니,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치료비와 휴업급여는 물론 치료 후에도 남을 수 있는 장해에 대해 장해급여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심지어 이후에 해당 질병이 재발하면 손쉽게 재요양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산재보험법에 쓰여 진 내용은 그렇게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산재를 신청해도 인정받기 쉽지 않을 뿐더러, 회사가 알면 고용 재계약을 안 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프면 회사 그만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두렵다. 운이 좋아 정규직 신분일 지라도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회사가 고용노동부로부터 근로감독을 받기 때문에, 회사에 밉보이기 쉽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서 산재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하고 자신 돈으로 치료비를 지불한다. 병가를 낼 수 있으면 운이 좋고, 연차라도 쓸 수 있으면 감사하다.

 

#이윤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심지어 기업이 노동자의 산재를 인지하게 되면, 은폐하려고 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오죽하면 직장에서 쓰러진 사람을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에 실어서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일이 발생한다.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생명이 위독한 사람을 앰뷸런스에 탈 수 없게 만들어서, 트럭에서 응급치료도 받지 못 한 채 골든타임을 놓치고 사망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반복된다. 그러니 당장 죽지 않는 질병의 경우는 더더욱 ‘꼼수’를 써서, 산재처리를 하지 않도록 노동자를 종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현실은 개인 차원으로 봤을 때도 억울한 일이지만, 사회 전반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간단히 산재보험과 국민건강보험 재원을 살펴보자. 일단 산재보험은 노동자에게 업무로 인한 질병, 사고, 사망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보상하는 사회보험으로 사업주가 전액 보험료를 낸다. 기업은 노동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므로, 노동자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 기업부담 원칙을 둔 것이다. 반면 국민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매달 국민이 낸 보험료로 구성되는 재원이다.(노동자는 사업주와 노동자 절반씩) 그렇다면, 산재로 인한 질병과 사고를 산재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동자를 통해 돈을 버는 건 기업이고, 그 기업에 돈을 벌어주다가 발생한 질병과 사고 치료비용은 국민이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은 일하다가 아프게 된 노동자에 대해 산재처리를 하지 않음으로서, ‘산재 적은 우수기업’으로 인정받고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까지 받는다. 2015년에 삼성그룹 1천9억, 현대자동차 785억, SK 379억 등 감면 혜택을 받았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셈이다. 산재보험을 둘러싼 기업의 행태가 ‘이윤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말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이 구조화된 적폐에 한숨도 쉬기 싫고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런 적폐에 맞서 자신과 동료의 질병, 사고, 사망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용감히 싸우는 이들도 많다. 반드시 산재로 인정받아야 직장 환경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개선되고 질병, 사고, 사망이 반복되는 현실에 균열을 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기업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  ⓒ출처: 뉴스타파

 

#시민 건강보다 기업 ‘영업비밀’이 우선인 사회

 

잠시, 산재 인정 투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이야기를 보자. 반올림에 따르면 2017년 1월 기준으로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는 229명이며, 이중 79명이 사망했다. 故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 10년이 됐다. 그리고 시민 다수가 삼성직업병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그 죽음과 질병에 대해 산재라고 인정받은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현재 법 규정은 산재를 당한 피해노동자가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입증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백혈병에 걸린 이유가 업무 과정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됐기 때문임을 노동자가 입증해내야 비로소 산재로 인정된다. 따라서 작업장에서 사용된 화학물질 내역과 여러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반올림 활동가로 2007년부터 삼성직업병 산재신청과 소송을 하고 있는 임자운 변호사. 그는 지금까지 벌여온 산재 인정 투쟁은 ‘영업비밀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산재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법원의 질의 및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비율이 83%에 달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영업비밀’이었다. 기업의 영업비밀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자료는 제출 되지 않고, 몸이 아프고 죽게 된 노동자의 알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산재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게 상식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시민(노동자)의 건강보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더 중요시 된다는 의미다.

 

국민의 건강권과 기업 이익과 관련하여, 또 떠오르는 일이 있다. 삼성직업병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두해 전 인 2005년, 한국여성민우회는 일회용 생리대 제조기업에 생리대 원료와 화학성분에 대해 질의한 바 있다. 알다시피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고, 시민건강권 차원에서 제기된 질의였다. 면 생리대로 바꾸면서 짓무름, 월경통 등이 완화된 이들이 적지 않고, 일회용 생리대가 보편화되면서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질염 등의 발병률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며 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시민(여성)의 건강보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더 중요한 사회라는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물건을 팔아주는 소비자에게도, 소비자 건강보다 영업비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기업. 그리고 그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기업중심 사회. 이런 사회이니, 기업이 소비자도 아닌 노동자의 건강 앞에서 ‘영업비밀’을 주장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정말 이토록, 시민의 건강보다 기업의 이윤이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야근, 비정규직, 하청노동…산재국가의 노동환경

 

지난해 삼성전자는 29조 2천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역대 두 번째로 거대한 이익 규모라고 한다. 그런데도 노동자를 3천698명 줄였다. 이익이 늘었다는 것은 일의 양이 늘었다는 것과 연결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노동자 수를 줄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노동 강도가 더욱 세졌다는 것, 신종 발암물질이라고 불리는 야근이 늘었다는 것. 그래서 노동자들이 더 많이 질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고, 사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위험한 노동을 담당하던 노동자들을 줄이고, 그들이 하던 노동을 2,3차 하청기업 노동자에게 전가했다는 의미일까.

 

인구의 다수가 임금노동자다. 직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이 지켜지지 않는데 시민의 건강권이 지켜진다는 건 불가능하다. 노동자 당사자뿐만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사회적 돌봄과 안전망이 거의 부재하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아빠가 아프면 자녀들은 건강하게 돌봄 받기 어렵다. 자녀들이 일하느라 몸이 아픈데 고령의 부모를 돌볼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일하느라 몸이 아프지만, 가족 안에서 돌봄을 기대 안/못하는 이들은 급속도로 나락으로 미끄러지고 만다.

 

하지만 한국은 직장에서 노동자 건강권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1960-1970년대엔 빨리 나라가 배고픔을 면해야 해서, 1980년대엔 겨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있어서, 1990년대엔 IMF 금융위기가 와서, 2000년대엔 실업률이 높아져서….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이유가 생길 것이다. ‘산재국가 1위’ 타이틀을 대한민국이 매년 놓치지 않는 건, 이렇게 다 이유가 있다! 쉼 없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추구한 결과,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쁜 노동 환경이 형성됐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추구하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죽도록 일하다가 서서히 죽거나(질병), 한 번에 죽거나(사고, 돌연사), 쫓겨나서 생계가 막막해서 죽거나(해고) 혹은 그 셋에 속할 기회(?)도 없이 실업 속에서 빈곤해서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1%를 위한 헤븐-조선 번영을 위해, 99%가 헬-조선에서 경쟁적으로 부역하는 사회에 살게 됐다. 그리고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사건, LG 콜센터 사망사건, 공무원 워킹맘 사망사건, 경산 CU편의점 사망사건, 넷마블 사망사건,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망사건, 삼성 하청업체 실명사건 등등. 사회 곳곳에서 아비규환, 죽음의 행렬이 계속된다.

 

▶ 우리는 촛불광장에서 ‘재벌도 공범’이라고 외쳤고, 마침내 이재용을 구속시켰다! ⓒ출처: 민주노총 카드뉴스

 

#일상의 광장, 다양한 광장에 참여하자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지난겨울 ‘광장’을 통해 촛불혁명을 만들었다. 가슴 벅찬 대통령 탄핵에 이어, 박근혜-최순실 구속에 이어, 초국적 초법적 기업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드디어 유사 이래 적폐청산이 제대로 시작될 수 있는 혁명이 발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헬-조선 탈출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광장’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뜨겁게 목격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삼성에 노조만 있었어도 내 딸은 살아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계속 ‘광장’이 필요하다. 광장에서 촛불의 파도를 만들며 느꼈던 ‘조증’, 광장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 느꼈던 ‘울증’을 통합해내자. 일상에 ‘광장’이 필요하다. 일상 곳곳의 광장을 재발견하자. 직장에서 노조, 여직원모임, 직원협의회 등의 다양한 ‘광장’에 참여하고, 없다면 직장 밖에서 희망연대노조,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등 다양한 ‘광장’에서 자신의 현실을 폭로하고 서로의 현실에 참여하자. 그 속에서 서로의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하며 설치고 떠들고 연대하자. 헬-조선에서는 살아남는 게 복수라고들 한다. 아프지 말고, 함께 살아남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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