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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당당히 피 흘리기 위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



월경, 그걸 처음 언제 했더라? 이상하게도 기억이 전혀 없다. 언제였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가족들에게 물어봤더니, (그것도 기억 못하냐는 구박과 함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동생의 첫 월경 기억도 알게 되었다. 왜 난 그런 세세한 기억이 없지?


▶ 나의 월경 첫 시작이 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족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일다(박주연)


대신 ‘여자는 월경(생리)라는 걸 한 달에 한번 한다’, ‘월경을 시작하면 여성의 몸이 임신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진짜 여자가 되는 거다’, ‘소중한 몸이 되는 거다’ 등의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월경이 어떤 식으로 몸에서 진행되는지, 그 원리에 대해서도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하지만 그게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월경용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존재 볼드모트(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인물로, 주인공이 맞서야 하는 절대 악과 같은 존재)처럼 ‘나 그 날(월경하는 날)이야’, ‘야, 그거(생리대) 있냐?’ 하고 소곤소곤 말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그 단어는 그걸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려지는 일이 잘 없는 채 유지되어 왔다. 보이지 않게 검은 봉투에 담아야 하는, 숨겨야 하는 그런 것으로.


인구의 반이 여성이고 그 여성의 대부분이 월경을 한다. 인류 역사상 늘 그래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거의 매달 겪는 이 일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이야기하지 않고 쉬쉬할까? 월경이 뭐길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인 월경을 둘러싼 많은 질문을 모두에게 던지는 재기발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제목부터 멋있는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년)이다.


▶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 포스터

 

왜 다른 생리용품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김보람 감독이 네덜란드 친구 샬롯, 그리고 그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이 할머니가 만든 생리대 파우치를 샬롯에게 선물했는데 샬롯은 ‘대체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당황했다고 한다. 샬롯은 월경을 시작하고 딱 한번, 처음에 생리대를 쓴 이후로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탐폰을 썼기 때문에 그런 파우치를 들고 다닐 일이 없었던 것이다. 샬롯과 친구들은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 탐폰을 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탐폰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 탐폰. 국내에서는 아직 사용자가 많지 않아(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일회용 생리대 사용 80.9%, 탐폰 10.7%, 다회용 생리대 7.1%, 생리컵 1.4%) 생소한 생리용품이지만 꽤 오랜 역사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종이를 말아서 탐폰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작은 나뭇가지에 린트 천을 싸서 탐폰으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쓰이고 있는 어플리케이터 형식의 탐폰은 1929년 얼 하스(Earle Haas) 박사에 의해 발명됐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용된 탐폰이 왜 국내에서는 저조한 사용률을 보이고 있는 걸까? 나는 현재 탐폰 사용이다. 처음 탐폰을 사용한 건 대학생 시절 필리핀에 갔을 때였다. 스킨스쿠버를 해야 하는데 월경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지, 스킨스쿠버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문득 수영할 때 쓰는 생리용품이 있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본 다음 필리핀 현지에서 탐폰을 샀다. 담뱃갑보다 작은 크기의 탐폰 박스에서 탐폰을 하나 꺼내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쓰는 걸까?


나는 탐폰 사용법을 몰랐다. 그게 있다는 사실도 풍문으로만 들었고, 탐폰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처음 샀던 탐폰은 어플리케이터가 없는 형식의 탐폰이었다. 겨우 탐폰을 질 안으로 집어넣고 나서, 그 날 난 월경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생리대 쓸 때의 불편함, ‘굴을 낳는다’라고 표현되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 좋은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건지 원망이 들 정도였다.


아니, 정말 왜 우리는 이런 정보를 접하지 못한 걸까? 왜 학교에서는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않은 걸까? 오직 생리대만이 유일한 월경용품인 것처럼 말이다. <피의 연대기>에서는 탐폰뿐만 아니라 생리컵, 그리고 그 외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리용품들을 소개해 준다. 그걸 보고 있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린 그 동안 속았어.’


▶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2018) 스틸 컷. 과연 저 물건은 생리용품일까?


왜 월경은 불경한 것으로 취급 받을까?


속은 게 그것만이라면 다행이다. 월경이 볼드모트 취급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우린 제대로 설명을 듣거나 배운 적이 없다.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소중한 여성의 몸이 되는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왜 생리용품은 남에게 보이지 않게 검은 봉투에 들고 다녀야 하는지, 혈이 새서 옷에 묻기라도 하면 무슨 죄인이 된 것 마냥 고개 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조금이라도 예민한 행동을 하거나 피곤해 하면 ‘야 너 생리하냐?’라는 말로 놀림 당하는 게 일상적이고, 그럴 때 ‘생리적 현상이잖아’ 라는 말 외에 어떤 말로 나의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본 일이 없다. 월경이 시작되면 여자가 된 거라고 축하할 땐 언제고, 월경 기간에는 ‘제사도 오지 마라, 부정 탄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제한을 받는다.


김보람 감독도 그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시작되고 역사가 기록된 이후, 종교를 비롯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이 월경과 월경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을 찾아가 그 답을 얻으려고 한다.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운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인가를 알게 되는 건 유쾌하진 않지만, 그 혐오의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자신과 다른 여성의 몸을 어떻게 통제하고자 했는지를 알고 나면, 나 스스로가 월경에 대해 가졌던 오해를 풀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월경에 대한 알 수 없는 혐오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몸과 마주한 일이 있나요?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바로 생리컵에 대한 부분이다. 작년 유해 생리대 파동이 발생한 이후 조명 받았던 생리컵은 국내에서도 다가오는 2월부터 정식 판매가 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생리컵 이야기가 자칫 홍보처럼 보여질까 우려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피의 연대기> 스틸 컷. 생리컵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보람 감독.

 

생리컵을 10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인터뷰이는 생리컵을 사용하고 나서 ‘피가 이런 모습이구나, 이런 색이구나’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불결한 무언가가 아니라(사실 냄새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을 때 그 화학물질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몸에서 나오는 피를 형체 그대로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흡수되어 모습이 변형되지 않은, 원래 모습 그대로.


흔히 여성은 대상화 된다고 말한다. 주체로서의 남성이 바라보는 대상, 그런 존재라고. 그래서인지 사회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을 직접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남성들이 보니까,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평생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데 말이다. 나의 몸 부분 부분이 어떤 모습인지 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월경도 그렇다.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들이 그 과정에 있으면서도 그걸 제대로 본 일이 없다.


<피의 연대기>를 보면서 내가 나의 몸에 대해 굉장히 잘 몰랐구나, 무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검은 봉투에 숨기듯이 여성의 몸에 관한 많은 것들을 감추고 숨기고 있는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그 증거들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월경과 더 가까워지고 자유로워지도록


영화가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며 나와 친구들 일곱 명은 소곤소곤 속삭이는 게 아니라 평소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월경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어떤 월경용품을 쓰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즐겁게 떠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리컵에 도전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단순히 새로 나온 어떤 용품을 사서 소비해 보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나의 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언이었다. 나의 몸을 알고 난 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더 당당히 요구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의 연대기>는 나의 몸에 더 다가갈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영화에 담긴 유익하고 유쾌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면에서 용기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여성들의 연대가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중한 영화가 등장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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