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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재구성> 어느 탈가정 청소년의 “내가 살고 싶은 집”②
10대 초반이나 그 이전에 ‘나는 나중에 커서 어떤 집에서 살까?’를 생각하면 막연히 흰색의 커다란 단독주택과 잔디 깔린 정원, 그리고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을 나온 이후 내가 꿈꿨던 집은 단지 ‘답답하지 않은 집’이었다. 나의 사생활이 보장되며, 누구에게도 허락받을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원하는 시간에 드나들 수 있고,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시간에 잠들고 깨어나는 것. 지금의 내가 생각했을 때 너무나 사소한 일상이지만 청소년인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자유를 찾아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파란색 잠바. 그때의 추웠던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라일락)
나뿐 아니라 많은 청소년에게 있어서 집에서 산다는 것은 겉보기에 안락한 감옥에서 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나는 집을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집은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울타리로 묘사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통제와 폭력의 공간이다.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곳. 언제든지 용돈이 끊길 수 있고, 맨발로 쫓겨날 수 있는 곳. 말을 듣지 않았을 때는 30센티미터짜리 자나 나무막대기로 손바닥을 맞는 곳. 혹은 벽 한구석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하는 곳. 마음대로 내 방문을 잠그면 안 되는 곳. 애인을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곳. 통금시간을 지켜야 하는 곳. 누군가가 내 가방이나 일기장을 허락 없이 열어볼 수 있는 곳.
청소년인 나에게 집은 가장 사소한 일상까지 침해받는 공간이었다.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는 많은 통제와 체벌을 가했지만, 정작 나는 집에서 안전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집을 나온 이후에는 세상이 ‘가출청소년’에게 건네는 손가락질과 미성년자여서 겪은 법적인 난관이 있었지만, 부모와 한집에서 함께 살 때보다 마음이 편했던 것은 분명하다. 자유의 영역이 한결 넓어졌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내 삶을 내 선택으로 꾸린다는 주체적인 느낌도 나를 더 강하게 해주었다. (계속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어진 기사 전체보기: 분홍 이불, 문제집 꽂힌 책장…아늑한 나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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