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후쿠시마 이후 ‘엄마들의 혁명’ 편집장 와다 히데코 인터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4년 반이 지났다. 당시부터 방사능 문제와 피폭에 관해 사회적 발언을 계속해온 와다 히데코 씨(1971년 효고현 출생)를 만났다. ▶ 편집장 와다 히데코 ⓒ 오치아이 유리코 “3.11로 인해 제 가치관이 뿌리부터 뒤집혔죠.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싸움에 대해서 그때까지 몰랐었다는 사실이 너무 죄송했습니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원전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혼란스럽게 오갔다. 하지만 ‘당장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아이들의 건강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복구’를 추진했다. 돌아가는 모든 일들이 이상했다. 그러나 가장 이상했던 것은,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점이었다. 주간..
평화와 핵은 양립할 수 없다 집단학살과 전쟁이 야기하는 죽음을 보며④ 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폭심지에는 상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생자의 다리만이 두 개, 꽉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 서 있다.” -, 오에 겐자부로 (고려원, 1995)에서 재인용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의 B-29 폭격기는 우라늄 235로 만든 핵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일본 히로시마 시에 떨어뜨렸다. “피카동(pika-don, 번쩍-쾅)!” 핵폭탄이 터지면서 밝은 빛을 쏟아냈고, 폭심지 근처의 온도는 3,4천도를 넘어 뜨거운 열이 모든 것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