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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원룸으로, 거실이 있는 투룸에서 공동체로
<주거의 재구성> 공덕동하우스 이야기(1)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얼마 전 라디오 광고 카피를 쓰고 녹음했다. ‘결혼’을 경유하지 않고도 만드는 다양하고 평등한 공동체에 대해 국민(사실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광고였다. 내 소개로 “비혼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넣고 싶었는데, 그 안은 ‘대중적 말하기 전략’에 맞지 않다며 반려됐다. 대신 ‘비혼’이라도 살리는 방안을 찾자며 제안 받은 게,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소개할 때 흔히 그렇게 하듯 소속 단체 이름, 직함, 이름 순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비혼지향 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라고 말이다.
사실은, 이 호칭으론 명함 한 장 없다. 삼 년째 내가 쓰는 명함엔 작가, 기획자라고 적혀 있다. 나를 더 잘 소개하고 싶어서 뒤편에 ‘관심사’란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로 ‘시민결합’을 적어 두긴 했다. 그렇지만 혹시나 단체+직위 네이밍이 없으면 구색을 맞추기 힘든 곳에서 부를 때에 쓰려고 구성원들의 인준을 받아 직함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었다.
공간이 생기니,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비혼 생활공동체 대표라니, 그래서 하는 일이 뭐지?
가끔 어딘가에서 이 직함으로 나를 소개 할라치면, 이런 상상이 될 때도 있다. 배경은 18세기경 유럽, 오스트리아 정도서 열린 음악회에 잘 차려 입은 귀족들 틈에 끼어서, 나는 원래는 길거리 고양이 같은 것인데 같이 가발을 뒤집어 쓰고 근엄한 표정을 하는 상상에 근질근질하고 웃음이 날 것 같다.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대안가족인가? 활동단체인가? 가족의 대표라고 한다면, 나는 가장인가? 세대주인가? 생계부양자인가? 만약 공덕동하우스가 활동단체라면, 나는 활동하는 사람들이랑 24시간 같이 살고 노는 사람인가? 즉, 내 삶의 전부가 곧 활동인가?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어서 그래도 괜찮나? 활동은 무엇인가? 세미나? 캠페인? 인터뷰? 저술과 강연? 각종 정책 자문에 참여하는 것? 점거 같은 걸 해야 하나? 그런데 어디를 점거하지?
비혼 생활이 활동 의제니까 먹고 자고 노는 모든 게 활동인가? 활동가는 무엇인가? 활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 활동으로 총 수입의 몇 프로나 벌면 되나? 잠 자고 밥 먹는 것도 ‘생활공동체 활동’이라면 내 활동은 시급 얼마짜린가?
내 앞에 앉아 내 말을 듣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나의 의문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아무도 대놓고 안 물어 봤다. 물어 봐야 ‘혹시 상근하시냐’ 하는 정도(답은 “그럴 리가요”). 공동체로 사는 사람의 주거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무엇으로서 이 글을 쓰는가?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그 카피에서, 나는 “비혼지향 생활공동체로 살고 있는” 정도의 소개를 쓰기로 했다. 비혼을 의제로 운동한다는 것, 나의 지향과 삶의 방식을 일치시키려 하며 살아간단 것은 곧 이런 미주알고주알 같은 지점들을 매 순간 고민해 나가는 과정이다.
평균의 기대, 주어진 설명틀 밖에서 매번 확신 없이 자기 소개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누구나 기대하는 그 방식으로 가족 안에서 나를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입니다. 며느리입니다.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치적인 것으로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경유하지 않고 친밀과 돌봄을 실천해 보겠다는 시도는 사회적으로 이렇게까지 야심 찬 것으로 읽힌다(최근엔 수박 먹고 드러누워서 문득 ‘이건 지나친 관심 아닌가?’ 생각했다). 한겨레, EBS, 여성조선(무려!)∙∙∙.우리를 궁금해 하며 구경하고 싶어 했던 언론만 해도 수십 군데다.
지금 내가 사는 공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달력과 프라하 여행 기념 그림이 붙어 있는 냉장고. ⓒ홍혜은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 비혼공동체는 판을 까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으로 기획되어 시작된 일종의 프로젝트 성격도 있지만, 흔히들 상상하고 질문해 오는 것처럼 0에서 출발해 비혼이라는 깃발을 걸고 사람을 모집하고, 건물을 구하고, 같이 살 사람과 살지 않을 사람을 정하는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의 공동체는 당시의 나를 둘러 싼 한계, 역사, 익숙했던 것들의 차용, 그때의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은 좋은 것을 주변과 사회와 나누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 위에 만들어졌고, 만들어져 가고 있다.
해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의 주거권에 대해 쓴다고 해서 내가 곧 정치적 비혼주의자 모두에게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근사한 정답을 제시하고, 제도적으로 결혼의 위기를 처리할 완벽한 제안을 해내는 것이라 여겨지며 읽히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혼인 혈연을 경유하지 않고도 함께 사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사는 건 페미니즘적 관계 맺기, 평등, 소통, 돌봄, 친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도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1인으로서 이 글을 쓴다. 공동체적 실천 과정 안에서 겪어야 했던 나의 곤란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공간을 둘러싼 제도와 정책의 구멍에 관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기사가 계속됩니다)
■이어진 전체 기사 전체보기: 누구나 ‘나만의 공동체’를 탐색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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