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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세계…“사회적 경제는 세계관이죠”
<기록되어야 할 노동>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활동가’ 이동은 씨
※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의 ‘일’을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싣습니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글의 필자는 기록노동자 류현영 님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지역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뭐지?
이동은 씨(38세)가 일하는 곳은 서울 마포구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다. 자치구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의 중간 지원조직 역할을 하는 곳으로, 서울시에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다 있다고 한다. 그 명칭이나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원래는 서울 지역의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해 ‘생태계 사업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정책사업이었다. 사업단의 활동이 3년으로 마무리되고, 시와 구가 예산을 매칭해 ‘통합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그 활동을 이어가게 된 형태다. 마포구는 지원센터를 운영한 지 올해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보면 지원센터는 서울시나 마포구의 직속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이게 참 모호해요. 예산을 받고 또 관리도 받지만, 그럼 ‘공무원인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도 ‘민간’이라고 정체성을 규정하고, 구에서도 우릴 민간으로 보거든요. 시나 구의 행정이나 정책 등을 반영해 민간이 직접 의제를 발굴하고 현장에서 일하고, 예산은 행정에서 지원하는 형태인 거예요. 민간과 행정이 파트너십을 맺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래서 ‘중간 지원조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아요.”
서울 마포구 사회적경제 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동은 팀장. 지역 모임에 참여해 자기 소개하는 모습. ⓒ이동은
솔직히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는 그나마 익숙해도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는 좀 낯설었다.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가 잘 안착하도록, 즉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민-관의 중간에서 지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형태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사회적 경제 안에 사회적 기업도 있는 거죠.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형태 이름이에요. 사회적 기업은 아주 좁게 보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증하고 지정한 기업만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협동조합이나 자활기업이나 마을기업도 사회적 기업이에요. 또 더 넓게는 그런 형태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지역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운영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이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볼 수 있죠. 사회적 경제 안에는 기업도 있고, 활동도 있을 수 있고. 아직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지역에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앞으로 사회적 기업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이 지역에서 잘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인프라도 만들어 내는 게 우리 일이에요.”
이런 목적으로 운영되는 지원센터에서 이동은 씨의 직책은 팀장이다. 하지만 딱히 관료적인 조직이 아니어서, 팀장이지만 팀 안에서 각자 개별 업무를 해나가면서 그것을 연결하는 역할 정도만 할 뿐이라고 했다. 주로 하는 일은 지역의 공동사업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 기업들이 지역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게 경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 공동사업을 만들어 내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는데, 대부분이 새로운 사업을 한번 시도해 보고 그 시도가 적합하면 지속하고, 시기상조였거나 적합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방식의 시도를 찾거나 하는 식이었죠. 예를 들면 마포 지역에는 제조나 생산 기업보다 문화예술 기획이나 콘텐츠 중심의 기업이 많으니까, 그런 사회적 기업의 콘텐츠를 연결해 교육 사업도 하고. 마을 카페를 거점으로 운영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제법 있으니까, 그런 조직을 연결해 공동 브랜드를 만드는 사업도 하고. 관광객이 많은 홍대입구나 연남동을 기반으로 사회적 경제 조직과 지역 사람들을 연결해 마을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일도 했고요.”
신세계가 열리다, 내 인생 시즌2
마포구에서 사회적 경제 사업을 시작한 게 2013년, 이동은 씨가 이 일을 시작한 해도 같다. 거의 처음부터 함께해 온 셈인데, 그 전부터 사회적 경제 관련 일을 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계기가 되었던 것은 하자센터에서 주최한 ‘한일청년포럼’이었다.
“그전에는 그냥 회사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이 저는 너무 벅찬 거예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었어요. 사람도 안 만나고. 그런데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친구가, 내가 사회생활을 하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히키코모리(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집 밖에도 나가지 않은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되겠다 싶어서 저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본인이 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끌어들였어요. 그중 하나가 한일청년포럼이었고요. 거기서 처음으로 사회적 경제 얘기를 들었어요. 주택협동조합을 하는 청년들이 사례 발표를 하러 왔거든요. 그때는 정말 새로운 얘기였죠. 전혀 모르는 분야였는데, 저렇게 지역사회하고 연대하는 게, 서로 연대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찾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 당시 저는 월급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삶밖에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래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생겼는데, 이후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청년혁신활동가’라는 이름의 청년 일자리 공고를 냈어요. 보니까 연령 제한이 39세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제 나이가 참 어린 나이인데, 그때는 두세 번째 직장을 그만둔 상태여서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어디 취업도 못 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39세? 괜찮은데? 그래서 지원했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제 인생에서 시즌 2가 있다면 그 청년포럼을 했던 게 아주 큰 계기가 되었어요.”
사회적 경제 포럼에 패널로 참여한 이동은 씨가 마포 지역의 현황을 발제하는 모습이다. ⓒ이동은
7년을 한곳에서 일한 팀장이 계약직이라고?
지원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은 센터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실무 인원은 4명인 셈인데, 이것도 처음에는 3명이었다가 늘어난 것이라 한다. 마포구가 작은 구도 아니고 사회적 경제 규모도 서울시에서 2-3위를 다투는 수준인데, 게다가 사업 중심으로 업무가 이루어지는 조직인데 이 인원으로 감당이 될까 싶었다.
“입사한 이래 한 번도 안 바쁘다고 생각한 시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늘 업무가 과중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것이 인원 문제인가 했을 때, 그럼 다른 자치구는 인원이 많은데 우리만 적은가 하면 그렇진 않고. 주관적인 느낌이라 객관적으로 일이 너무 많다고 하긴 조심스러운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과중하다고 생각하죠. 야근할 때도 많고.”
게다가 센터장을 제외한 다른 직원은 모두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있다. 팀장인 이동은 씨까지도. 7년을 한곳에서 근무했는데 여전히 계약직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사실 저도 고용계약법을 잘 모르는데, 우리는 프로젝트형 사업의 고용 계약자인 거예요. 그래서 프로젝트가 유지되는 동안은 고용계약이 연장되는 거죠. 이걸 파고들면 불법 소지가 있는 고용 형태라고 저는 생각해요. 왜냐면 상위법상 23개월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 아니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항상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그렇다고 마트나 공기업들처럼 11개월 일하고 퇴사하고 다시 재입사하는 형태도 아니에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명확한 건 서울시가 진행하는 이 사업은 대부분 1년 단위로 평가를, 연장 심사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심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다음년도 사업을 연장 계약하지 못하고 사업이 종결되는 거죠. 그렇다면 그 사업에 확보되었던 인건비도 종결되겠죠. 그런데 이건 위탁받은 기관의 재량으로, 이 사업과 상관없이 별도의 인건비로 운영하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프로젝트가 종결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는 상태예요.”
말하자면 지원센터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기관’이 프로젝트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1년마다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고용 연장 여부가 결정되니 실제로 일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2년도 아니고 1년 단위로 연장 심사를 하면서 근로계약서를 갱신한다는 게. 이렇게 얘기하니까 유체이탈 화법 같은데, 저는 너무 긴 기간 이런 상태가 지속이 돼서 그런지 사실 크게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이지만, 분명한 건 정말 모호한 계약 관계라는 거예요.”
지원센터는 마포구 고용복지지원센터 산하의 사회적 경제팀 소속이다. 고용복지지원센터는 마포구 조례로 설립된 기관이지만, 지원센터와 마찬가지로 민간 주체가 위탁받아 운영한다. 이곳의 직원은 대략 30명 정도인데, 성비를 보면 남성 직원 2명(지원센터는 1명)을 제외하고 다 여성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비정규 계약직이다.
“우리가 농담처럼 얘기해요. 고용복지지원센터에서 일하지만 막상 직원의 고용과 복지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왜냐면 계약직 비율이 굉장히 높거든요. 일단 사회적 경제팀은 100퍼센트 계약직인 거예요. 그리고 다른 팀에도 연 단위로 평가받는 계약직이 포함되어 있어요. 사회적 경제팀이 특이한 게, 그래도 다른 팀은 팀장급은 정규직인데 사회적 경제팀은 프로젝트 사업이기 때문에 팀장인 저도 계약직이에요. 제가 처음 입사할 때보다 정규직 티오는 2~3명 늘었어요. 전체 직원 수는 10명 정도 늘었는데.”
장기적 전망이 필요한 일인데, 1년 단위 사업이라니
상황이 이러니,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데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1년마다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전년도 사업성과 보고서를 제출해 평가를 받은 후에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니,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뭔가를 시도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 지역에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어떻게 1년 단위의 사업으로 가능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업보다도 장기적 관점과 계획이 필요한 사업일 텐데 말이다.
“사실 평가받는 실무자로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않나 싶어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업을 하기 어려운 구조인데, 또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는 사업인 거예요. 그 부분은 늘 불만이어서, 이런 사업을 수행하는 대부분 자치구 단체들이 이 평가 체계는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경제 활동이 지역에 맞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려질 수 있다고 많이들 얘기해요. 돌이켜보면 6년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어요. 만약 6년 전에 서울시에서 5년 이상의 관점으로 이 사업을 던져 줬다면, 지금 우리 지역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조금 다른 형태의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저는 일한 지 오래됐지만, 이런 사회적 경제 중간 지원조직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근속 기간이 짧아요. 그래서 2년만 되어도 정말 오래 일했다는 소릴 듣거든요. 최소한 그런 케이스는 좀 줄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아무래도 1년 단위로 평가받고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니 실무자는 굉장히 압박을 받고, 또 고용 형태도 사실상 불안정하니까 자기 비전을 장기적으로 꿈꾸기도 어렵고요.”
마포 사회적 경제 축제에 지원을 나와서. ⓒ이동은 제공
그나마 이런 상황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여지가 올해 생겼다. 자치구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 조례’가 통과된 것이다. 자치구가 조례에 기초해 사회적 경제 센터를 설립해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의 관련 과나 구에서는 지원센터를 운영해 왔으니, 여기를 자치구의 사회적 경제 센터로 지정하는 과정이 남은 거죠. 그렇게 되면 지원센터의 고용 형태나 지위가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자치구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면 더는 ‘프로젝트’라고 볼 수 없으니까.”
‘기관’보다는 ‘민간’ 활동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동은 씨는 들고남이 잦은 지원센터에서 누구보다 오래 이 자리를 지키며 일해 왔다. 어쩌면 사회적 경제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강한 인상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서 행정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임에도, 관 소속이라기보다는 지역 활동가의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은 ‘활동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조직에서는 이동은 씨와 같은 직원들의 이런 활동가적 마인드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지는 않을까? 노동조건이 좀 열악해도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니 감수하지 않겠나 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면에선 이용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고, 어떤 면에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왜 저렇게 복잡하게 여러 이해관계자를 포함시키면서 일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줄타기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제 정체성에 대해) 줄타기를 하고 있지 않으니까. 저는 ‘왜 일하는지’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만약 (활동가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 월급 받으면서 일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에서 지난 6년의 활동에 대한 감사장을 받는 모습. ⓒ이동은 제공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다 보니,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불안정한 고용 상황 때문도, 과중한 업무 때문도 아니다.
“그동안 제가 늘 느낀 건데, 손에 잡히는 게 없어요. 뭔가 아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굉장히 미미한 활동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거예요. 이게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은데요.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일자리를 만들어 내거나, 지역 커뮤니티를 꾸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점점 운영이 어려워지는 거예요. 인건비는 오르지, 이용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카페 앞에 스타벅스나 이디야가 생기면 매출에 타격받지. 그럼에도 카페를 계속 운영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고민도 나누고, 우리라도 재밌게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볼까, 공동 쿠폰제도 해 볼까, 혹은 바리스타 교육도 공동으로 해 볼까 하면서 3년에 걸쳐 네트워크를 꾸렸어요.
그런데 같이 시작했던 카페가 11개였다면 지금 남은 카페는 5개예요. 그 과정에서는 의미 있고 재미있고 열성적으로 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포는 마을 카페 운영이 어려워 없어졌다’가 되는 거예요.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해요. 우리 사업으로 좀 더 잘되고 성장한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를 자꾸 생각하면 되긴 하지만, 이런 일이 눈앞에 닥치면 지역 활동가처럼 일하는 사람에겐 정말 감정이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더는 못하겠다 싶어 그만두려고 했던 시점도 있었죠. 그때는 고용 형태 때문도 아니고 월급 때문도 아니고 사실 이런 이유가 제일 컸어요.”
주민기술학교, 지역 공동체에서 관계를 통해 안전망 만들기
하지만 올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와 방식의 사업을 꾸리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를, 게다가 이전보다 더 지역과 밀착되고 지역 주민을 진정한 주체로 세울 수 있는 사업이라 기대가 남다르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최근 들어 시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요. 그중 가장 큰 것이 사회적 경제를 통해 시민의 삶을 바꿔 보자, 사회적 경제가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중간 지원조직도 활동하자는 것인데요. 저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주민 조직화 사업을 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시작하는 사업이 ‘주민기술학교’예요. 지역 주민을 주체로 성장시켜 그들이 소비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급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를 주도적으로, 또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바꿀 수 있게 하자는 게 취지예요.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새로운 시도이고, 또 내 삶과 굉장히 밀접한 사업이라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저한테 동기 부여가 되는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부담이 돼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제가 잘할지 어떨지 몰라서.”
주민기술학교 개강식. 사회적 경제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이자, 재밌고 설레는 사업이다. ⓒ이동은 제공
이동은 씨의 우려와는 달리 주민기술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두 개의 과정이 개설되었고, 15강짜리로 긴 강의임에도 각 과정에 40명 정도의 신청자가 몰렸다. 모집 정원이 18명인데.
“우리도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더 놀란 지점이 뭐냐면, 올해 교육 과정이 간단 집수리와 주택보수 기술학교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특정 세대나 계층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비껴갔어요. 40대에서 50대 여성들이 정말 많이 신청했어요, 20-30대 여성도 많았고요. 실제로 또 어떤 면이 놀라웠냐면, 남성들은 그래도 약간 직업적인 욕구가 큰 거예요. 이걸 배워 보고 적성에 맞으면 직업으로 삼아보겠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여성들은 이걸 배워서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다, 어려운 사람들 돕고 싶다 하는 분들이 대부분인 거예요. 공동체를 바라보는 감수성이 이렇게 다르구나 느꼈죠. 그리고 같이 교육하는 함께주택협동조합에서는 ‘여성이 주축이 된 설비사업단이 지역에 있다면, 사람들이 안심하고 부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사는 여성은 집에 어디가 고장이 나도 쉽게 사람을 부르지 못하잖아요, 위험하니까.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있는 지역 공동체, 게다가 그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면 정말 좋은 안전망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사업을 하면서 또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이처럼 지역 주민이 지역사회에서 유효한 공급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또한 그 방식이 사회적 경제 방식이 될 수 있게끔 하는, 나아가 이동은 씨 자신의 삶과도 연결되는 사업을 앞으로 더 시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주민을 대상화하지 않고 실체 있는 개인으로, 내 이웃으로,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배우고, 배운 것을 물론 나를 위해서도 쓰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이웃으로 있으면, 내가 나이 들고 병들고 몸이 불편해도 정말 절망스러운 동네는 아닐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주민 혹은 시민이 많아질수록 내가 두려워하는 미래, 당장 다가올 미래에 조금씩은 안전망이 채워지는 게 아닐까. 관계를 통한 안전망을 만드는 사업을 사회적 경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 처음 체험한 거라, 이런 방식의 일이 있다면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활동의 동력이요? ‘동료들이 너무 멋있어서’
이동은 씨가 생각하는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물론 사전적으로 정의된 내용이 있지만, 사회적 경제 영역의 활동가로서 자기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경제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 경제는 세계관 같은 거예요. 전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것.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임금을 주기 위해 돈을 버는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는데, 그런 기업은 일반 경제에서 말하는 효율성하고는 동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 경제라는 세계관에서 보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이들이 잘살 수 있게 해 주는 무언가가 효율성일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장애인 기업은 엄청나게 효율적인 기업이 되거든요. 못 보던 것을 보게 만드는 거죠. 페미니즘 영역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빨간약 먹었다고 하잖아요, 여성주의 공부하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것처럼 시장주의 안에서는 잘 몰랐던 이면이나 홀대받고 무시되었던 가치가 사회적 경제라는 세계관에서는 눈에 보이고, 그러면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게 많아져서 이전처럼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만들어 준, 나만의 삶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까지 새롭게 돌아보게 한 ‘사회적 경제’라는 세계관이 중요했던 만큼, 이동은 씨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동력은 바로 사회적 경제에 몸담고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그들과 ‘동료’로 함께 일한다는 자체가 힘이었다.
사회적 경제에 몸담고 있는 ‘멋진’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이동은
“이런 영역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고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들하고 동료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느 순간 어떤 사람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하느냐가 참 중요해졌는데,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 아래서 일하는 이들의 활동이나 그들이 찾아내는 새로운 가치나 혹은 절대 안 될 것 같던 일을 결국 이루어 내는 모습을 보면 너무 멋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동료 같다는 느낌이 들고, 제가 그들의 동료라는 게 일하는 동력이 되더라고요. 동료가 멋있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 계속 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동료’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혹은 새로운 영감을 주었던, 그리고 정말 멋지다 싶었던 이들이 누군지 묻자 해빗투게더(Have It Together) 협동조합을 꼽았다.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마을 카페 운영), 삼십육쩜육도씨(의료생활협동조합), 홍우주 협동조합(홍대 앞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모임), 이렇게 세 협동조합이 자기 문제와 이슈를 가지고 모여서 꾸린 협동조합이에요. 그 이슈가 뭐냐면, 마포구가 지대가 높고 임대료는 계속 상승하니까 계속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고, 활동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셋이 모여 건물을 하나 세우자, 우리가 우리의 활동을 스스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자, 그리고 이런 모델이 있다는 것을 사회적 경제 조직, 나아가 지역에도, 공공과 행정에도 보여 주자 한 거죠. 저는 이런 걸 보면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예요. 와, 마포에서, 다른 데도 아니고 초초초 투기 지역이라는 마포에서 협동조합 3개가 거의 맨몸으로! 너무 허황된 얘기 같은데, 가서 들어보면 그 방식이 또 정말 사회적 경제 방식인 거예요. ‘시민의 힘을 모아 내겠다, 이런 걸로 늘 고민하는 사람들과 협력해 그들의 고민도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 이건 결국 공공성을 띠고 있다.’ 이런 거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 진짜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동은 씨는 지금 숨 고를 타이밍을 재고 있다고 한다. 7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조금 지친 것 같다고. 그래서 한번은 쉬는 타이밍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하지만 이후에 대한 계획은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사회적 경제 활동을 계속할 거라는 사실이다. 꼭 일로서, 직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 일이 정말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 활동을 이동은 씨가 머지않아 좀 더 안정된 조건에서 자기 전망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기록되어야 할 노동” 기획 연재를 위해 자문해주신 분들입니다. 고주영(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 박준우(프리랜서 작가), 이민영(비전화공방서울), 이충열(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최하란(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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