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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
올케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난 주로 집안일과 관련해서도 남동생과 의논하고, 올케와 격 없이 지내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전화가 무척 반가웠다. 그녀는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겪게 된 여러 가지 교육적인 문제들 앞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가 책 읽는 걸 부담스러워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묻기도 하고, 또 100점을 받았다고 한 번 과자를 사주었더니, 그 다음 또 100점을 받았을 때 “왜 100점 맞았는데 과자를 안 사줘?”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올케는 이런 저런 사건을 거론하며,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어했다.
이런 여러 가지 질문에 나름대로 내 입장을 이야기해 주었다. 올케도 마침 ‘이건 아닌데….’하며 마음 불편하던 차에, 내 생각을 듣고는 좀더 자신감을 갖는 듯했다.
원한다고 다할 수 있는 건 아냐!
그러다 또 올케가 화제를 바꾼다.
“아이가 얼마나 공부 욕심이 많은지, 학원도 자기가 다니겠다고 해서 보냈어요! 힘들면 안 다녀도 된다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열심히 다니겠다고 하네요. 또 자기가 안 배우는 걸 배우는 친구를 보면 ‘엄마, 나는 왜 저거 안 배워요?’ 해요.”
“그럼, 올케는 뭐라고 하는데?”
“지금 배우는 걸 충분히 익히면 가르쳐 줄게. 한꺼번에 많이 배우면 잘 배울 수가 없어, 라고 설득하죠.”
“그럼, 아이가 한꺼번에 배워도 모두 충분히 잘하면, 올케는 모두 시켜줄 수 있어?”
“그건, 아니죠!”
“그게 문제라니까! 부모들은 그들의 경제적 형편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면서, 마치 아이가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시키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다 가르쳐 줄 수 없잖아! 아이에게 ‘우리 형편에서 너는 X가지를 배울 수 있어. 네가 다른 걸 배우길 원한다면, 이것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걸 끊고 새로운 걸 배우도록 해라.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다’ 라고 말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올케는 한껏 진지해져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기 죽이지 않는다면서, 마치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맞아요! 맞아!”
올케가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그녀의 이런 반응에 나는 한껏 고조되어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고 교육적이지도 않은 것 같아. 아이에게 세상에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기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끝없이 욕망하는 자기중심적인 아이들
누구나 자기 형편껏 아이들 교육에 돈을 쓴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인식은 심어주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대책도 미뤄놓고 아이들 사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치 아이가 원하면 뭐든지 다해줄 것같이 말한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해주는 걸 고마워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돈이 든다는 건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치 자기가 원하면 다해주는 게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한다.
실제로 이웃의 한 대학생은 부모가 적금까지 깨가며 수백 만원 들여 방학 동안 해외연수를 보내주었더니, 돌아와서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더란다. 요즘 그 학생은 유학을 보내줄 수도, 명품 옷도 사줄 수 없는 자기 부모의 무능을 탓하며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뭐든지 다 해줄 것 같은 이런 부모의 태도가, 결국 부모가 자기를 위해 돈을 쓰는 걸 미안해하지도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욕망하는 아이를 만드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마치 모래 위에 쌓은 누각과 같다. 그들이 좀더 커 ‘원한다고 해서 다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너나 없이 상대적 박탈감과 자기 현실에 대한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왔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욕망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연습이 될 것이다. 또 우리 부모님은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여기까지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무능함에 실망하지 않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키우지 않았을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모의 무능에 정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정으로 부모님께 감사해하는 것 같다. 우리가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는 바로 그 마음처럼 말이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일다] www.ildaro.com [다른 글보기] 우리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것!
올케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난 주로 집안일과 관련해서도 남동생과 의논하고, 올케와 격 없이 지내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전화가 무척 반가웠다. 그녀는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겪게 된 여러 가지 교육적인 문제들 앞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가 책 읽는 걸 부담스러워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묻기도 하고, 또 100점을 받았다고 한 번 과자를 사주었더니, 그 다음 또 100점을 받았을 때 “왜 100점 맞았는데 과자를 안 사줘?”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올케는 이런 저런 사건을 거론하며,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어했다.
이런 여러 가지 질문에 나름대로 내 입장을 이야기해 주었다. 올케도 마침 ‘이건 아닌데….’하며 마음 불편하던 차에, 내 생각을 듣고는 좀더 자신감을 갖는 듯했다.
원한다고 다할 수 있는 건 아냐!
그러다 또 올케가 화제를 바꾼다.
“아이가 얼마나 공부 욕심이 많은지, 학원도 자기가 다니겠다고 해서 보냈어요! 힘들면 안 다녀도 된다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열심히 다니겠다고 하네요. 또 자기가 안 배우는 걸 배우는 친구를 보면 ‘엄마, 나는 왜 저거 안 배워요?’ 해요.”
“그럼, 올케는 뭐라고 하는데?”
“지금 배우는 걸 충분히 익히면 가르쳐 줄게. 한꺼번에 많이 배우면 잘 배울 수가 없어, 라고 설득하죠.”
“그럼, 아이가 한꺼번에 배워도 모두 충분히 잘하면, 올케는 모두 시켜줄 수 있어?”
“그건, 아니죠!”
“그게 문제라니까! 부모들은 그들의 경제적 형편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면서, 마치 아이가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시키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다 가르쳐 줄 수 없잖아! 아이에게 ‘우리 형편에서 너는 X가지를 배울 수 있어. 네가 다른 걸 배우길 원한다면, 이것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걸 끊고 새로운 걸 배우도록 해라.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다’ 라고 말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올케는 한껏 진지해져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기 죽이지 않는다면서, 마치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맞아요! 맞아!”
올케가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그녀의 이런 반응에 나는 한껏 고조되어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고 교육적이지도 않은 것 같아. 아이에게 세상에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기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끝없이 욕망하는 자기중심적인 아이들
누구나 자기 형편껏 아이들 교육에 돈을 쓴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인식은 심어주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대책도 미뤄놓고 아이들 사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치 아이가 원하면 뭐든지 다해줄 것같이 말한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해주는 걸 고마워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돈이 든다는 건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치 자기가 원하면 다해주는 게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한다.
실제로 이웃의 한 대학생은 부모가 적금까지 깨가며 수백 만원 들여 방학 동안 해외연수를 보내주었더니, 돌아와서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더란다. 요즘 그 학생은 유학을 보내줄 수도, 명품 옷도 사줄 수 없는 자기 부모의 무능을 탓하며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뭐든지 다 해줄 것 같은 이런 부모의 태도가, 결국 부모가 자기를 위해 돈을 쓰는 걸 미안해하지도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욕망하는 아이를 만드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마치 모래 위에 쌓은 누각과 같다. 그들이 좀더 커 ‘원한다고 해서 다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너나 없이 상대적 박탈감과 자기 현실에 대한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왔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욕망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연습이 될 것이다. 또 우리 부모님은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여기까지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무능함에 실망하지 않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키우지 않았을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모의 무능에 정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정으로 부모님께 감사해하는 것 같다. 우리가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는 바로 그 마음처럼 말이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일다] www.ildaro.com [다른 글보기] 우리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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