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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이후의 삶, ‘교환’되는 북한 여성의 몸
[페미니즘으로 보는 식민/분단/이주] 탈북 여성 서사, 불가능한 정착기
※ 일다는 식민-전쟁-분단의 역사와 구조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식민지배와 내전, 휴전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가 낳은 ‘여성의 이동’, 군 성폭력과 여성동원, 군사주의와 여성의 지위 등의 젠더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구조와 여성 주체들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전쟁/분단/이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관악구 탈북민 모자, 송파 세 모녀의 비극 그리고…
지난여름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한성옥(42)씨와 여섯 살 아들이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 사인은 아사(餓死)로 추정되었다.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가 아르바이트 소득이 생겨 수급자 자격이 중단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뇌전증을 앓게 되고, 아픈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지자 일을 구하지 못했던 듯하다.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라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관악 구청에 찾아갔지만, 구청에서는 이혼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번엔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 씨는 올해 1월 이혼한 중국인 남편으로부터 확인서를 받을 방법이 없었다. 이혼한 남편은 한 씨가 20대 초반에 먹고살기 위해 북한을 떠났다가 중국인 가정에 팔려갔을 때 브로커로에게 돈을 주고 자신을 산 사람이다. 한 씨는 중국에서 아이를 낳았고, 자신을 산 사람은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한 씨는 2009년 혼자 한국에 들어왔고, 먹고살 만해졌을 때 남편을 한국으로 불렀다. 한국에서 낳은 둘째가 한 씨와 함께 세상을 떠난 아이다. (서울신문 2019년 8월 15일자 「굶어죽은 6살과 엄마.. 3가지 못 풀면 '복지 사각 비극' 계속된다」, 경향신문 2019년 8월 24일자 「“아이 들쳐업고 산을 넘어 들어온 한국”…우리 안의 탈북자들」 참조)
한 씨 모자의 죽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송파 세 모녀를 떠올렸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세 모녀는 생활고로 고생하다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함께 죽었다. 지하 셋방에 살고 있던 세 모녀는 수입이 없었으나 사회보장제도의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 일을 계기로 ‘송파 세 모녀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그 보이지 않는 지대는 한 씨 모자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다. 그것도 두 달이나 지나서야 겨우 발견되었다.
▲ 올해 8월 15일 의왕 청계사에서 주관한 무연고 북한이탈주민 사망자 합동 천도재. “분단된 한반도의 북에서도 남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했던” 북한이탈주민 43명의 위패 가운데 최근 외롭고 비참하게 사망한 북한이탈주민 모자의 영가도 포함되어 있다. ©출처: 남북하나재단
탈脫-북北: 행선지가 없는 월경의 시작
우리가 한 씨 모자의 죽음에서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을 발견한 것은 탈북자의 삶이 우리 안의 경제적 소외자들의 삶과 비극적으로 조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탈북’이 곧바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기실, 1990년대 중반에 생겨난 ‘탈북’이라는 말에는 행선지가 표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북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일컬어 해방기~남한 단정 시기에는 ‘월남인’으로, 이념 대립이 치열했던 1960~1980년대에는 ‘귀순자’로 불렀다. ‘탈북자’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1995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탈출한 북한 벌목공 세 명에게 난민(refugee)의 지위를 부여하고, 1997년 남한이 법률용어로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다.
월경자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 ‘난민’이 되었고, 이때 난민이 되었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벗어남과 동시에 최종 정착지를 가지지 못함을 의미한다.
배급이 끊기자 ‘거래’ 대상이 된 여성의 섹슈얼리티
‘탈북자’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과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북한의 극단적인 궁핍에 기인한다. ‘고난의 행군’을 전후로 한 배급 체제의 붕괴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장마당’으로 불리는 시장(market)이 자생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정은이, 「북한의 자생적 시장발전 연구-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를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평화문제연구소, 2009)
시장의 탄생은 ‘고난의 행군’ 시기 고사 상태에 빠진 북한이 자본의 영역과 접촉(contact)하는 방식이었다. 북한의 ‘장마당’은 단순히 생필품을 중심으로 한 재화 교환의 장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 창출 공간으로 바뀌면서, 북한 체제가 배급제로 대변되는 국가사회주의 형태가 아니라 자본과 시장의 원리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장마당에서 각종 채소나 생필품을 팔았던 이들은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이들은 종국에는 자신의 몸을 팔게 된다. 북한이 자본주의에 접촉하자마자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상품이 되었고, 그녀들이 가진 모든 것 중에 가장 거래가 용이한 것이 그녀들의 몸이었다. 탈북 여성들이 고립된 북한 경제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접촉하자마자 그녀들의 몸이 ‘거래’의 대상이 된 것이다.
▲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비영리기구 북한인권위원회와, BASPIA 이혜영 공동대표가 조사한 77명의 재중 탈북여성 인권실태 보고서 <팔려가는 삶>(Lives for Sale, 2009)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이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한 탈북 여성의 비중에서도 확인된다. 1980-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로 넘어서면서 여성 탈북자의 수는 남성의 수를 초월하는데, 2006년 이후로는 전체 남한 입국자 중 70% 이상을 유지한다. 특히 연령별로 보았을 때, 20-30대 여성이 다른 연령대보다 많게는 5배, 동일연령 남성보다 2~3배 많다.(2016년 9월 기준, 통일부 <입국현황>) 인신매매를 통해 불법 성매매업소나 중국인 가정으로 ‘팔려간’ 불법체류자 신분의 탈북 여성들의 수까지 생각한다면,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
20대 초반 중국인 가정에 팔려가 체류하다가 2009년 한국에 입국한 한 씨의 삶은 통계가 보여주는 탈북 여성들의 전형적인 탈출기다. 그러나 한 씨의 삶은 통계가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 입국 이후의 비극도 보여준다. 한 씨 모자의 죽음에서 드러나는 것은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남한 땅에 도착하지만, 이곳도 그들에게 정착할 장소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비극적인 죽음으로 내몰리거나, 혹은 또 다른 삶의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다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장마당으로: 여성 신체의 ‘목숨을 건 도약’
탈북 작가로 알려진 김유경(필명)의 장편소설 『청춘연가』(웅진하우스, 2012)는 주인공 선화가 하나원(1999년 개원한 통일부 소속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에서 만난 여성들과 한국 입국 후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선화는 대학교수의 외동딸로 비교적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나 배급이 중단되자 어머니는 야채 장사를 나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급여는 벌써 중단되었으나 그는 대학교수의 체면도 있고 하여 생계에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다. 선화의 가족은 어머니의 야채 장사로 근근이 살아가고, 마침내 선화마저도 교원 생활을 그만두고 야채 장사에 나선다.
그러나 야채 장사는 결국 실패하고, 어머니는 앓아눕게 된다. 집을 팔아 마련한 장사 밑천마저 모두 잃었을 때, 선화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파는 일이다. 선화는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가는 조건으로 어머니의 일 년 치 식량과 약값을 마련한다. 어머니의 끼니며, 약을 마련하기 위해서 팔 수 있는 것은 ‘젊은 여성의 몸’밖에 없었던 것이다.
▲ 탈북 작가 김유경의 소설 『청춘연가』(웅진하우스, 2012) 표지. 김유경의 두 번째 장편 『인간모독소』(카멜북스, 2016)는 정치범수용소의 일을 다루고 있다.
여성들이 호구 마련이나 가족 부양을 위해 장마당에 나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팔게 되는 이야기는 탈북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들은 장마당에서 두부, 야채 따위의 ‘상품’을 돈으로 바꾸어 생계를 이어가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놓아야 할 상황에 이른다. 탈북 서사에서 ‘장마당’이 여성들의 수난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곳이 여성들의 ‘몸’이 ‘교환’되고, 이를 통해 국경을 넘어가게 되는 최초의 장소임을 의미한다.
이는 또 다른 탈북 작가인 장해성의 『두만강』(나남, 2013)에서도 잘 나타난다. 『두만강』은 누명을 쓴 주인공 준석과 그의 두 딸 혜영, 은영이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동생을 돌봐야 하는 언니 혜영은 어머니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고온 밥가마를 강냉이로 바꾸러 장마당에 나간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혜영에겐 식량을 마련해 놓는 일이 가장 급했던 것이다.
중국인 왕가는 밥가마를 강냉이와 바꿔 주겠다며 집으로 유인한다. 은영과 혜영은 미심쩍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강냉이를 마련코자 왕가를 따라가는데, 왕가가 노린 것은 밥가마가 아니라 혜영의 몸이었다. 그는 자매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혜영을 강간하려 했다. 물론 왕가는 자신의 행위를 강간이라 여기지 않고 ‘매매’라 생각한다.
“망할 년! 조선 여자는 100원이면 충분해! 그런데 네년이 300원이나 주겠다는데도 거절을 해?”(『두만강』 76쪽)
혜영은 밥가마와 강냉이의 물물교환에 실패한다. 부자로 소문난 중국인 왕가가 원한 것은 밥가마가 아니라 혜영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혜영은 두부 장사를 해서 돈을 벌며 자본주의적 교환의 장에 잘 적응해 간다. 그런데 어느 날 또다시 왕가가 찾아온다. 이번에 그는 혜영이 팔고 있는 두부를 모두 사겠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원한 것은 두부가 아니다. 두부값을 가장하여 혜영의 ‘몸값’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이때에도 혜영은 완강히 거절한다. 그녀는 왕가를 거절한 대가로 사경을 헤맬 만큼 건강을 잃는다. 이처럼 혜영의 몸을 교환체계로 편입하려는 자본의 힘은 혜영을 집요하게 쫓아온다.
장마당에서 시작된 혜영의 수난은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가는 데까지 이른다. 혜영은 브로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는데, 같은 북한 여성인 브로커는 이렇게 혜영을 위로한다.
“아무튼 그런데 한 가지 각오할 게 있소. 나를 통해 중국엘 가면 우선 홀아비든, 영감탱이든 그곳 사내에게 팔려가게 되오. 나쁘게만 생각할 것 없소. 가서 몇 달 지내며 돈도 모으고, 중국말이나 슬슬 배워가지고 기회를 봐서 냉큼 도망치시오. 다들 그렇게 하오.”(『두만강』 346쪽)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탈북 여성들의 월경을 주선하는 이들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매매’를 자행한다. 혜영의 타고난 미색 때문에 “흥정”은 꽤 길게 이어진다. “함경도 아주머니가 목청을 세우”고, “여자들 값을 매기며 흥정”한다. 혜영은 “몇 번이나 자리에 일어서 빙 돌았다. 팔려가는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349쪽)
이렇게 혜영을 ‘사간’ 사람은 처음 장마당에서 혜영을 사려고 했던 중국인 왕가였다. 여러 번 혜영을 사려고 했던 왕가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녀를 ‘사는’ 행위를 달성한다. 왕가는 혜영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너나 사는 데 8천 원이나 들었다”며, “니나 이젠 내 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주의를 준다.(352쪽)
▲ 탈북 작가 장해성의 장편소설 『두만강』(나남, 2013) 표지
『청춘연가』의 선화나 『두만강』의 혜영은 공통적으로 ‘결혼’이라는 ‘인신매매’를 통해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한다. 이들은 북한 내 상품‧화폐의 유통공간인 ‘장마당’에서 중국이라는 국경 밖의 자본에 접촉하며, 이때 이들이 중국이라는 세계 자본과 접촉하는 방식은 자신의 ‘몸’을 통해서다.
중국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신매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간 여성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곳에서 여성들을 지배하는 법은 오직 교환의 법칙이며, 그녀들의 ‘몸’은 화폐로 교환되어야 할 ‘상품’으로서 ‘목숨을 건 도약’을 하게 된다.
불가능한 정착, 또다시 월경
『두만강』의 혜영은 중국인 집에서 도망쳐 나와 남한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건너가는 강가에서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두만강』이 끝내 남한으로 가지 못한 채 죽은 혜영의 삶을 그리고 있다면, 『청춘연가』는 하나원에서 만난 여성들이 남한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나원에서 교육받는 탈북 여성들은 대개 유사한 경로를 통해 남한으로 입국하기에 비슷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인신매매로 중국 한족에게 시집갔다가 겨우 도망쳐 나온 선화,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딸까지 데리고 도망친 복녀, 노래방으로 팔려 다니면서 매춘을 강요당한 경옥, 세 여성의 우애를 바탕으로 주변의 탈북 여성들의 남한 생활이 삽입된다.
이 중에 남한 정착에 가장 성공한 사람은 복녀인데, 그녀는 타고난 익살과 너스레로 당당히 북한 식당 안주인이 된다. 그러나 선화나 경옥의 서사는 완전한 남한 정착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먼저 주인공 선화는 갑작스럽게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고 죽는다. 선화는 북한에서도 엘리트 계층이었던 탓에 남한에 와서도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인신매매로 팔려간 중국에서의 기억은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와 괴롭혔다.
선화는 삶을 마무리하면서 그녀가 가진 재산과 생명보험금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특히, 중국에서 낳은 딸에게 생명보험금을 남겨줌으로써 딸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을 표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몸’을 팔아 국경을 넘어온 선화가, 남한 입국 후엔 자신의 ‘생명’에 대한 대가를 딸에게 남기는 것이다. 선화의 삶에서 선명히 드러나듯, 북한 여성의 월경은 신체와 화폐의 교환에서 이루어지고, 이는 생명이 막음될 때까지 계속된다.
한편, 선화는 보험금의 일부를 하나원 동기였던 경옥에게도 나누어주려 한다. 경옥은 탈북 이후 중국의 노래방으로 팔려갔고, 중국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몇 번이나 다른 노래방으로 팔려 다니면서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경옥은 하나원에서 누구의 아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았다. 경옥은 탈출 과정에서 ‘결혼’이라는 기만적인 허울도 없이 성매매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경옥이 남한에 와서도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설은 경옥의 허영과 불성실이 그녀가 노래방을 전전하는 이유인 양 묘사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녀의 사치스러운 성향이 아니다. 이를 개인적인 성향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그녀를 둘러싼 착취 구조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그녀가 ‘상품’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상품되기를 멈추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자본주의 교환체계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녀가 ‘상품’인 이상 그녀는 ‘목숨을 건 도약’을 멈출 수도 없다. 소설의 결말에서 경옥은 또 다시 성매매를 하기 위해 다른 한국 여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다.
▲ 2016년 4월 28일 JTBC 뉴스가 보도한 <죽기 살기로 한국 왔지만 현실은…‘방치된’ 탈북자들> 중에서. 경기도 화성의 한 마을, 성매매를 알선하는 이른바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탈북여성 인터뷰 장면. ©출처: JTBC
국경을 넘는 여성들: 우리 안의 마이너리티
2016년 3월,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탈북자 성매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탈북 여성들의 성매매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성매매로 내몰리는 탈북 여성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촉구되었다.
언론사들의 취재 결과, 게시판에서 언급된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 수지에 형성된 ‘다방촌’에도 탈북 여성과 조선족 여성이 상당수 종업원으로 고용되어 불법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성매매로 내몰리는 까닭은, 남한 사회 내에서 직업을 구하기 어렵고, 북에 남은 가족을 부양하거나, 남은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JTBC 뉴스 2016년 4월 28일자 「죽기 살기로 한국 왔지만 현실은…‘방치된’ 탈북자들」, 중앙일보 2016년 7월 28일자 「티켓다방 떠도는 탈북 여성들 “자립 지원책 도움 안 돼”」 참조)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이 돈이 충당되지 않는다. 『청춘연가』에서 경옥이 일본으로 몸을 팔러 가듯, 많은 탈북자, 조선족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교환 체계 속으로 밀어 넣으며 국경을 넘어간다.
탈북 여성의 서사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에서 소외된 경제적 난민의 문제와 연동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남한 도착 이후의 삶에서 경옥에게는 ‘조선족/탈북/남한’ 여성이라는 위계보다 경제적으로 ‘벌거벗겨진 자’라는 점이 더 중요했다.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경옥을 경제적 난민으로서 위치 짓는데 일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경옥은 고립된 북한 체제에서 몸을 ‘상품’ 삼아 자본주의 교환 체제인 남한에 편입되지만, ‘경제적 난민’으로서 다시 자신의 몸을 교환체계 속에 밀어 넣게 된다. 그리하여 소설의 결말에서 경옥은 다시 남한에서 일본으로 월경을 시도하는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저, 한상석 역, 『모두스 비벤디-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 후마니타스
<탈출한 사람들은 일단 조국의 국경을 넘어서면, 그들을 지켜 주고 외국 세력에 맞서 권리를 보호해 주며 그들을 위해 중재에 나서 줄 공인된 국가 권위의 지원마저 받지 못하게 된다. 난민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국적이 없다는 말은 새로운 의미이다. 국적을 잃은 그들의 상태는 국적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던 국가의 권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단지 유령처럼 존재하게 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중략)
그들은 표류가 일시적일지, 영원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비록 그들이 어떤 곳에 잠시 머문다 해도 그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목적지가 (도착할 곳이든 되돌아가야 할 곳이든) 영원히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들이 ‘종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는 영원히 접근 불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곳에 정착하든 그것이 확정적이지 않은 일시적인 정착일 뿐이며,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졸여야 할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저, 한상석 역 『모두스 비벤디』 후마니타스, 2010, 65~66면
경옥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는 이들은 남한 사회에서 경제적 약자이며, 이들은 몸을 수단으로 하여 국가 경계를 넘는다. 남한에서 경제적 소수자들은 “법의 혜택을 박탈당하고 버림받은 새로운 유형의 추방자이고, 지구화가 낳은 산물이며 변경 지역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곳에 정착하든 그것이 확정적이지 않은 일시적인 정착일 뿐” 그들의 표류는 계속된다. 경옥의 삶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그리고 남한에서 또다시 일본으로 그녀의 몸을 통해서 표류한다.
탈북 여성의 서사가 완전히 정착기로 귀결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탈북자가 남한 사회 내로 성공적으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곳에서 또다시 ‘경제적 난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경우,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또다시 자신의 몸을 상품의 자리에 밀어 넣는 난민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겐 끊임없는 ‘탈출(脫)’만 남게 되고, 탈출의 서사는 종결될 수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이 글은 「‘교환'되는 여성의 몸과 불가능한 정착기」(구보학보, 2017)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한 내용입니다.
<필자 이지은. 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서울대 강사. 일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탈북 여성 등 국가 경계 여성 서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글로, 「유동하는 텍스트(fluid text)와 북한 재현 양상-반디의 『고발』과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의 번역 The Accusation을 중심으로」(춘원연구학보, 2018) 「민족주의적 ‘위안부' 담론의 구성과 작동 방식-윤정모, 「에미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최초 판본과 개작 양상을 중심으로」(여성문학연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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