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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교육일기] "동화를 다시 써봐요"
지혜, 상빈이와 기존 동화를 패러디하는 공부를 했다. 우리는 1단계에서 <종이봉지 공주>를 가지고, 소위 고전이라 일컫는 동화의 문제점들을 찾아보는 공부를 한다. 이어서 2단계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거나, 꼭 문제가 있지 않아도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부분을 중심으로 재미있게 동화를 다시 써보게 하고 있다.
다시 태어난 백설공주
이 공부는 아이들을 좀더 의미 있는 생각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문학적 감수성을 길러 주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텍스트로 <백설공주>를 꼽았다.
우선 백설공주 이야기 중에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지혜는 ‘백설공주가 왕비에게 계속 속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또 상빈이는 ‘왕비가 백설공주와 사이 좋게 지내지 않고 자꾸 죽이려고 한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마음에 안 든다고 발표한, 바로 그 점에 주목하면서 백설공주 이야기를 다시 써 보았다. 상빈이는 백설공주의 이름을 백설이라고 짓고, 이야기를 이렇게 고쳤다.
<왕비는 백설의 미모가 탐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백설을 불렀다. 그녀는 백설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녀의 미용법을 물었다. 그렇게 미용법을 전수받은 왕비는 백설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인으로 거듭났다.>
너무 짧은 것이 좀 안타까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다. 한편, 지혜는 제목까지 고쳐가며 흥미를 보였다.
<제목: 대단한 백설공주
왕비는 백설공주를 찾아갔다.
“아가씨, 이 빗으로 머리를 빗어 봐요!”
이때 백설공주는 깊은 숲 속을 다니는 방물장수를 이상하게 생각해서 마구 헝크러진 마녀의 머리카락을 보며,
“그 빗은 딱 봐도 품질이 좋지 않군요.”
라고 말한 후 집으로 들어왔다.
왕비는 다시 백설공주를 찾아갔다.
“아가씨, 이 허리띠 좀 매어 봐요.”
하지만 백설공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숲 속에서 돈이 들면서까지 멋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허리띠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 허리띠를 매면 사고 싶어질까 봐 매지도 않았다.
결국, 왕비는 아무리 노력해도 속지 않아, 백설공주를 죽이는 것을 포기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들
이제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고른 동화를 고쳐볼 것이다. 역시 이를 위해서도 우선 동화를 고르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발표한다.
지혜는 <백조왕자>를 골랐다. ‘열한 명이나 되는 왕자들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어린 동생을 고생시킨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다음과 같이 고쳤다.
<옛날에 열한 명의 왕자와 엘리제라는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중략) 그리고 왕자들에게 나쁜 요술을 걸어서 모두 백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왕자들은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어서 대책을 세웠습니다.
며칠 후, 왕비 방 창문이 열린 해질녘을 틈타 왕자들은 왕비의 창문을 통해 왕비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첫째 왕자는 마녀의 요술봉을 빼앗아 마녀가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왕자들은 마녀에게 당장 왕에게 가서 전에 했던 말은 거짓말이라고 하며 용서를 빌게 한 후, 요술봉으로 다시 왕자들이 사람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자는 왕비를 쥐로 만든 후, 고양이를 풀어놓아 다시 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복수하였습니다.>
상빈이는 <헨젤과 그레텔>을 골랐다. 그는 ‘아이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너무 잔인하다’며, ‘그레텔이 마녀를 아궁이에 밀어 죽이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상빈이는 앞서 <백설공주>에서 지혜가 제목까지 다시 쓴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헨젤과 그레텔의 제목을 고쳐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었다.
<제목: 마녀의 보답
마음씨 나쁜 새엄마 때문에 길을 잃은 아이들은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집 한 채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 집은 과자로 된 집이었어요. 그 집엔 마녀가 살고 있었고요.
헨젤과 그레텔은 노크를 하고 집 안을 보았어요. 그때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났어요. 헨젤과 그레텔이 얼른 뛰어 들어가보자, 마녀가 끙끙 앓고 있었어요. 그레텔이 구급상자를 꺼내고 헨젤은 마녀에게 증상을 묻고 약을 먹였어요.
잠시 후, 마녀가 낫자, 마녀는 감사를 표하고 보답을 하겠다고 했어요. 무슨 보답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녀가 말했어요. “내가 마법을 가르쳐 줄까?”라고 말이에요.
아이들은 당연히 좋다고 했지요. 한동안 과자 집에 머물며 마법사가 된 아이들은 마법으로 집을 찾아갔어요. 새엄마도 그동안 잘못을 뉘우쳐 아이들을 받아줬어요. 아이들은 마법으로 보석을 만들어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리고 마녀는요, 가끔 심심할 때면 아이들과 비밀장소로 모여 자신이 구운 과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아이들이 지은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들의 욕망과 당돌함이, 재기 발랄함과 유머가 뒤섞여 기존 이야기보다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교육일기 다른 글보기]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요 | 아이들과 "월든"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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