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내 생에 충분한 두 가지 가르침 붉고 노란 잎들의 향연이 아랫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11월 초 어느 날. 나는 K와 함께 뱀사골을 찾았다. 며칠 전 뱀사골 인근 마을에서 단풍 축제가 열렸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산은 온갖 색깔로 염색한 천을 휘감은 채 우리를 맞았다. 하염없이 눈부신 그 자태 앞에서, 그런데 나는 왜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꼈던 것일까. 품은 넉넉하고 속정은 깊을지언정 겉으로는 무뚝뚝하기만 한 사람이, 갑자기 고운 옷을 입고 나타나 다정하게 팔짱을 끼는 것 같아서였을까. 18년 전, 내 등을 떠민 욕망 ▲ 뱀사골 길을 걸으며 지리산이 내게 준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자야 그러고 보면 내가 ..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여덟째 이야기 마을 진입로에 한들거리던 코스모스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흰 날개를 펄럭이며 논 위를 날던, 다리가 길고 가는 새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붉고 희게, 또 더러는 분홍으로 빛나던 꽃들의 자리는 추수하고 널어놓은 누런 나락들 차지가 된 지 오래고, 한동안 텅 비어 있던 논은 이제 시꺼먼 거름을 뒤집어쓰고는 양파 밭으로 변신하려 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이, 겨울이 이미 우리 동네 입구까지 와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내 등을 떠미는가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건 꼭 이 무렵이다. 슬슬 월동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인 건 둘째고, 그보다는 추위에 약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따뜻한 어디론가 달아날 궁리를 하는 마음을 지켜봐야 하는 탓이다. 이럴 땐 서점에 가도 꼭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