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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그녀들의 목소리’ 찾기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미씽: 사라진 여자


※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턴가 벌레들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맘충, 급식충 등 우리 사회에서 벌레로 우글거리는 혐오. 특히 ‘어머니 벌레’라는 뜻의 맘충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혐오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맘충은 있고 파파충은 없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무조건 여자라고 규정한 전제가 아닐까. 자녀 양육이 온전히 여성에게만 짐 지워진 현실을 통렬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언희 감독, 엄지원 공효진 서하늬 주연 영화 <미씽>(2016) 스틸 컷

 

‘가정주부 이데올로기’의 억압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35개국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다. 2007년 49만 명 정도에 이르던 신생아가 지난해 2016년에는 40만 명으로 줄어들며 사회 곳곳에서 저출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출산율은 여전히 감소하는 추세다.


왜냐하면 목소리만 높이지, 아이를 낳은 뒤 독박 육아를 하는 여성들을 위한 육아지원 정책은 가정과 일터를 통틀어 턱 없이 미비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육아환경도 모자라 아이를 키우는 일을 온전히 여성에게만 짐 지운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들은 또한 엄마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비난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 영화 <미씽>(이언희 감독, 엄지원 공효진 서하늬 주연, 2016)의 주인공 지선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녹초가 될 정도로 밤낮없이 일하며 혼자 아이를 돌보는 지선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정에도, 직장에도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난뿐이다. 또 그녀는 보모에게 아이를 맡긴 무책임한 엄마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다닌다. 이혼한 뒤 어린 딸을 보모 한매에게 맡기고 직장에 나가는 지선에게, 한매는 그래서 참으로 든든한 의지처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그녀에게 한매는 자매처럼, 때론 엄마처럼 옆에 있어주는, 또 다른 가족인 것이다.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정주부’ 이데올로기인데, 가정에서의 여성의 노동이 공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으로 환원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즉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가정주부 여성들의 노동이 당연시되는 불합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말하는 것일 터.


워킹맘인 여성들은 아이에게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마음 한 구석에 늘 안고 산다고 하는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일하는 아빠들과는 무관해 보이는 감정이 아닌가. 더구나 일도, 가정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 혹사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정주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면 무엇일까?


▶ 이언희 감독, 엄지원 공효진 서하늬 주연 영화 <미씽>(2016) 스틸 컷

 

묻히고 폐기된 존재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지선은 딸 다은과 보모 한매가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딸의 실종을 신고하러 경찰서에 가지도 못 한다. 이혼소송으로 아이를 남편 측에 넘겨줘야 되는 입장이기에, 아이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몰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경찰과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양육권 소송 중에 지선이 일으킨 자작극으로 의심받는다.


결국, 아이를 직접 찾아 나선 지선은 그동안 보모 한매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름, 나이, 출신을 거짓말한 것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매매혼으로 한국에 시집와 살던 중에 아픈 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안마방에서 몸을 팔고 장기 밀매도 했었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알게 된다.


또 병원 입원비가 밀려서 지선의 남편이 의사로 일하는 병원에서 한매의 아이가 강제로 쫓겨나고 그 자리를 빼앗은 아이가 바로 지선의 아이 다은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쫓겨나자마자 아이가 죽어버려 절망스런 고통으로 진물이 나도록 너덜너덜해진 한매의 삶, 그 가려진 시간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대척점에 섰던 지선과 한매이지만 외모와 성격, 살아온 환경 등, 그 어느 것 하나 겹쳐지는 부분이 없는 그녀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해 보이는 것은간절한 모성임에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외딴섬처럼 외로운 까닭도 한 몫을 할 터.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위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소외된 약자와도 같다. 보모 한매가 말한 모든 것이 (진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거짓이었던 것처럼, 지선이 나중에 아이의 실종을 말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들의 진실은 묻히고 폐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선과 한매 모두 미씽(missing), 행방불명되어 사라진 존재들이다. 지상에 존재하나 실체는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인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성인여성의 실종 신고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07년 1만8천601명이었던 것이 2011년에는 2만3천507명으로 증가한 것을 살펴보면, 5년 동안 무려 5천여 건이 늘어난 셈이다. 물리적인 실종만 있지 않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르는 동안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만났던 여성 인물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여성 위인들을 교과서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이유는 여성들이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갖기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드물게나마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올랐던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낮게 평가되고 잊힌 경우가 많은 것도 중요한 원인은 아닐는지.


▶ 이언희 감독, 엄지원 공효진 서하늬 주연 영화 <미씽>(2016) 스틸 컷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여성들의 목소리


페미니즘은 보이지 않는 것들, 세상에서 소외되어 보이지 않게 된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름 없이 사라져 가는 존재들에게 다시 이름을 붙여주는! 그러나 세상에서 실종된 그녀들을 다시 찾아주는 과정은 처절하도록 지난하다. 실종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아직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20세기 초를 생각해보자. 영국의 여성 운동가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공장에서, 거리 곳곳에서 시위하며 투쟁했던 시간을. 정부에서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자, 1913년 여성운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 세상에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를 알리기 위해, 국왕이 참석한 경마대회에서 여성 참정권을 외치며 무서운 속도로 내달려오던 경주마에 부딪혀 죽은 처절한 사건을.


이후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이 사건이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는 데 기폭제가 되어주었다니, 안타깝게도 한 여성의 죽음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역설적으로 세상에 들려준 것이다. 죽음으로까지 내몰릴 만큼 여성들이 간절히 원하는 메시지를 가부장제 사회에 들려준 것이다.


그것은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여성들에게 짐 지우고 규정지은 프레임을 넘어서려는 여성들의 목소리였다. 페미니즘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실천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현재의 사회상태 속에서 한정되고, 규정되고, 구조화되고, 의미 지워진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


영화의 마지막, 바다에 뛰어든 한매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든 지선이 한매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한매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든 손수건이었다. 비록 한매는 바다 깊이 가라앉아 사라지지만 손수건은 그녀들을 연결시켜주며 바다 속에서도 채 마르지 않는 그녀들의 눈물을 닦아준다. 서로의 상처를 싸매 주는 연대로,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나 걸어가자고 말하며, 바다 속에서 흩날린다.


가부장제라는 낡은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은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직전에, 죽음에 임박했을 때 도화선이 되어 시작하지는 않을까. 그때 비로소 한매가 아이에게 불러준 자장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평화롭게 들려지게 될 것이다.


“우리 아가, 

항상 고운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게 엄마가 지켜 줄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가로 만들어 줄게

엄마가 그렇게 할 거야

사랑해, 내 아가.”


[영화 미씽을 더 잘 읽기 위한 미학]


▶ 이언희 감독, 엄지원 공효진 서하늬 주연 영화 <미씽>(2016) 


영화는 쫓고 쫓기는 두 여자 주인공의 절박한 심리적인 관계를 과거와 현재를 순간순간 교차함으로 긴박하게 담아냈다. 또 지선이 한매를 추적하면서 점점 드러나는 한매의 과거, 그 고통스러운 지난 시간이 현재 아이의 실종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선의 심리와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이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여성이 실은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쩌면 한 사람임을, 똑같은 처지의 약자이자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어준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마치 실제 일어난 일을 촬영한 듯한 현장감마저 선사해준다. 또, 광각렌즈와 망원렌즈를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써, 지선과 한매의 심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그려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중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한매를 발견한 지선이 그녀를 쫓자 막다른 끝에서 아이를 안고 바다에 뛰어들려 하는 한매를 지선은 손수건을 보여주며 설득한다. 한매가 죽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든 손수건 말이다.


결국 한매는 지선의 아이 다은을 넘겨주고 혼자 바다에 뛰어드는데, 그녀를 구하러 같이 바다에 뛰어든 지선이 바다 속에서 한매를 만나는 장면이 마치 꿈처럼 몽환적이다. 한매가 노래 부르는 자장가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면서 비록 한매는 지선의 구조 손길을 붙잡지는 못하지만 대신, 지선이 던져준 손수건, 죽은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을 손으로 힘주어 움켜쥔다.


바다가 삶과 죽음, 더 나아가 무의식을 상징하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바다를 매개체로 한매가 죽고 아이는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에 지선에게 다가와 안기는 다은의 첫걸음마가 세상에서 지금도 무수히 사라지고 있는 여성들을 향해 걸어가는, 작고 여린, 그러나 단단한 희망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필자 지아(知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칼럼을 비롯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으로 전방위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1년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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