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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해가자

<반다의 질병 관통기> 어떤 치료를 선택할 것인가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갑상선암 수술한 거 후회해요. 손발 저림도 자주 있고, 체력이 너무 딸려서 직장도 그만뒀어요. 암세포가 왼쪽에만 겨우 0.4cm에 주변 침범도 전이도 없었어요. 그런데 전절제 수술에 방사성요오드 치료까지 했거든요. 반다님, 반절제 수술한 거 정말 부러워요.”

 

갑상선암 환우회 카페에서 알게 된 이들과 가끔 정보나 위로를 나누는 데, 일부 멤버들이 내게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암환자들끼리 수술 방식을 놓고 부럽다는 표현을 하는 게 처음엔 조금 우스워 보였는데, 환우회 카페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다.

 

특히 갑상선 양쪽을 모두 제거하는 전절제(全切除) 수술을 한 이들이 최근 1,2년 사이 부럽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이미 수술을 한 이들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지만, 사실 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료에 관한 나의 가치관이 없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담당의사 지시에 무조건 따랐을 것이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 갑상선 관련 용어 정리   ⓒ이미지 출처: 질병관리본부 국가건강정보 포털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주변의 온갖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밀고 갈 때가 있다. 2011년 1월도 그랬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출혈과 현기증 그리고 비 맞은 옷을 입고 있는 듯 늘 차갑고 눅진한 몸과 함께 살고 있을 때였다. 병원의 여러 과를 돌아 다녀도 나의 증상에 대해 뾰족한 진단명도 치료법도 제시 받지 못해 지쳐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받아본 종합검진에서, 엉뚱하게도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시기이기도 하다.(위의 증상과 갑상선암은 관계가 없다.)

 

처음 갑상선암 진단을 한 Y대 병원의 의사와, 오진인 건 아닐까 싶어 다시 가본 S대 병원의 의사 모두 빠르게 수술 일정을 잡겠다고 했다. 오른쪽엔 1.2cm 암세포 하나, 왼쪽엔 0.5cm 이하의 암세포로 보이는 결절이 여러 개 보인다고 했다. 갑상선 양쪽을 모두 제거하는 전절제 수술이 필요하다며, 수술 후에는 잔존하는 암을 예방하기 위해 방사성요오드 치료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갑상선암은 내 몸에 불편하거나 위험한 증상을 유발하지 않았고, 주변 침범도 전이도 없었다. 게다가 성장도 느린 거북이 암이다. 그럼에도 굳이 예민한 호르몬 기관인 갑상선을 통째로 제거하는 게 맞는 걸까? 심지어 미량의 방사성 물질을 알약으로 섭취하는 방사성요오드 치료까지?

 

나는 일단 수술 일정을 취소했다. 물론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이들은 불안해하며 만류했다. 갑상선암이 전이돼서 사망한 사례를 들고 와서 나를 간절하게 설득하는 이도 있었다.(그때는 지금처럼 갑상선암 수술 과잉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주변 사람들의 염려가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갑상선까지 제거한다면, 다양한 수술 후유증이 생기진 않을지, 체력이 더 저하되진 않을지 염려됐다. 이런 염려를 담당 의사들에게 전했지만, 잘 모르겠다며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나는 식이요법과 침뜸 요법으로 몸의 면역력과 자정작용을 최대한 키우면서, 출혈과 현기증의 개선을 도모했다. 동시에 6개월에 한 번씩 갑상선 검사를 병행했다.

 

한쪽 갑상선만 제거하는 수술을 선택하다

 

결국 여러 고민 끝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지 만 2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수술을 결정했다. 하지만 애초 의사들이 권했던 전절제 수술을 받고 싶진 않았다. 워낙 나의 의료적 가지관은 최소수술, 최소약물인데다가 일본을 비롯한 몇 군데 해외 사례를 살펴보니 나에게는 한쪽 갑상선만 제거하는 반절제(半切除)가 더 적합해 보였다.

 

나는 갑상선 외과의사들 중에서 최소수술, 최소약물을 지향하는 의사를 찾아 봤고, 결국 나와 의료 가치관이 비슷한 의사로부터 갑상선의 오른쪽만 제거하는 반절제 수술을 받았다. 물론 방사성요오드 치료는 하지 않았다.(전절제 수술환자에게만 치료할 수 있다.) 담당의사는 일부 의사들이 반절제 수술 이후에도 예방 차원에서 처방한다는 갑상선호르몬제도 처방 하지 않았다.

 

나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만족했지만, 가까운 이들은 수술한 것을 다행스러워 하면서도 남겨둔 갑상선의 결절이 암일지도 모르는데 불안하다며 근심어린 소리를 자주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갑상선암 수술 가이드라인이 최근 변경됐기 때문이다.

 

▶ 갑상선암 과잉수술 논란과 함께 수술 건수도 큰 변화가 있었다. (최근 5년 사이 42% 감소) ⓒ이미지 제작: 조짱

 

2015년 미국 갑상선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cm 이하 결절은 암세포 여부 검사를 안 한 채 관찰할 것을 권하고, 1-4cm 암세포는 주변 침범이나 전이가 없다면 전절제와 반절제 중에서 선택, 4cm이상이면 전절제하도록 했다. 또한 2016년 11월 한국의 대한갑상선학회도 새로운 권고안을 발표했다. 전이나 주변 침범이 없는 1㎝ 미만의 작은 갑상선암은 수술하지 않고 관찰하고, 1-4cm 암세포는 반절제 수술할 수 있으며, 예방적인 방사성요오드 치료도 많이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물론 내가 수술을 하던 당시는 2013년 가을이었고, 위와 같은 의료가이드가 나오기 이전이었으며, 전절제 수술이 훨씬 일반적인 시절이었다. 누군가는 선견지명이 있었냐고 하지만, 의료인도 아닌 내가 특별한 지식이 있었을 리 없다. 다만, 아프기 이전에 의료에 관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게 갑상선 암을 포함해 여러 의료적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됐다.

 

의료에 대한 가치관 정립해두기

 

일반인이 의료에 대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게 여전히 낯설다는 이들이 많지만, 건강하던 내가 몸이나 의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투쟁 이외에도 평소에 자급자족율을 높이는 삶, 자본과 좀 더 거리를 두는 삶에 관심을 두고 일상을 재구성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화폐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물교환을 즐기고, 미용실을 가지 않기 위해 머리를 스스로 자르고, 은행 이용도 최소화하는 삶을 시도해 보던 시절이었다.

 

그때 처음 의료와 몸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됐다. 의료자본에 덜 휘둘리며 살기 위해선 일단 아프지 말아야 하고, 일상에서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도 필요했다. 주말이면 민중의료라든가 의료산업에 대한 책을 읽고 세미나도 하면서, 양한방의 의료관 차이나 의료자본 시스템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린 시절 사소한 질병 치료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됐고, 나의 의료에 관한 가치관도 정립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현대의학은 정밀한 검사와 뛰어난 외과 수술 능력이 있지만, 몸을 총체적 유기체로 보는 것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병이 오면, ‘몸의 조화가 깨져서 질병이 오는 것으로 인식’하는 한의학적 관점 하에, 좋은 생활습관과 면역력을 높이면서 적절히 최소한의 수술을 하는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의료도 시스템 안에 놓여 있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고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나는 환자들이 ‘의사가 전문가인데 가장 잘 알겠지’라며, 무조건 의사의 말에 의존하는 게 반드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지만, 의사마다 그 최선의 ‘선택’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수술을 한 뒤에 그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안고 살아갈 주체는 환자이고, 여분의 몸이 있는 게 아니니 후회나 원망을 한들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 인생에 대한 가치관처럼, 의료에 대한 가치관도 갈림길에서 좋은 지표가 되어준다. ⓒ이미지 제작: 조짱

 

위에 설명한 갑상선암 수술이 바로 그 좋은 예시다. 특히 갑상선 한쪽에만 암이 있을 경우의 전절제와 반절제 논쟁이 그렇다. 전절제를 선호하는 의사들은 갑상선 한쪽에만 암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편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존재하거나, 림프절로 전이돼 있을 확률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재발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전절제 수술이 안전하다고 보는 것 같다. 잔여암을 치료하는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반절제를 선호하는 의사들은 갑상선암은 매우 느리게 성장하므로, 남겨놓은 갑상선에 대해서는 꾸준한 정기검진을 받으면 된다고 말한다. 전절제를 할 경우 갑상선호르몬이 더 이상 신체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니, 갑상선호르몬제를 매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뛰어나다 한들 자신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만큼 좋을 수는 없다. 또한 수술 후유증이나 합병증 발병은 전절제가 반절제의 2배다. 굳이 예방 차원에서 전절제를 하는 건 환자 삶의 질을 고려했을 때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고, 나는 각 환자들이 자신의 의료적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많은 의사들은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걸 단일하게 제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많은 환자들은 다른 치료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담당의사가 제시한 치료법을 따라간다.

 

나의 경우도 처음 갔던 두 군데 병원에서 의사가 반절제 수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최소수술, 최소약물이라는 의료 가치관을 갖고 있던 터라 혹시 갑상선을 제거하지 않는 치료법은 없을지 자료를 찾다가 반절제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의료라는 것도 결국은 변화 발전 과정에 있고 오류를 겪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렸고, 한국이 많은 것을 참고 하는 일본이나 미국의 사례를 살펴본 게 도움이 됐다.

 

아플 때도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길

 

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질병에 대한 불안감을 의료 관련 시장이 권하는 민간보험 가입과 건강보조제 구입으로 해소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종종 지인들에게 중증 질병을 진단 받기 이전에, 자신만의 의료 가치관을 형성해 볼 것을 권한다.

 

중증 질병일수록 의사는 진단 결과를 전함과 동시에, 빠른 수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증 질병일수록 환자를 위해 의료적 개입을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자들은 자신에게 그런 병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불안하고 고민할 여력도 없으니, 의사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한 번씩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질병 치료와 관련해서 어떤 관점으로 선택해야 할지 사유해 볼 심적 여유가 없다. 치료 후유증, 합병증이 없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그때부터 괴롭다.

 

중증 질병은 인생에서 큰 사건이고, 동시에 매우 빠르게 많은 것을 결정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특히 빠른 선택이 필요할 때, 인생에 관한 자신의 가치관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면 더 없이 유용한 나침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질병을 겪을 때도 사전에 자신의 의료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더욱이 아플 때도 자신 삶에 대한 결정권을 놓치지 않고 싶은 사람에겐 필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 질병에 걸리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잘 아플 수 있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본문에서 언급한 갑상선암은 한국인 갑상선암 환자의 약 95.9%(보건복지부 2016년)에 해당하는 유두암을 기준으로 한 내용이며, 개인적인 치료 경험은 의료 가이드가 될 수 없음을 밝힙니다.

 

※ 참고 자료

-2016년 대한갑상선학회 갑상선결절 및 암 진료 권고안 개정안 http://bit.ly/2twuApb

-국가 암정보센터 http://cancer.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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