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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흔한 폭력과 더 두려운 폭력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두 가지 주요 공격 유형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공격자는 아는 사람일 수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일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가정, 학교, 군대, 직장 내 폭력이 대표적이다. 강간도 77.7퍼센트가 아는 사람이 저지른다.(2016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그리고 위계를 이용하는 폭력이 더 흔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도 있지만, 훨씬 드물다. 우리는 셀프 디펜스 수업을 위해 공격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다루고 있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

 

첫째,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다. 내가 네 위다, 이점을 인정해라, 눈을 깔아라, 머리를 쳐들지 마라. 이것이 공격이 의도하는 바다. 이런 유형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가장 흔한 폭력이다. 우리는 수업에서 흔히 말로 시작되는 상황, 밀치는 공격, 뺨을 때리는 공격, 잡아끄는 공격 등을 이런 유형의 상징처럼 사용한다.

 

많은 수업 참가자들이 자신도 뺨을 때리는 공격의 피해자였거나 목격자였다고 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당해봤거나 적어도 지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  ⓒ스쿨오브무브먼트

 

사실, 복종과 순응을 원하는 관계와 질서는 사회 구석구석에 있다. 어린이집에서 대학원까지, 가정과 직장, 군대, 상점, 거리에서도 이런 폭력의 기운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사 흐름에 따라 그 기운이 더욱 고취되기도 한다. 수직적으로 억압 구조가 강해질수록 수평적으로도 작은 악심들이 자극 받아 활개치려고 한다.

 

반대로 어떤 한 세대를 전염시킬 정도로 강렬한 저항과 용기의 시대가 펼쳐진다면, 이제껏 관습처럼 여겨지거나 세상의 이치처럼 굳건해 보였던 통념과 관행들이 곳곳에서 도전받게 된다. 그럴 때면 이런 유형의 폭력들도 함께 도전받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아동에 대한 어른의 폭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군대 내 폭력 등)은 상대를 이기려는 의도보다 혼내거나 벌주려는 의도가 더 크다. 그러면 공격이 주는 손상보다 공격의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 공격자는 자신의 지배적이고 우월한 이미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흔히 가까운 거리에서 허술하지만 지배적인 자세, 예를 들어 한 손을 자신의 허리에 놓고 다른 한 손으로 뺨을 때리려는 자세 같은 게 나온다. 만약 이때 우리가 신속하게 방어한다면, 공격자를 놀라게 하거나 멈칫하게 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포식자 같은 공격

 

둘째, 포식자 같은 공격이다. 이런 유형에서 우리의 인간성은 부정된다. 공격자는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셈이다. 일종의 먹잇감처럼 여긴다. 빼앗기 위해, 쾌감을 위해.

 

그러므로 이런 유형은 공격이 아니라 사냥에 가깝다. 양상도 사냥과 비슷하다. 포식자들의 사냥은 거의 기습이며, 흔히 매복에서 나온다. 즉 이런 유형의 공격자는 대체로 장소, 시간, 대상을 고른다. 우리는 수업에서 뒤에서 덮치는 공격, 바닥으로 덮치는 공격, 칼 위협 등을 이런 유형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 포식자 같은 공격  ⓒ스쿨오브무브먼트

 

참가자들 대부분 이런 유형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는 훨씬 더 드문데도 말이다. 미디어와 일부 이데올로그들의 공포 마케팅 탓이 크다. 물론, 기습공격이란 점은 대응하기 더 어려운 부분이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과 포식자 같은 공격, 이 두 가지 유형이 칼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잔인함의 정도로 두 가지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도 매우 무섭고 집요할 수 있다. 특히 집단이 행하는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 그렇다. 상대를 얼마나 처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집단 내 지위나 충성심의 경쟁수단이 되기도 하고, 죄의식이 집단 속에서 분산되고 희석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용기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우리는 지식과 경험을 나눈다. 우리 체육관에서는 주5일 수업이 열리지만, 체육관 밖에서는 주로 세 시간씩 1회 또는 2회의 특별수업을 한다. 첫 수업(1회 수업)에서는 주로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을 다루고, 두 번째 수업에서는 주로 ‘포식자 같은 공격’을 다룬다.

 

▶ 변화와 용기   ⓒ문화기획달

 

나는 몇몇 참가자들에게 세 시간짜리 1회 수업을 듣고 경험한 변화에 대해 들었다.

 

“골목에서 어떤 남자가 한 여자 분에게 소리를 지르더니 과격한 행동을 하는데, 여차하면 때릴 기세였어요. 무서웠지만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여성 분 옆에 서서 수업 때 배운 대로 손을 앞에 들고 하지 마세요! 가세요! 라고 외쳤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때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데, 그 남자가 방어 자세를 취하고 소리치는 저를 보고는 그대로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여성을 데리고 거기서 나왔어요.”

 

“저는 운동도 좀 했고, 체격도 있어서 당당하고 무서울 거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는 시누이 그림자만 보여도 너무 무서워서 피하기에 정신없었어요. 전에 한 번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시누이가 갑자기 제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팽개치고는 질질 끌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고 동네도 같아서 놀이터나 단지에서 마주칠 일이 꽤 있어요. 그 이후로 눈도 못 마주치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선생님에게 한 번 수업을 받고, 얼마 안 있어서 시누이를 놀이터에서 마주쳤는데요…. 제가 시누이 얼굴을 똑바로 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어요. 하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트라우마를 극복했어요.”

 

“선생님 수업 끝나고 아르바이트 하러 빵집에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수업 때 배운 게 생각나서 바로 거리를 벌리고 손을 올려서 긴장되지만 침착하게 설명하는데, 막무가내로 듣지도 않고 빵을 저한테 막 집어 던지는 거예요. 다행히 손을 올리고 있고 거리를 벌리고 있어서 빵에 맞지는 않았어요. 옆에 있던 다른 알바생이 저를 도와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고요. 사장님이 경찰에 신고하라고 해서 신고했고, 경찰이 와서 그 손님을 데리고 나갔어요. 기분은 무척 나빴지만, 상황을 인식하면서 ‘더 위험해지진 않겠구나…’ 하고 판단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신기했어요.”

 

그들은 ‘소프트 솔루션’으로 대응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을 부딪쳐 해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보다 쉬운 상황은 더 잘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심각한 위험상황에 대한 ‘하드 솔루션’을 훈련한다.

 

우리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은 이미 ‘소프트 솔루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극복하고 싶은 상황을 함께 정리하고 기획해서 ‘하드 솔루션’을 훈련하고 마침내 그 상황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안내한다.

 

나는 수업 참가자들이 실제 삶에서 ‘하드 솔루션’을 사용해본 경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다들 그럴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가능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길 기원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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