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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해방을 위한 여정

<홍승희의 치마 속 페미니즘> 연재를 마무리하며


※ 글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하는 예술가 홍승희 씨의 섹슈얼리티 기록 “치마 속 페미니즘”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의 화두를 던져 준 작가와 연재칼럼의 독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어두운 섹슈얼리티 창고

 

나의 섹슈얼리티 창고는 어두웠다. 아무도 오지 않는 음습하고 곰팡이가 낀 곳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감각들이 소용돌이치는 곳이기도 했다. 끈적한 쾌감과 상처의 응어리, 파괴와 창조, 죽음의 본능이 이글거렸다. 바로 이 창고에서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 욕망과 행위의 동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깜깜한 섹슈얼리티 창고에 ‘인식의 빛’을 비추고 나니, 왜곡된 것들이 말끔히 없어지진 않더라도 어떻게 어지러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남성으로부터 대상화된 육체를 넘어, 나의 본능과 욕망을 직면하게 된 섹슈얼리티의 창고는 관능의 벌판과 같았다.

 

여성에게는 수동적 역할을 강요하고 남성이 발기강박에 시달리게 만드는 배후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왜곡된 섹슈얼리티 창고가 있다.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낸 섹슈얼리티 창고는 여성에게는 의존적 충동을, 남성에게는 폭력적 충동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깜깜한 창고에 불빛을 비추고, 차근차근 들여다봐야 한다.

 

이 사회에서 여전히 성은 금기시되고 신비화된 영역이다. 섹스는 특별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면서도, 획일적인 방식으로 답습된다. 섹스가 특별히 은밀하고 사적이라는 인식 자체가 성의 공론화와 다양한 성의 목소리를 입막음한다. 여성과 남성 뿐 아니라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사람들을 고정된 성역할과 섹스 서사에 끼워 맞추려 한다.

 

▶ <꿈틀거리는 충동> 2017  ⓒ홍승희

 

왜곡된 성 역할극

 

성역할을 걷어낸 나의 섹슈얼리티 창고에는 죽음의 충동만큼 강력한 폭력성과 의존성이 함께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 안의 괴물을 만난 것이다. 나에게 그 괴물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성적인’ 섹슈얼리티에서 해방되는 것이기도 했다.

 

“괴물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혼돈과 태초의 여성신격의 결합이었다. 성서 외경에는 신이 아담과 함께 진흙으로 만들었던 최초의 여성이자 마녀 릴리스를 언급한다. 그녀는 정해진 성 역할을 거부하고 달아나 마녀가 되어 악마와 결합해 괴물들을 낳았다.” <동물·괴물지·엠블럼 중세의 지식과 상징>(최정은 지음) 중에서

 

섹슈얼리티 창고에는 순수한 욕망과 폭력성, 의존성과 죽음에 대한 충동도 있지만 사회에서 주입받은 왜곡된 섹슈얼리티 성역할도 뒤엉켜 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대상이 되고 싶고, 의존하고 싶고, 폭력을 행하고 싶고 당하고 싶은 본능과 ‘변태적’이라고 부르는 성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폭력성과 수동성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표출하고, 구조화하느냐다.

 

기존 지배문화는 폭력성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다. 남성에게 폭력성을, 여성에게 의존성을 강조하는 강간문화를 성역할 ‘문화’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복하고 지배하는 남성신화로 사회를 구조화한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손전등을 쥐고서

 

나는 거칠게 그림을 그리거나, 거리에서 저항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가학적인 역할극 섹스(SM)을 하면서 폭력성과 파괴본능을 표출하고, 구조화한다. 상대방과 합의하에 SM플레이를 하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지고, 거룩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감정이 카타르시스인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인지, 죽음 앞에서 느끼는 해방감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내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해방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게일 루빈은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라고 불리는 ‘이성애, 둘만의, 혼인 관계의, 돈을 받지 않는 등’의 기준에서 벗어난 ‘동성애, 집단의, 내연 관계 혹은 혼외 관계, S/M, 아동성애, 성매매 등’의 주변화와 억압이 여성억압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한 루빈은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했을 때보다 S/M이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훨씬 큰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섹슈얼리티의 해방은 멀고 험하다. 여성억압의 해방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섹슈얼리티 창고 안에 있는 모든 충동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학습해온 섹슈얼리티는 무엇이고, 아직 들여다보지 못한 충동과 욕망은 없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손전등을 쥐고, 깜깜하고 음습한 섹슈얼리티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 <진실을 찾아서> 2013  ⓒ홍승희

 

섹슈얼리티 연재를 마무리하며

 

섹슈얼리티 경험을 쓰는 일은 나의 무의식 속에 뒤엉켜 있던 감정과 감각을 들춰내서 의식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3살에 했던 자위와 클리토리스 오르가즘, 15살의 첫 경험, 22살에 이성친구와 함께한 자위, 27살의 낙태 경험과 성노동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 사회에서 섹슈얼리티가 얼마나 억압되고 있는지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청소년의 섹스, 혼전 섹스와 연애하지 않는 사람과의 섹스, 거래되는 섹스 등 ‘정상적이지 않은’ 섹스가 얼마나 금기시되는지 말이다.

 

섹슈얼리티에 관해 쓰고 싶은 주제가 더 많지만 기사 특성상 싣지 못한 글도 있다. 싣지 못한 글을 포함해 지금까지 정리된 글과 그림을 엮어 올 하반기에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나는 금기시되고 신비화된 것, 내 몸이 겪은 이야기를 쓰고 말하고 그릴 것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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