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함이 ‘여성적’ 특질이라고? 몸이 아프다는 것과 성별 관념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몸이 아프다고 말하기가 싫은 이유 “아니, 괜찮아.” 몸이 아프던 초기에 사람들이 종종 물었다. 많이 아픈지,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그럴 때마다 나는 저렇게 답변했다. 물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지 물을 때도 대부분 ‘문제없다,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 문제가 없는지, 할 수 있는지, 나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파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왠지 싫었다. 나는 아프다고 말하는 걸 무척 조심스러워하고,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아픈 와중에도 타인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 성별화된 돌봄 노동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아픈 와중에도 타인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 “학원 끝나면, 밥 꼭 챙겨 먹고 숙제 미루지 마”“여보, 넥타이랑 와이셔츠는 순서대로 걸어놨어. 아침에 녹즙 먹는 거 잊지 마”입원실 옆 침대 위 그녀는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아이에 이어서 남편, 그리고 아이 학원 선생에게로 계속 이어지는 통화들. 휴대폰은 쉴 틈이 없었고, 그녀도 쉴 틈이 없었다. 그녀는 유방암 초기 환자였고, 다음 날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통화가 시끄러워 미안했다며, 여자들은 아프면 더 바빠진다고 했다. 그리고 초기 유방암 수술은 가벼운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