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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물- 반딧불이를 보셨나요?
“며칠 전 작업장 근처에서 반딧불이를 봤어요. 여기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녀석이라 얼마나 반갑던지. 깜박깜박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꼭 제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생략)”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인터넷 상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한 목공예가가 안부게시판에 남긴 이 글 때문이었다.
세상을 향한 큰 창을 가슴에 만들어주신 아버지
아주 어렸던 시절 어느 날,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빨리 불을 끄라고 재촉하셨다. 어안이 벙벙해진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을 껐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언가 깜박이며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딧불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곤충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 본 게 내가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반딧불이었다.
반딧불이 말고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연의 신비한 것들을 보여주려 애를 쓰셨던 것 같다. 어느 해는 화단 한 켠에 땅콩 두 포기를 심어 땅콩이 열리는 걸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고, 또 한번은 뜰 안에 당근 몇 포기를 심어 어떻게 당근이 자라는지도 보여주셨다.
당근이 자라자 두더지가 나타나 손가락만한 당근을 죄다 갉아먹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근이 갉아 먹힌 것보다, 조심성 많아 쉬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두더지를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걸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용설란이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선인장을 하나 구해 오셔서 화분에 심으며, 옆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이건 용설란이란다’ 하셨다. 그리고는 말씀을 이으셨다.
“이 선인장은 80살이 되어야 꽃을 피운다고 한단다. 꼭 한 번 꽃을 피우고는 죽는다지. 나는 못 보겠지만, 너희들은 볼 수 있겠구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은 가슴을 아리게 훑고 지나가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곧 잊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때는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먼 세월 뒤의 일이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그 용설란도 죽어, 우리도 용설란 꽃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난 그 꽃을 못 보게 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삼십 대 중반이 지나, 프랑스 니스를 여행할 때였다. 그곳은 둑이며 언덕이며, 곳곳에 용설란이 정말 대단했다. 늘 화분에 심겨져 있던 것만 보다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야생 상태의, 몸집까지 대단한 용설란들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용설란 틈에, 끝에 무언가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을 이고 있는 듯한 긴 장대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 간혹 눈에 띄었다. ‘저렇게 괴기스러운 것이 도대체 무얼까?’
바로, 용설란 꽃이었다!
늘 꽃이라면 알록달록 화려하고 눈부신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내게, 용설란 꽃은 나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꽃대가 나와 있는 것들의 줄기는 석회 빛으로 변해 있거나, 이미 다 삭아 흙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비장하고 자못 처절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기억나지 않았던 그 먼 시절, 용설란을 화분에 심으시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곳곳의 가게를 뒤져 용설란 꽃이 나와 있는 엽서를 구해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사진으로나마 아버지께 용설란 꽃을 보여드리게 되어, 정말 기뻤다. 물론, 아버지는 그걸 오랫동안 머리맡에 가까이 놓고 감상하시며 즐거워하셨다고 했다.
돈으로는 해줄 수 없는 귀한 것
나이가 들수록 새삼스레 기억 저편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폭발하듯 선명한 기억으로 부상하곤 한다. 그리고 옛날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노라며 손을 내밀면, 아버지는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셔서 더 행복하다.
며칠 전 이웃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부모들도 돈을 많이 들여 아이를 키워야만 잘 키웠다고, 해준 게 많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귀한 것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돈으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아니, 돈으로는 절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해, ‘그게 뭐야?’ 하고 어린아이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가 세상을 향한 큰 창을 가슴에 만들어주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버지가 보여주신 건, 그래서 반딧불이만은 아니었다. 깜박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반딧불이들은 아버지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답고 큰 우주였다.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교육일기] ‘서른 살 아이’가 받은 선물 | ‘미래의 집’에 사는 아이들 | 꿈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전 작업장 근처에서 반딧불이를 봤어요. 여기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녀석이라 얼마나 반갑던지. 깜박깜박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꼭 제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생략)”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인터넷 상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한 목공예가가 안부게시판에 남긴 이 글 때문이었다.
세상을 향한 큰 창을 가슴에 만들어주신 아버지
아주 어렸던 시절 어느 날,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빨리 불을 끄라고 재촉하셨다. 어안이 벙벙해진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을 껐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언가 깜박이며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딧불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곤충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 본 게 내가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반딧불이었다.
반딧불이 말고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연의 신비한 것들을 보여주려 애를 쓰셨던 것 같다. 어느 해는 화단 한 켠에 땅콩 두 포기를 심어 땅콩이 열리는 걸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고, 또 한번은 뜰 안에 당근 몇 포기를 심어 어떻게 당근이 자라는지도 보여주셨다.
당근이 자라자 두더지가 나타나 손가락만한 당근을 죄다 갉아먹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근이 갉아 먹힌 것보다, 조심성 많아 쉬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두더지를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걸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용설란이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선인장을 하나 구해 오셔서 화분에 심으며, 옆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이건 용설란이란다’ 하셨다. 그리고는 말씀을 이으셨다.
“이 선인장은 80살이 되어야 꽃을 피운다고 한단다. 꼭 한 번 꽃을 피우고는 죽는다지. 나는 못 보겠지만, 너희들은 볼 수 있겠구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은 가슴을 아리게 훑고 지나가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곧 잊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때는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먼 세월 뒤의 일이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그 용설란도 죽어, 우리도 용설란 꽃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난 그 꽃을 못 보게 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삼십 대 중반이 지나, 프랑스 니스를 여행할 때였다. 그곳은 둑이며 언덕이며, 곳곳에 용설란이 정말 대단했다. 늘 화분에 심겨져 있던 것만 보다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야생 상태의, 몸집까지 대단한 용설란들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용설란 틈에, 끝에 무언가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을 이고 있는 듯한 긴 장대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 간혹 눈에 띄었다. ‘저렇게 괴기스러운 것이 도대체 무얼까?’
바로, 용설란 꽃이었다!
늘 꽃이라면 알록달록 화려하고 눈부신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내게, 용설란 꽃은 나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꽃대가 나와 있는 것들의 줄기는 석회 빛으로 변해 있거나, 이미 다 삭아 흙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비장하고 자못 처절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기억나지 않았던 그 먼 시절, 용설란을 화분에 심으시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곳곳의 가게를 뒤져 용설란 꽃이 나와 있는 엽서를 구해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사진으로나마 아버지께 용설란 꽃을 보여드리게 되어, 정말 기뻤다. 물론, 아버지는 그걸 오랫동안 머리맡에 가까이 놓고 감상하시며 즐거워하셨다고 했다.
돈으로는 해줄 수 없는 귀한 것
나이가 들수록 새삼스레 기억 저편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폭발하듯 선명한 기억으로 부상하곤 한다. 그리고 옛날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마음을 기억하고 있노라며 손을 내밀면, 아버지는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셔서 더 행복하다.
며칠 전 이웃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부모들도 돈을 많이 들여 아이를 키워야만 잘 키웠다고, 해준 게 많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귀한 것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돈으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아니, 돈으로는 절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해, ‘그게 뭐야?’ 하고 어린아이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가 세상을 향한 큰 창을 가슴에 만들어주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버지가 보여주신 건, 그래서 반딧불이만은 아니었다. 깜박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반딧불이들은 아버지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답고 큰 우주였다.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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