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 남성성의 본질이 아니다 읽기 관계에서 상처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는 타인을 만날 수 없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고, 또 내 공간으로의 침입을 용인해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공간이라는 말은 추상적이기도, 심리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물리 법칙만큼 실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은 관계 맺음에 있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근거여야 한다. 즉, 내가 다가가고자 하는 ‘그/녀’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 없이, ‘그/녀’의 기꺼운 환대 없이 다가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침범이다. 그러니 ‘너는 왜 나를 받아주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최소한 ‘어떻게 하면 나를 받아주겠니’는 그나마 낫다. 그..
“너, 아이는 낳을 수 있겠니?” 장애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말하다 몇 년 전, 사귀고 있던 사람이 불쑥 물었다. “너, 애는 낳을 수 있겠냐? 네 몸으로 애를 낳으려면 뭔가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거 아냐?” 황당한 표정으로 멀뚱히 바라보니, 그 사람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자신은 장남이라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애를 낳을 수 없는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으니 미리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당시 그 사람과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결혼은 꿈에도 생각을 안 하고 있던 시기라,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결국 그와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이를 (정상적으로) 낳을 수 있냐’ 라는 것을 진지하게 연애의 전제 조건으로 보는 그 사람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