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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
<피해와 생계 사이>④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의 ‘생계’와 ‘생존’을 키워드로 삼아 성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피해와 생계 사이> 기사를 연재합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집담회로, 5월부터 매달 새로운 주제로 총 5회 열립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성폭력 피해를 치유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피해자는 피해로 인해 한동안 일을 하기 힘든 상태에 놓이기도 하는데, 이럴 땐 생계가 막막해진다. 경력도 단절된다. 가해자를 고소하는 데에는 소송비용이 든다. 심리상담을 받거나 불면증, 우울증 약을 먹는 것도 다 돈이다. 각종 신체화 증상(심리적 문제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엔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든다.
단순히 돈 문제만이 아니다. 자신의 피해를 주변인들에게 증명해 내는 것,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려가며 진술서를 쓰고 변호사를 만나고 법정에 서는 것, 이 모든 것에는 에너지가 든다. 피해자는 주변 관계로부터 단절당하거나 스스로 단절을 선택하기도 하기에 친구를, 동료를 잃는다. 즐거운 시간을 박탈당하고 한동안은 유머를 잃기도 한다. 이는 모두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됐을 일들이다.
지난 9월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네 번째 시간의 주제는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이었다. 이나연, 노유다, 판이 이들 세 명은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을 해결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그 ‘투쟁과 치유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플로어를 채운 참여자들은 함께 울고 웃고 박수를 보내며, 사회와 주변인들이 해야 할 몫을 고민했다.
지난 9월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피해와 생계 사이’ 연속 집담회, 네 번째 자리는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을 주제로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저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변화하길 바랐어요’
영화감독 이나연 씨는 “가해자를 가해자로, 저 자신을 피해생존자로 규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말한다.
올해 초 상업영화 제작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이나연 씨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가해자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나이도 많고 인적 네트워크도 훨씬 많은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한 달여를 더 일하면서 나연 씨의 마음엔 분노가 쌓여갔다.
“너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제 안에서 계속 피해를 축소하려 하고 스위치를 끄려고 했어요. 가해자가 이것 때문에 경력이 단절될까 봐 걱정도 됐고, 나만 함구하면 저 사람은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또, ‘든든’(한국영화성평등센터)과 같은 단체의 존재를 알아도, 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 너무 커다란 일처럼 느껴졌어요. 상업영화 현장은 매일 바쁘게 돌아가고, 스텝들의 피로도 너무 잘 보이는데, 영화 프로젝트에 줄 영향도 걱정됐고요.”
이나연 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 시절 겪었던 또 다른 성폭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작년 미투(#MeToo) 운동이 계속되던 내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가해자와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이 두 사건의 가해자들을 대면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나연 씨가 처음 선택한 방법은 가해자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저한테는 가해자가 변하는 게 중요했어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가해자와의 사적인 합의 조건에는 ‘가해자가 변화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나연 씨가 처음 두 가해자 모두에게 한국성폭력상담소 정기후원과 페미니즘, 성폭력에 대한 책들을 읽고 변화한 지점을 전달해줄 것, 그리고 강간미수와 무단 가택침입을 했던 가해자에게는 6개월 동안의 심리치료 비용을 계산하여 요구하였다.
대학 시절의 성폭력 가해자는 처음에는 가해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 같더니, 얼마 후 가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결국 영화 산업 내 성폭력 상담 및 예방 기구인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통해서 대리 합의의 과정을 거쳤으나 이마저도 실패했고, 가해자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나연 씨는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나연 씨는 “저는 제 삶과 제가 겪은 피해,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리하기 힘들었는데 가해자들은 성폭력 가해와 일상을 너무나 잘 분리해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말하며, “희망을 버리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한 개인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평생을 살아온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그 권력 구조와 싸우는 건데 그걸 내가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너무 큰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성폭력 피해를 겪고 회복하는 과정의 ‘중간정산’
이나연 씨는 성폭력 피해를 입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직장,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순진함을 잃었다”고 전한다.
“가해자들은 둘 다 유명한 영화 프로젝트에 고용이 돼서 자신들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저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글을 쓰거나 읽거나 하는 일들이 불가능했어요. 이 과정에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불면증, 방광염, 귀가 멍멍한 증세, 헛구역질도 계속됐죠. 식이장애로 한 달 만에 8kg이 빠지기도 했어요. 스트레스성 질병들은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정상으로 나와요. 증세는 있는데 증명이 되지 않는 게 성폭력과 비슷하죠.”
나연 씨는 이 과정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꼭 ‘착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이 ‘순진함’에 대해 질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장편 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있기 전부터 막연하게 성폭력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왜 이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가해자들을 대면한 후 ‘얻은 것’이죠,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른 선택을 했었을까 묻는다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필요한 깨달음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얻은 것은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다. 나연 씨는 그중에서도 특히 심리상담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든든’에서 심리치료 비용을 지원받아서 상담을 받고 있고, 가해자와 대리 합의에도 ‘든든’이 나섰다. 또한 든든은 영화계 내 성폭력 가해자들 명단을 아카이빙하고 성폭력 사례를 각색해서 공개한다. 가해자가 소속된 단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단체에 적절한 사건처리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권고의견을 보낼 수도 있다. 어떤 분야에 전문적이면서도 성폭력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공식적인 기구가 상존할 때 이렇듯 피해자에겐 큰 힘이 된다.
9월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린 ‘피해와 생계 사이’ 연속 집담회 네 번째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 행사의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모습. 한국성폭력상담소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10년
노유다 씨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소설 <코끼리 가면>의 저자다. 또 출판계 노동자이자 미투(#MeToo) 당사자다.
“성폭력 피해자가 육하원칙에 따라서 법률적인 소명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상태여야 (이 사회가) 피해를 믿어주기 때문에, 아주 또렷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계속 비용을 써가면서, 굉장히 안간힘을 쓰면서 견디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큰 오빠와 작은 오빠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겪어온 그는 13년 전, 원 가족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한 일은 피해자인 유다 씨를 정신병동에 반강제로 입원시킨 것이었다.
폐쇄 병동에 있었던 3개월의 시간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그 이후 가족과 함께 산 6개월이었다. 어머니는 “같이 죽자”고 말하며 ‘보호’라는 명목으로 노유다 씨를 가뒀고, 가해자들은 수시로 집을 드나들며 분위기를 살폈다. 유다 씨는 그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 경험을 가진 파트너가 치밀하게 내 고통을 들어줬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옥탑방을 얻어 집에서 나오면서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어서 법적 대응은 할 수 없었지만, 상담소에도 찾아가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다.
유다 씨는 ‘움직씨’라는 출판사를 직접 만들어 2016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코끼리 가면>을 출판했다. 책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과정이 “화를 다스리고 상처를 극복하면서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집에서 나와서 책을 내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10년은 너무 큰 세월이었어요. (그 시간 동안)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고 등단을 할 수도 있었는데, 박 터지게 싸웠던 삽질의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낸 뒤 어머니와의 소통을 포기하기까지 또 3년이 걸렸어요.”
노유다 씨는 작년에 부친이 사망한 후 가족들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유산 포기각서를 달라”는 어머니, 그리고 가해자가 속한 가족에게 심리적으로 더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안전망 모두 잃고 ‘생존자의 자리’ 얻었다
출판노동자로서도 또한 생존의 연속이었다. “문학을 하려면 창녀가 돼야 한다”고 하면서 “원고를 주면 1차 심사에서 통과시켜 주겠다”던 출판사 대표. 지방 출장을 가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2시간 동안 언어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경험, 편집자로 일하면서 출판사에서 겪었던 성적 위협. 노유다 씨는 결국 29살에,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자원인 ‘등단’을 포기했다.
“친족 성폭력으로, 사람들이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여기는 영역을 잃었어요. 또 출판계 미투, 문학계 미투를 하면서 ‘등단(에 대한 희망)’을 접었습니다. 더이상 출판사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서 외주작업을 할 수 없기에 안정성도 잃었죠.”
하지만 그는 “‘생존자의 자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하나의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얻었어요. 피해를 어렵게 복구해 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또 독자를 얻었어요. 여성예술인들의 네트워크도 만났습니다.”
유다 씨는 자신의 책을 도서관에 신청하거나 출판사 활동을 응원하는 등 미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힘을 느낀다고 한다. “수치화할 수 없지만 생존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들어주는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체가 있다”고 느낀다고.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소송으로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고 ‘타로 읽는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판이 씨는 2014년 자신이 일하던 출판업계의 한 협회 행사 뒤풀이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이후 그는 공동체 내에서 사건 해결을 시도했다.
“제가 일했던 출판업계에서 미움받기 싫었고, 사랑받고 친해지고 싶었고, (가해자와 주변인들이) 아무리 꼰대 같아도 대화하고 싶었어요. 조직 문화를 바꿔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피해를 입은 다음 날, 판이 씨는 ‘형님문화’가 팽배해있던 그 협회의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피해 경험을 올렸다. 가해자 이름과 그 자리에 함께했던 목격자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화의 누구라도 그 행위자의 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하기 위해서’라고도 적었다.
고통스러운 치유와 투쟁의 과정이 시작됐다. 해당 협회의 운영위가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가해자는 교육을 받기로 해 놓고 외부 강사의 전화 연락도 신경질 내며 끊어버리는 등 약속을 번복하곤 했다.
판이 씨는 사건 발생 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잊어보려고 노력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심리상담도 받았다. 일을 못 하고 지내는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자 가정폭력상담원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된 해결이 요원해지면서 이 사건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판이 씨는 소송을 결심하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동안의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해결을 위해 내가 했던 노력들이 다 보잘 것 없어질까 봐, 공동체적 해결이 실패한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겠어서 안 되겠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한번은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결심하게 됐어요.”
판이 씨는 결국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이르러 패배감에 싸여 있을 때 “네가 공동체적 해결 과정에서 했던 노력들과 쌓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법정 투쟁도 할 수 있었던 것, 네가 (선택의 기회를) 따낸 것”이라는 한 친구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결국 형사고소를 통해서 가해자는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고, 민사소송을 통해서 피해에 대한 배상금도 받아냈다. 판이는 그 돈을 보태 여성학을 전공하러 대학원에 진학했다.
성폭력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강간죄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진행된 제10차 페미시국광장, 강간죄 개정을 위한 총궐기 <이제는 강간죄다, 폭행 협박 증명요구 폐기하라!> 사진: 혜영 제공
피해자와 가해자가 치르는 비용의 격차 뒤집어야
길고 긴 치유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판이 씨는 “나의 무의식, 그림자, 꿈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온전한 인간으로 자신의 여러 조각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나의 여리고 말도 안 되고 비합리적이고 비겁한” 부분들을 껴안는데 타로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지만 판이 씨는 여전히 “일할 때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다”, “삶에서 즐겁고 재밌는 것, 그걸 자유롭고 편하게 누리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계에서 일했는데 (피해 이후) 책을 못 읽게 됐어요. 한창 일할 나이이고 돈도 벌면서 인정도 받을 때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거죠. 출산 같은 다른 경험도 없는데 ‘경단녀’ 대열에만 합류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판이 씨 역시 다른 피해자들처럼 신체화 증상이 나타났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포진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이 빠졌다. 더불어 중학교 때 경험했던 성추행 기억이 올라와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가제트처럼 팔을 쭉 뻗어서 내 가슴을 만질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꿈에서) 수술 중인 동물의 몸을 사람들이 고기 먹듯 먹는데 (사실은 그게) 내 몸이었다든지, 별별 악몽도 자주 꾼다”고 한다.
“성폭력에 대해 말하는 걸 불필요한 비용 취급하는 사회”(판이)에서 성폭력 피해자 개개인이 오롯이 그 공백의 시간과 치유의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개인의 비용으로 보이는 이것들은 사실 사회적 비용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를 치유하는데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판이 씨의 말처럼 “가해자가 변화할 때 드는 비용보다 변화하지 않을 때 드는 비용이 커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치르는 비용의 격차를 뒤집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시작이다. 또 피해자 지원체계가 더 많은 공간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피해자 또한 홀로 그 비용을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피해와 생계 사이’ 5차 집담회는 10월 25일 금요일 <성폭력 이후, 나의 일상찾기>를 주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성폭력 생존자가 만들어 가는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고통’과 ‘회복’에 대한 사회의 통념을 비판한다. (문의 02-338-2890, ksvrc@sisters.or.kr) 나랑 기록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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