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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방법’ 찾으려 국경 넘은 여성들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연재를 마치며② 채혜원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많은 국가 중 우리는 왜 독일로 이주했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은 대표적인 이민국이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총인구 8,170만 명 중 950여만 명이 외국인이다.(2017년 기준)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도 980여만 명에 이른다.(여기서 ‘이주 배경’은 자신 또는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
이미 인구의 20%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성을 향한 독일 사회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년 안에 독일의 ‘이주 배경’ 인구는 35~4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연방정부 고용연구소의 허버트 브뤼커 이민연구부서장은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안에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 인구는 40%에 이를 수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의 경우 65%에서 70% 사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독일 전문가들은 향후 독일 경제 침체를 피하기 위해 2060년까지 매년 40만 명의 이민자가 더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다양한 민족이 사는 독일에서는 집회에서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외치는 구호를 들을 수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베를린 집회 모습. (사진: 채혜원)
상대적으로 이주민에게 열려있는 국가지만, 오랜 이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오랫동안 ‘이민국’이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독일의 외국인 관련 정책이 추가 이민을 막는 것에 집중돼있을 정도였다. 독일 이민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자격’을 갖춘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센터(bpb)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독일은 IT 전문가의 이민을 촉진하기 시작했고 이 움직임은 2004년 새 이민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이후 독일 정부는 이민자와 그들 자녀에 대한 통합을 주요 정부 과제로 채택됐다. 2009년 시행된 ‘노동이민조절법’으로 독일은 영주권 취득 조건을 완화하는 등 자격을 갖춘 외국 노동의 유입을 촉진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연합(EU)이 2012년부터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정책은 ‘블루카드’ 제도다. 배터리 엔지니어로 일하는 지선의 인터뷰(http://ildaro.com/8656)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학 학사 학위와 5년 이상의 업무 경험과 최소 연봉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블루카드를 받을 수 있다. 수학자, 엔지니어, 자연과학자, 기술자, 의사는 더욱 쉽게 카드를 취득할 수 있다. 블루카드 소지자가 일정 수준의 독일어를 구사하면 21개월 후부터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독일의 이주 정책 개혁이 학문적으로 훈련된 전문가만을 위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 3세계 국가의 특정 전문인력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따로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자격’을 갖춘 이민자에 대한 수용 폭을 넓힌 개혁안은 이민자를 독일의 경제 및 인구통계학적 유용성에 기초해 도움이 되는 ‘상품’ 취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독일은 IT, 의료 분야 등 ‘고급인력’이 아니더라도 여러 인터뷰이 사례를 통해 살펴봤듯이 ‘프리랜서 비자’를 통해 다양한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다. 프리랜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직무는 치료, 경제 직군 등 독일 사회가 선호하는 분야 종사자도 있지만 예술가와 저널리스트, 통·번역가 등 언어 분야도 속한다. 이번 연재에서도 프리랜서 타악기 현대음악가, 시민단체 활동가, 저널리스트, 셰프 등 프리랜서 비자로 각자 영역에서 활약 중인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에는 전 세계에서 국경을 넘어 온 다양한 이주자가 함께 살고 있다. 사진은 전체 시민의 25%가 외국인인 도시 베를린의 마우어파크 모습. (사진: 채혜원)
한 가지 특화된 직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프리랜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독일 프리랜서 비자의 특징이다. 은해(http://ildaro.com/8561)의 경우, IT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예술 분야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고 미혜(http://ildaro.com/8769)의 경우에도 독립영화 프로듀서이자 셰프로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 비자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도 독일로 이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럽연합의 소비재 및 서비스 물가 지표를 보면, 28개 회원국 중 독일의 물가 수준은 11위로 평균을 기록했다. 물가가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이며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핀란드,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순으로 나타났다. 이어 벨기에, 프랑스, 오스트리아도 독일보다 물가가 높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물가는 독일보다 약간 낮았고 유럽연합 회원국 중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의 물가가 가장 낮았다.(출처: de.statista.com)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연재는 이주가 단순히 국경을 넘어본 경험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은 짧은 여행이거나 단기간 어학연수이기도 했고,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거나 유학을 떠난 경우이기도 했다. 여러 인터뷰이가 독일에 도착하기 전에 여행이나 자원봉사활동 등을 목적으로 네팔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과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로 이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내에서도 처음 도착했거나 공부했던 도시를 떠나서 일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대도시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한국 여성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체류 기간 90일을 초과하는 ‘국제이동 출국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한국인 국제이동 출국자는 총 29만7천 명이었으며, 성별 차이는 거의 없었다.(출처 : 통계청, 2018년 국제인구이동 통계) 연령대로 보면 20대(11만5천 명)가 가장 많았고, 30대(4만9천 명), 40대 및 10대(3만3천 명) 순으로 나타났다.
연재를 통해 이어진 각각의 인터뷰는 독일에서 이주자로 사는 한국 여성의 경험을 길게 기록했고, 그만큼 저마다 독일에 도착한 이유는 다양했다. 개인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또는 한국과 달리 기술자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접하기 위해 떠나온 이유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위해 떠나온 이들도 많았다. 이들은 고위직 여성을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조직 문화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 여성이 드문 업계의 온갖 차별로 인해 미래를 그릴 수 없어서 독일에 도착했다. 그저 한국이 싫어 도망치듯 떠났거나, 단순히 행복해지기 위해 새로운 땅에 도착한 여성도 있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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