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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성인이니까 더 배울 게 없다고?

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의무교육 현장 이야기


몇 년 전 마을 분들로부터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페미니즘이나 젠더를 주제로 주민 대상 강의를 기획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곳에 처음 시도되는 것이라 반갑고 고마운 기회였다.


“성인 대상 성교육을 해보면 어떨까요?”

“성교육? 에이, 다 커서 무슨….”


약간 민망해하며 웃어넘기는 상대의 반응이 의외였고, 의아했다. 이 마을에서 활동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40~50대 중장년 세대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성교육을 제안하자 마치 “이미 알 것 다 안다”, “이제와 배울 게 뭐가 있냐”는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며 ‘성’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이해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대화가 있고 1년 후 필자가 활동하는 단체를 통해 마을 성인 주민 대상 성교육과 남성 대상 성교육을 진행했다.)


2017년 문화기획달에서 주최한 농촌 여성과 섹슈얼리티 주제 특강. 강연 제목에 ‘섹스’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화제(?)가 되었다.


성교육은 성관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에 통달(?)하는 것도 아니다. 성교육은 몸과 성을 넘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며 그것은 평생에 걸쳐 꾸준히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성에 대한 지식과 문화는 자신의 감각과 욕망,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영어 공부보다 성/젠더 교육이 훨씬 실용학문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궁금하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며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놓지 않고 취미로 전문 분야를 섭렵하는 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왜 ‘성’에 대해서는 더 배울 게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지, 그리고 다 안다며 강의 시작부터 팔짱을 끼는지 말이다.


성교육에 대한 거부감, 그 밑에 깔려있는 생각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지만 의무교육 현장에 갈 땐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나선다. 교육을 환영하거나 반기지 않는 집단을 반복적으로 체험해서다. 나는 주로 학교와 공공기관 등 매년 성인지 교육이나 (젠더기반) 폭력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기관에 방문하는데, 어딜 가도 시작 전부터 공통적인 불만의 목소리-“시간 아깝다”, “뻔하다”, “매년 똑같다” 등-가 들려오곤 한다. 그중 청소년과 성인을 불문하고 가장 많은 ‘주장’은 “배울 게 없다”는 것이다.


잠깐, 내가 정확히 들은 게 맞나? 혹시, “배우고 싶지 않다”를 잘못 들은 거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어떤 조직에 ‘공’적으로 속하면서 개인이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면서 살 수 있나? 전국에 집계된 스쿨미투가 일어난 학교가 100여 개, 공직사회의 연쇄적인 성비위 사건들 속에서 “배울 게 없다”는 증거는 어떻게 확인할까?


특히 교사와 공무원들은 “연수가 너무 많다”고 호소하기도 한다.(그게 강사에게 호소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교육을 받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흡연예방교육, 자살예방교육, 안전교육 등 다른 의무교육에서도 젠더교육 현장에서만큼 날 서고 불편한 반응을 그대로 드러내는지 모르겠다. 이 교육에 특별히 더 첨가된 거부감과 저항감의 밑바닥에는 “성평등과 성폭력은 나에게 중요한 의제가 아니”라는 낮은 젠더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성폭력은 ‘나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성폭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서로 다른 답을 하고, 이것이 성‘폭력’이냐는 물음에 자꾸 ‘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배움’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빈칸을 채우고 오답을 고치려는 자세가 공부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나는 다 알고 있고, 더구나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라 확언하는 사람들에겐 아무리 날고 기는 강사를 데려와도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올해 문화기획달에서 진행 중인 성교육 책읽기 모임 ‘어쩌다 성인’. 


‘시간 때우기’ 교육환경에 탈법 행정까지


학교나 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 대부분은 집합강의 형태로 이뤄진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한 시간 가까이 강사의 일방적인 ‘말’을 듣는 것 외에는 다른 수업 방법으로 진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히, 집중도와 참여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문제집이나 이어폰을 가져오기도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 자율학습이나 쉬는 시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대놓고 잠을 자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주로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 사실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시작할 때와 마칠 때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 출석부에 서명만 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실정이니 강사가 너무 열심히 준비하거나 성실하게 임하면 주최 측에서 당황할 때도 있다. 강의를 의뢰할 때부터 심지어 현장에서 강의 시작 직전에, 배정된 시간보다 빨리 마쳐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를테면 두 시간짜리 교육을 한 시간만 진행해달라며 강사비는 두 시간에 준해 지급한다고, 마치 상부상조(?)인 것처럼 제안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내용을 다 전달할 수 없어 교육을 하나 마나고 나도 거짓 보고를 할 수 없다며 여러 번 거절했는데 이게 ‘관행’이라고들 한다. 학교와 기관에서 이 교육을 ‘시간 때우기’로 여기는 분위기가 농후하다면 거기에 소속된 학생이나 직원들이 이 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까?  (기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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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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