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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반다의 질병 관통기> 아픈 몸과 사는 ‘마음’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랙홀 같은 몸의 시간이 찾아올 때
비가 잦은 계절. 건설노동자도 아닌데 비 내리는 날은 하루를 공친다. 현기증이 심해지고 몸도 유난히 무거워진다. 특히 맑은 날씨에서 흐린 날씨로 옮겨가며 기압 변화가 심한 날은 몸도 따라 변덕을 부린다. 이런 날은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내게 된다.
▶ 한번씩 정지되는 시간 ⓒ원본: Pixabay
어떤 날은 비가 오지 않는데도 책 한 페이지 읽는 게 너무 더디다. 읽은 곳을 읽고 또 읽는다. 마치 뇌주름에 해파리라도 붙어있는 듯 뇌가 개점폐업 상태 같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전화를 하려던 건지 문자를 확인하려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뒤에야 오늘 새로 받아 온 약 먹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알람을 맞추려고 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한 달에 며칠씩 이런 상태가 되는데, 몸일지를 살펴보니 주로 배란기나 월경기에 그렇다. 한의사 말로는 배란기, 월경기에 신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나는 워낙 신체 에너지가 저조하기 때문이란다.
버스 의자에 앉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내릴 곳을 지나쳤다. 집에서 점심밥을 먹자마자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땅 밑으로 몸이 꺼질 것만 같다. 식탁 위 접시들을 한쪽으로 미뤄두고 잠시 엎드린다. 아주 잠깐인 것 같은데 30분도 더 지났다. 피곤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내과의사 말로는 저혈압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란다.
몸은 평소에 무리 없이 잘 지내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블랙홀 같은 시간을 만든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고 마감 날짜들도 다가오는데 멍하니 시계만 본다. 지나가는 시간에 초조함이 밀려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자책한다. 그러다가 지금은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시간임을 자각하고서야, 자책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하지만 째깍거리는 시계초침 소리가 들리는 순간 자책감도 다시 고개를 든다. 마음에 폭풍우가 시작될 때쯤, 버려진 약봉지를 보고서는 약 먹을 시간이 지났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나는 아픈 몸과 살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때로 수용하기 힘든 ‘아픈 몸’
몸은 분명 예전보다 좋아졌다. 사전에 컨디션만 잘 조절하면, 서너 시간씩 산행도 하고 이따금 술도 한잔씩 한다. 하지만 몸은 한번씩 ‘너는 아픈 상태야’ 라고 뚜렷하게 말한다. 의사가 출퇴근하거나 에너지 많이 쓰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해서, 겨우 몇 군데 원고를 쓰고 이따금 회의나 강의를 나가는 게 전부인데. 그것도 몸은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직도 이 몸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한 나의 기분에서는 우울한 냄새가 난다.
건강한 이의 몸이 잔잔한 강이라면, 아픈 이의 몸은 수시로 바뀌는 바다이기 쉽다. 이른 아침 잔잔했던 파도가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거세진다. 오후 시간을 위해 해변에 펼쳐놨던 돗자리, 책, 노트 등은 모두 거센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되찾으려고 하면 괴로워진다. 거친 파도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 삶이 얼음판 위에 놓여있는 것 같다 ⓒPixabay
그러니까 아픈 이후로는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산다. 얼음판은 때로 아스팔트와 마찬가지로 매우 단단해서 썰매를 탈 수도 있지만, 온도가 조금만 바뀌면 얼음은 금세 슬러시처럼 되어 버린다. 단단할 줄 알고 걸음을 내딛었다가 첨벙하기도 한다. 얼음 위에서는 걸어야 하지만, 물속에서는 헤엄을 쳐야 한다. 물속에 있는 몸이 되었을 때는 헤엄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이렇듯 내 일상은 아무 때고 불현듯 정지된다. 건강할 때는 단단한 아스팔트 위를 걷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삶이 언제든 녹을 수 있는 얼음판 같다. 그 불안정함이 싫다.
때로는 과거 건강했을 때의 몸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좋은 게 아닐까라는 상상을 한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를 되뇌는 과거의 용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빛나던 과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그 기억이 없다면, 현재의 상황을 수용하고 행복해지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지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것도 현재의 몸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지금의 몸을 수용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걸 할 수 있는데, 어떤 날은 수용할 수 있고 어떤 날은 조금도 수용하지 못한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갇히지 않기를…
사람들에게 늘 말해왔다. 질병이 몸의 자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질병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몸이 아픈 이를 이해하기 위해 병명이나 치료법을 아는 건 일부분이며, 그 불안과 결핍을 이해하는 게 아픈 몸과 함께 사는 이를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라고. 기실 그 모든 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픈 나를 잘 돌본다는 건 약과 음식을 잘 챙겨먹는 것 뿐 아니라, 깊숙한 불안을 잘 보살펴 주는 일이다.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픈 몸이 블랙홀 같은 시간을 만들 때마다, 마음도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결국은 몸에게 꼭 한 번씩 화를 내고 만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월경혈이 흐르듯,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아프거나 힘없이 뻗어 버리는 몸을 미워한다.
▶ 나에게 기도 ⓒ이미지 제작: 조짱
만트라를 외우듯 오늘도 말해본다. 이 몸을 미워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를.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님을 잊지 않기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기대하거나 포기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기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건강한 몸에 압도되지 않고, 정상에 집착하지 않기를….
아픈 몸과 사느라 지친 마음 위에 가만히 손을 포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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