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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에 응답하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90년생 페미니스트 정치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조혜민
메갈리아의 탄생,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낙태죄’ 폐지 검은 시위, 그리고 미투 운동(MeToo)을 거치며 한국에서 여성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결집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이들이 거리로 나왔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지만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성 정당들은 이전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아재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20대 국회는 수많은 미투 관련 법안들을 잠재우며 무능함을 드러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더이상 흩어버리지 않겠다!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겠다’는 각오로 출사표를 던지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꿘아재정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정의당에서 8년간 정치 활동을 펴온 1990년생, ‘여성 청년 정치인’인 조혜민도 그중 한 명이다.
정의당 당사에서 만난 조혜민 여성본부 본부장 (촬영: 일다 박주연 기자)
여성운동 단체에서 일하면서 ‘미투 운동’에 목소리를 높였고, 여성 당원 비율이 절반을 못 미치는 환경 속에서 싸우고 버티며 성장하며 정의당 여성본부장이 된 조혜민에게,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낼 때마다 ‘편향적이다’, ‘남혐하는 사람’ 등등의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들러붙는다는 걸 생각하면,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이름표는 꽤 무겁다.
그 무거운 이름표를 굳이 달고 나왔다. “정치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그 말에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하는 조혜민 본부장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3월 초, 시민선거인단을 통한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 결과 23번으로 선출되어 올해 국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지는 않지만, 그는 정의당 여성본부장이자 선대위원으로, 성평등 선대본부장으로, 또 비례대표 후보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정당 활동 8년…싸우며 성장한 ‘노란페미’
조혜민 여성본부장이 정의당에 입당한 건, 창당일(2012년 10월 21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말 그대로 정의당의 역사와 함께 정당 생활을 해왔다. 1990년생인 그가 20대 초반이었던 2012년, 어떤 생각으로 정당에 가입한 걸까? “사회를 바꾸는 건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정치나 정당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조혜민 본부장은 “그럼에도 진보정치에 끌렸다”고 한다.
“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시는데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난 왜 이렇게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통합진보당 이후, 정의당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제 정당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진보정치 이제 망했다’는 소리를 하니까 오히려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평소에도 전 뭐든 바닥을 치면 그 뒤론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나 페미니스트인 그가 진보정치에 대한 열망만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해나가기엔 내부에서 부딪히고 좌절하는 일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정의당도 과거 ‘여성혐오’ 논란이 몇 번이나 있었던 걸 떠올려보면 말이다. 조혜민 본부장은 정당 내에서 성평등을 위해 싸우고, 끈질기게 활동을 해나가면서 “상대에게 가능성을 주는 자세를 배웠다”고 얘기했다.
“정당이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었을 다른 연령대와 다른 성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분명히 소통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많이 싸웠고요. 그게 꼭 페미니즘에 한정되는 건 아니에요. 정당은 정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 치열할 수밖에 없거든요. 또, 이게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정당 내 사람들에게 나의 의견을 잘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다른 공간에서도 정치할 수 있잖아요.
전 갈등을 회피하는 순간, 정치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과정에서 기본적인 자세는 상대에게 가능성을 주는 거라고 봐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 안 통할 거야’라고 단정해버리는 순간, 어떤 것도 하기가 어렵죠. 심지어 내가 원하는 사회 변화가 그렇게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고 했을 때, 끈질기게 같이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조혜민 여성본부장 (출처: ‘조혜민과 다시 만날 세계’ 페이스북)
8년 동안 정당 활동을 하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정치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조혜민 본부장은 자신이 지쳤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기에 더 나아갈 수 있었다는 말도 보탰다.
“지역위원회 활동할 때도 당원들이랑 많이 싸웠거든요. 한번은 당시 지역위원장님한테 ‘너무 지친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혜민처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바뀔 수 있다. 계속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내가 원하는 건, 문제 제기할 때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당내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더 있을 수 있으니 좀 더 가시적으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정의당 내 여성정책연구모임 ‘노란페미’가 만들어졌다. “탈당을 고민하거나 힘들어하는 여성 청년 당원들한테 ‘우리가 있음을 보여 주자, 함께 존재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모임이에요. 그런데 이 모임에서 지난번 당직 선거를 통해 박예휘라는 정당 부대표를 배출했고, 저도 여성본부장이 되었죠.” ‘노란페미’의 성과를 자랑하던 조혜민 본부장은 “농담으로 ‘우리가 정당 내 최대 파워그룹이 되고 있다’고 얘기한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20대 여성본부장이 되다
심상정 대표로부터 정의당 여성본부 본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당시, ‘내가 해도 괜찮은가?’ 잠시 망설였지만 ‘앞으로 정치를 하고 싶으면 지금 결정이 필요하다’는 심 대표의 조언에 따라 조혜민은 그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여성본부장은 여성위원회 위원장과는 달리,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런 권한이 없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 여성위원장을 맡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진짜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과 힘이 없으면 제 마이크가 작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나이도 어린 여성 청년이잖아요. 그래서 꼭 상무위에 들어가겠다고 했죠.”
여성본부장이 된 조혜민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잘해야, 여성본부뿐만 아니라 다른 자리에도 20, 30대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성본부의 활동과 위치에 대해 고민하며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조혜민 여성본부장은 작년 말 제기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2월 개최한 긴급좌담회에서 왼쪽 조혜민 본부장이 토론하는 모습. (출처: ‘정의당 여성본부’ 페이스북)
이제야 정치권이 주목하기 시작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에 대해서도 정의당 여성본부는 일찌감치 목소리를 내고 대책을 논의했다. 2월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와 함께 긴급좌담회 <텔레그램 n번방, 끝없는 젠더폭력의 뫼비우스를 끊기까지>를 열어 이 사안의 시급함을 알렸다.
최근 국민청원 ‘1호 법안’이 될 것이라며 많은 기대를 모았던 텔레그램 내 성착취 문제에 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졸속으로 끝나자, 지난 11일 조혜민 여성본부장은 ‘집단 성폭력’과 같은 악질적인 범죄를 막지 못하는 국회라며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정의당 여성본부는 국회가 페미니스트 정치로 응답할 수 있게끔 청원이 남긴 과제들과, 추가로 필요한 법안 발의와 통과 등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혼자 사는 여성은 왜 신고가 아니라 이사를 택할까? -제대로 된 스토킹처벌법 마련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고 스토킹처벌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젠더폭력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후보도, 선거운동원도 성평등한 선거를 치르자!
비례대표 경선이 끝나자마자 정의당 여성본부는 <성평등 선거 가이드>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미투 이후의 총선’이라는 의미에 맞게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모든 선거운동본부에 성평등 선거운동 가이드라인과 스티커를 보냈다”고 말하는 조혜민 본부장은 “지역구 후보자들 중에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주시는 분도 있고, 선거운동을 함께하는 이들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후기도 접하고 있다”며 뿌듯함을 내비쳤다.
서울 은평구(을) 후보자인 김종민 정의당 부대표와 함께 한 ‘성평등 선거운동 가이드북 언박싱 유튜브 영상: 니손님은 내가 맞고 니컵은 내가 씻고’ 중에서
“선거 때 선거운동원들이 겪는 폭력이나 차별 등의 피해를 살펴보면,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데 이들의 경험은 굉장히 사소한 것처럼 치부되곤 하죠. 정치적인 경험을 한다고 보지 않는(돈 받고 하는 거라는) 시선도 있고요. 치열한 선거운동 과정 속에서 그 정도의 피해는 ‘참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죠.”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표 아래, 강력한 위계 속에 묻혔던 목소리들이 더이상은 어느 개인의 몫이 되지 않도록 함께 성평등한 선거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은 큰 의의를 갖는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성평등한 문화를 지켜내는 방법을 제시하는 건, 성평등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정당으로서의 책무라고 봤다”고 설명하는 조혜민 본부장의 목소리엔 힘이 더 실렸다.
“실제 사례들을 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좀 아쉬워요. ‘이런 게 차별이다’라는 것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 차별을 경험한 사람 혹은 주변 사람들이 그 경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느냐의 문제는 또 다르잖아요. 다음 선거 땐 실제 사례들도 수집해서 넣어볼 예정이에요.”
‘촛불 이후’가 아니라 ‘미투 이후’의 총선 되어야
조혜민 본부장은 경선 과정에서 자신이 내세운 페미니즘 의제들을 정의당의 대표 의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번 총선을 촛불 이후의 총선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미투 이후’의 총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던 날. 법원에 가기 전 피켓을 만들어야 했는데 늦을까 봐 사무실 옆 카페에서 밤을 새고 집회에 참석했다. (출처: ‘조혜민과 다시 만날 세계’ 페이스북)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 오는 것과 동시에 지금 정치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미투 광장에서의 외침을 통해 내가 겪은 성폭력이 나만의 경험이 아님을 확인했고요. 그래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권한과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걸 보다 현실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투 광장의 외침이 국회의 담장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남성화된 정당과 정치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죠. 미투 이후의 총선이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의 선거가 ‘미투에 응답하는 선거’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요. 저 또한 그걸 잊지 않고 총선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만들어진 이후, 21대 국회엔 조금 더 다양한 의제를 가진 다양한 얼굴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비례위성정당이 생기면서 그 기대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에선 ‘여성 청년’ 후보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고 말이다.
그래서 “정의당 비례대표 1, 2번에 여성 청년인 류호정, 장혜영 후보가 선출된 게 더 값진 일이 되었다”고 말한 조혜민 본부장은 “멋진 페미니스트 후보들이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비례대표 경선 이후, 조혜민 여성본부장은 여성 청년 비례대표 후보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 단톡방도 만들며 동료들과 연대를 쌓아올리고 있다. 왼쪽 위부터 조성실, 류호정, 조혜민 후보. 왼쪽 아래부터 정민희, 문정은, 장혜영 후보. (출처: 조혜민 페이스북)
“여성 청년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많은 지지’가 필요해요.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이들이 마주할 장벽을 낮추는 데 최대한 노력할 겁니다. 성평등 선대본부장으로서, 정의당 선거운동에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도록 성평등 이슈, 젠더폭력 이슈에 대응하는 일에 힘쓸 거에요. 그리고 여성 청년 비례대표 후보들이 정의당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정치 활동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동료가 되고 싶어요.”
조혜민 본부장은 “앞으로 정치하고 싶은 페미니스트들이 더 빨리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단축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더 많은 동료들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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