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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지위를 이용한 성관계 “연애가 아닙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이어진 교사 성폭력을 제소한 이시다 이쿠코
작년 12월 11일 도쿄에서 열린 ‘플라워 집회’(2019년 3월, 잇단 성폭력 무죄 판결에 대한 이의 제기와 성폭력 근절을 목표로 도쿄를 시작으로 일본 전국 각지에서 매달 1회 개최된 집회)에서 중학교 교사로부터 당한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한 여성이 있었다. 피해에 따른 오랜 고통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아동에 대한 성범죄 시효를 철폐하길 바란다”고 호소하는 모습에 가슴이 메어 바로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이 이시다 이쿠코(石田郁子) 씨였다.
이시다 씨는 열다섯부터 다니던 홋카이도 삿포로의 시립중학교 미술 교사로부터 졸업 후 열아홉 살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작년, 가해자와 삿포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도쿄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플라워 집회’ 다음 날이 항소심 1회기 일이어서 ‘방청연대’를 호소하기 위해 집회에 나와서 발언했다고 한다.
이시다 이쿠코 씨(1977년생). 이야기를 나눈 날, 선명한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었다. “평소엔 빨강은 입지 않고 파란 계열을 많이 입는 편인데, 친구가 빨강도 잘 어울린다고 추천해줬어요. 기분이 밝아지네요.”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선생님 말씀은 따라야 하는 거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겪은 성폭력 피해는, 우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사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기억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피해를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시다 이쿠코 씨도 자신의 피해를 인식한 것이 서른일곱 살 때였다.
공부할 생각으로 방청했던 아동복지법 위반 형사 재판에서 들은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과 흡사했다. 그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나타났다.
피해를 자각한 후 돌아보니 교사와 본인은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었다. 아직 누구와 사귄 경험조차 없던 시절의 일. 교사는 이 관계가 연애라고 생각하게끔 했지만, 학생인 이시다 씨의 의사가 존중된 적은 없었다.
당시에는 폭력이라고 깨닫지 못했지만 ‘선생님이나 어른의 말씀은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시다 씨에게, 오랜 기간에 걸친 성폭력 피해는 심신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충동적 행동이나 성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소중히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감각이 온전하게 몸에 배지 않았었다.”
피해를 깨달은 후, 이시다 씨는 가해 교사와 만났다. 너무 쉽게 사과를 받았다. 그는 당시에 이 관계가 연애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옛날 일이잖아, 사귀었잖아, 가정이 파괴된다…
“2016년 2월에 삿포로시 교육위원회에 조사와 교사의 처분을 요구했습니다. 교사가 저에게 한 사과를 녹음해 그것도 제출했죠. 하지만 교육위원회는 교사가 이를 부인한다며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교사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죠. 게다가 지금도 그 교사는 교단에 서고 있으니까요.”
같은 피해가 지금도 누군가에게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교육 행정에서 아이들의 안전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제소는 2019년 2월.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실명을 공표했다. “성범죄 뉴스라는 것이, 가령 피해자의 신체 일부만 비추거나 하는 식이니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잖아요. 저는 교육위원회와도 직접 협의를 했고, 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제가 제기하는 문제가 사람들에게 이해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세간의 반응이 두려웠다. 기자회견 날 밤에는 뉴스조차 보지 못했는데, 친구로부터 인터넷에는 호의적인 댓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법적 판단을 호소한 이유는,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과 자신의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심리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1심에서 판사는 피해를 당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면서, 제척기간(일정 기간 이후에는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정기간을 뜻함)만을 심리했다.
소송은 기각되었다. 그럼에도 “소송을 했기 때문에 간신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라고 이시다 씨는 회고한다. 진술서에 지금까지의 속내를 적을 수 있었던 점이 의미 있었다고.
부모님도, 친구도, 변호사도 제소를 반대했다. “옛날 일”, “사귀었잖아”, “상대의 가정이 파괴된다….”
“성범죄가 까다로운 것은 가까운 사람마저도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피해자는) 인간에 대한 불신에 빠지게 되죠.”
1심 재판의 과정은 주변의 지지를 얻지 못해서 “고독하고 고됐다.” 하지만, 재판을 방청한 사람들이 ‘지지 모임’을 만들었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제척기간도 민법 개정에 따라 올해 4월 사라졌다.
1심은 고독한 재판이었다고 얘기한 이시다 이쿠코 씨의 직업은 포토그래퍼다. 매일 아침 도쿄의 광경을 담은 사진 작품 “Automatic Line, mainly Tokyo, Japan 2013”. 출처: https://ikukoishida.com
교사 상사 등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를 형법에 명시하라
이시다 이쿠코 씨는 올해 형법 성범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 같은 지위 관계를 이용한 성행위 강요가 범죄라는 사실이 명시되길 바랍니다.”
또한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 보았을 때, 성교 동의 연령(해당 연령에서는 성관계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비동의로 간주)이 현재의 만13세에서 더 높아질 필요가 있으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던 교육위원회에는 고충이 신고될 경우 제삼자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편, 성교육의 내용 안에 ‘교사는 아동에 대한 권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시다 씨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30대 중반에는 핀란드에서 사진을 배웠다. “먼 외국에서야 겨우 안전하다고 느껴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작년 말경부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 겨우 즐겁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이시다 씨의 표정은 평온하고 솔직한 눈을 하고 있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시미즈 사츠키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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