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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하는 초딩들이 문제라고요?

초등성평등연구회 선생님들을 만나다


초등학교라는 곳을 떠올리면 많은 게 생각이 나진 않는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크게 남아있진 않다. 학교라는 곳은 늘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때부터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랐던 난, 나를 잘 표현하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기술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성적인 아이였기보다 ‘나의 목소리를 찾지 못한’ 아이였다.


얼마 전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글 초등성평등연구회, 그림 이혜정, 우리학교)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입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초등학생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동화와 선생님의 설명이 정리된 ‘페미니즘 수업’, ‘함께 해 봐요’라는 활동 코너로 이루어진 보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정말 놀랐다. 외모강박, 성정체성, 역할모델, 성역할 분담 등의 주제에 대해 교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열정과 신념에 말이다.


▶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올해 연달아 펴낸 책 <학교에 페미니즘을>(마티)과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우리학교)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언론 인터뷰와 기고, 다양한 액션들은 성차별주의자들과 보수단체의 반발을 가져온 것은 물론이고, 때론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이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벌써 활동 3년차,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정기모임으론 사실 많은 일을 하기 어려운데도, 그만큼 이들의 활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등학교라는 공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겪은 경험, 교실에서 교사라는 위치가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고민까지 다룬 <학교에 페미니즘을>(마티)에 이어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까지 낸 이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었다. 또, 최근 ‘만능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지난 16일, 초등학교 시절 나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던 그 아이가, 그 때 만나지 못한 선생님들을 만나러 가는 설레는 기분으로 서한솔, 양선아, 오수연, 이신애, 정순 선생님을 서울 교대역 근처에서 만났다.


“아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어른들의 오만”


정확하게 약속 시간에 등장한 다섯 명의 선생님에게 ‘역시 선생님들은 다르다’며 인사를 건넸다. “원래 이렇지 않은데…”라고 말하는 선생님과 “아냐, 이럴 때 그렇다고 해야지”라고 웃는 선생님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각자 맡고 있는 학년도, 교사 경력도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굉장히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최근 나온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 이야기부터 꺼냈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은 것이었지만,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연구해오던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당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분석하고,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결국 ‘이건 일부 수정으로 할 수준이 아니다, 아예 새로 나와야 한다’는 말도 나왔고, 새로 만든다면 ‘표준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했어요. 그 때 토론했던 내용들이 책을 구성하는데 도움 되었어요.” (오수연)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동화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과 “성적 지향, 성정체성 등 이전에 다뤄지지 않은 것들을 넣자”는 것도 제작 논의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학생들에게 작업물을 보여주고 ‘이게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 등’의 의견도 물어가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동화 부분에선 조금 특이한 점이 보인다. 동화 속에 선생님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아니다. 표지에도, 등장인물 소개에도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교육용) 동화에선 선생님 캐릭터가 중심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교사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거나 영웅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어떤 메시지를 주입 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읽는 아이들이 정말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돕기 위해 고심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챕터 중엔 국내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주제인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다룬 부분이 나온다. 이런 내용을 과연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내심 궁금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 자체가 오만’이라는 걸 깨달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은 별나라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 “성인이 속한 미디어 환경에 아이들도 있잖아요. 오히려 지금 뉴미디어는 그들이 문화 당사자죠.”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교육 콘텐츠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초등학교 5,6학년에 해당하는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 콘텐츠는 정말 없다고. “그 때가 첫사랑을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보면 “성소수자의 경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혼란스럽고 다른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질감을 느낄 텐데, 교사가 그런 내용을 다루지도 않고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아이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 제도라는 게, 인식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 있어도 그걸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개인의 인식 수준이 제도보다 앞서 있는데 그걸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거죠.” (이신애)


선생님들은 또한 “‘앞으로는 글로벌 문화’라는 말 많이 하는데 아이가 ‘퀴어-친화적인’(queer-friendly)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혐오에만 노출된 채 말이죠.” 라며 냉정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초딩들을 ‘작은 악마’로 비난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죠?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혐오’와 관련한 주제로 넘어갔다.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혐과 남혐의 대결 구도가 초등학교에서도 만들어 지고 있다’라든지, ‘교실 내 혐오발언이 심각하다’는 식의 뉴스가 여러 번 보도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선생님들은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게 왜 혐오 표현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면 의외로 잘 습득한다”고 설명했다. “습관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그게 혐오라는 걸 한번 인식하면 조심하고, 또 또래 집단에서도 서로 그런 말은 쓰면 안 된다는 말도 한다”고. 문제는 “아이들이 노출되는 환경”이라고 짚었다.


“혐오 표현들을 쓰면서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들도 있어요. 정말 나쁜 말을 의도했다거나 혐오를 내제했다고 보기 어려워요. 대부분 성인들이 쓰는 말을 따라하는 거죠.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소수자를 향해 쓰는 혐오 표현을 보세요.” (오수연)


규제가 없는 유튜브 등의 매체의 문제도 있지만, 다양한 미디어와 사회 환경, 학교 이외에 다양한 곳들에서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혐오에 노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변명할 수 없는 존재인 아이들을 비난하는 방식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는 날카로운 비판도 나왔다.


아이들이 자신이 한 말이 혐오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면 더 쉽게 변화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도 혐오를 겪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초딩’이라는 말과 최근엔 ‘한남유충’까지, 다양한 언어들이 나이 어린 존재인 아이들을 쉽게 조롱하고 비난한다. 그런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한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설명하면 잘 받아들인다”는 얘길 들으니, 정말 문제는 무엇인지 점점 윤곽이 드러났다.


서한솔 선생님은 이와 관련한 경험을 공유했다. “(남자)제자가 한번 찾아와서 같이 PC방에서 게임을 했어요. 보이스톡을 하면서 게임을 했는데, 제 목소리가 여성인 게 드러나니까 여성혐오 발언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저도 무척 당황했는데, 그 친구가 엄청 당황하면서 ‘초등학교 담임이야, 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게임개발자가 꿈인 친군데, 나중에 저한테 자긴 여혐적인 게임 안 만들겠다고 했어요. 좀 뿌듯하더라고요.”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집단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작은 악마’들로 단순화하면서 일찌감치 성별 대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부채질하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 중에서 활동지


교실에 페미니즘 가져오기, 산너머 산넘기


초등학교 내 성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성차별에 대해 말하면 남학생이나 남학생의 보호자는 ‘성차별이 어딨냐, 오히려 우리(아이)가 차별 당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충분히 그렇게 느껴지거나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남학생의 출석 번호가 1번으로 시작하는 거나 반장/회장을 남자가, 부반장/부회장을 여자가 하는 식의 성차별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여자아이는 칭찬 받는 존재, 남자아이는 꾸지람 듣는 존재”라는 인식도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여초 집단’이라는 것도(교장, 교감은 남성 비율이 높다) 이러한 인식에 한 몫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 입장에선 권력을 가진 존재다. 여성 교사들이 많은 초등학교에서 ‘말썽꾸러기’나 ‘여자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린 존재’로 취급 받는 남자아이들에겐 “아직 성차별이 개인적 경험으로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가부장제 구조 안에서 아직 권력자가 된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너넨 권력자’라고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거기다 교과서엔 “옛날 서당 그림과 현재 여성과 남성이 같이 공부하는 모습이 나와 있어서 성평등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되는데, 이걸 보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시야에는 “공개 수업에 왜 (아빠는 오지 않고) 엄마들만 와 있는지”에 대한 부분까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여전히 체력장의 기준이 남성이 더 높다는 점” 혹은 “기계적 평등”을 맞춰버리는 제도 안에서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많은 고민이 든다고 했다. 책에도 외모 강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는 화장 문화가 그 중 하나다.


“화장을 하고 싶은 욕망이 과연 누구의 욕망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2년 전엔 학생들이 (화장을) 안 하는 쪽을 선택했었는데 올해는 하는 쪽을 선택하더라고요.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또 어떤 점에선 ‘학생다움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도 있어서 쉽게 무엇을 강요할 순 없어요. 또 교실에선 학기에 겨우 몇 시간 성평등 교육을 하는 거고, 그들이 자주 보는 미디어가 내보내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잖아요. 한계가 느껴지죠.” (서한솔)


초등성평등연구회 선생님들의 교육 목표는?


페미니즘 교육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페미니즘 교육이 공식적으로 도입되면 가부장제 세상을 바꾸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선생님들도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성평등 교육이나 성교육이면 몰라도, 페미니즘을 어떻게 교육화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성평등 교육과 성교육도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일괄적으로 하는 게 유용한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선생님들은 페미니즘 교육을 하려면 “교사를 양성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아무리 교사가 신념을 가지고 교육하고 싶더라도, 외부에 있는 보수단체들이 민원을 넣는 등 교사를 괴롭히는 일이 있고,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점점 위축될 수밖에 환경이다.


“교육으로 어떤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 사회의 문제점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교육을 할 순 있지만, 성과를 바라고 기대를 높이다 보면 ‘성과 위주의 교육’이 되고, 그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는 걸 상기시키는 말이다.


▶ 초등성평등연구회 블로그에 올라온 포스트 중에서


그렇다면 <초등성평등연구회>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교육은 무엇일까. 이들의 목표는 “마음을 열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토론이 가능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단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시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말이 특히 와 닿았다.


조금 더 현실적으론 “지금의 성차별적 교과서를 먼저 바꾸는 것”과 “(성차별적이지 않은) 페미니즘에서 사용되는 용어만이라도 가져와서 쓰는 것”, “학교가 어머니들을 불러서 봉사 활동시키는 걸 그만두는 게 하는 것 등”이 당장 할 수 있는 변화의 움직임 아니겠냐는 제안을 던졌다.


성평등 교육으로 인해 “바뀌는 모습”들을 본다!


여러 고민을 안고 있지만, 선생님들은 성평등 교육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얻었다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책도 읽기도 했고” 자신과는 조금 다른 시점에서 새로운 걸 배우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이 성장하는 경험”도 했다. “덩치는 크지만 잘 울어서 보호자의 걱정을 샀던 남학생이 성평등 교육으로 조금 더 당당해지는 과정도 목격”했다.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그거 성차별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모습”, “화장 안 한 선생님에게 아무 의문을 던지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도 봤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직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성별 이분법’이 작용하는 곳이고 보수적인 곳이다. 이 공간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부족해보일 수도 있고, 여전히 구조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노력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선생님들은 교사나 학생만큼이나 보호자를 일반화하여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보탰다. 보호자가 성평등 교육을 하는데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다는 식의 이미지는, 자꾸 교사와 보호자를 대립 구도에 놓기 때문이다.


“성평등 교육이나 성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에 반대하는 보호자들이 거론되곤 하는데요, 사실 제가 목격하는 보호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분도 있고, 다양한 보호자들이 있죠. 보호자들이 ‘내 자식만 위하는 사람’처럼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순)


열두 살의 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목소리와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절 경험이 완전히 쓸모 없었던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실패를 반복했다. 이런 페미니스트 선생님들을 만났더라면 조금 더 빨리 ‘내가 나로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이번 인터뷰로 조금 해소되었다.


지금 열두 살인 누군가는 교실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배움이 없는 것보단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실천은 소수의 페미니스트 선생님들만이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건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달렸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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