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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안의 집’을 방문했던 날 
 
내가 안산에 있는 ‘코시안의 집’(외국인 이주노동자 가정과 자녀들을 지원하는 단체)을 방문했던 날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미루다간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얼마 전부터는 마음이 내내 쫓기고 있었다.

몽골 전통놀이인 샤가이를 해 보는 아이들 "출처-코시안의 집"


프랑스에서 우파집권 후 겪은 차별의 경험

2003년, 박사 논문 마무리 단계에서 5년 반의 유학생활을 접고 돌연 귀국을 결심한 것은 매우 즉흥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차별을 참을 수 없었고, 참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한 순간이라도 모욕을 당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프랑스에서 지낸 바로 그 기간은 우파 집권기였지만 사회당 수상을 중심으로 내각이 구성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소수자들에게 좀더 유리한 정치를 벌일 거라는 세간의 말대로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시절 내내 진보적인 복지정책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대통령 및 다수 국회위원들이 우파로 바뀌면서 상황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외국인 관련 정책이었다. 내가 살았던 북부지역에서는, 각 시마다 존재했던 외국인들의 체류증 신청 기관을 모두 폐쇄했고, 그 지역 중심지 한 곳에만 신청기관을 남겨 두었다. 우리로 치면 도청소재지쯤 될까? 이제 그 도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외국인들은 그곳에 와서 체류증을 신청해야 했다.

이전에도 꼬박 2-3시간은 기다려야 체류증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리면서 새벽부터 줄을 서서 하루 온종일 기다려도 신청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다 급기야는 전 날 밤부터 건물 밖에서 줄을 서 기다려야 겨우 다음날 신청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신청된 체류증을 찾으러 올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밀리면서 발급도 제 날짜를 맞추지 못해 또 다시 밤샘 줄서기를 해야 하는 등, 상황은 점점 나빠만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늦가을, 코트를 입고 체류증을 신청하기 위해 바람 찬 거리에서 밤새워 줄을 섰다가 체류증 신청도 못하고 되돌아온 그 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집 주인에게 방을 빼겠다는 통보였다. 돌아갈 거라고, 이런 땅에서는 조금도 살 수 없다고. 나는 교수님들께도 돌아갈 거라고 편지를 썼고 짐을 꾸렸다. 짐을 꾸리면서 난 간디를 생각했다.

간디가 외국인 차별에 반대해 체류증을 태우며 시위를 벌였던 그 시절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그와 똑같은 차별 앞에서 나는 화가 났고, 무엇보다 무력하기만 한 나를 보면서 짐을 싸는 내내 엉엉 울었다. 내가 먼저 신청한 한 기숙사 방을 다른 백인여성에게 빼앗겼을 때도 이렇게 울지는 않았었는데…

이주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비인간적 대우

그리고 아주 홀가분한 기분으로 비행기를 탔다. 간디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 것도 내 선택이었고, 그러고도 가볍게 되돌아온 것도 내 선택이었다. 나는 이런 내 선택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우리 나라 이주 노동자들 역시 길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체류증을 신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프랑스보다 더욱 심하게 쫓기고 내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 대한 우리 정부, 또 우리들 개개인의 태도는 내가 경험하고 본 어느 곳보다도 더 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그렇게 차츰 잊어가고 있던 외국인으로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내가 외국인이었던 것을, 그 때 내가 경험했던 차별과 모욕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아니 결코 잊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나는 이주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져 1년이 훌쩍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도 또 몇 달을 그냥 보내버리고 나서 ‘어쩜 이 일을 다시는 하지 못하겠구나’하는 불안으로 괴로워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코시안의 집’을 방문해,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내 교육연구 프로그램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때 프랑스에 두고 온 이들한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조금씩 부끄러움을 되살리면서 그들을 만났다. 윤하/ 일다 www.ildaro.com  [기고] 우리 민족이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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