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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성희롱 문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간 성희롱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는 서울 소재 모 대학의 신입생환영회가 논란이 되었다. 지난달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이래도 되는 건가요?”라며 오른 글이 시작이었다.
 
성적 수치심 느끼게 하는 ‘게임’ 시킨 선배들
  
▲ 한 포털사이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게임'을 강요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문화를 고발한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글쓴이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성적으로 부담스럽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동들을 많이 시킨다"고 고발했다. 사진 속에는 남녀 신입생들이 몸을 밀착시키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취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게임’을 명목으로 강요된 것이었다. 글쓴이에 따르면, 술자리에서는 “정말 심한” 벌칙들도 많았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들은 ‘막장 OT'라는 이름이 붙어 여러 게시판들로 퍼져나갔고, 몇몇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관련 학교와 학생들에게 비난이 가해졌다. 이후 사건은 해당 학교 총학생회가 사과문을 게시하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은 인터넷 여론이 흔히 그렇듯 사건의 선정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관련 대학을 공격하거나 폄하하는 데에만 치중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논란의 열기는 금방 식었다.
 
이 사건이 문제인 것은 건전해야 할 대학 내 행사에서 선정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선배들의 권위를 내세워 신입생들에게 원하지 않는 성적인 행위를 강요했다는 점이 본질적인 문제다. 명백한 학내 성희롱이다.
 
‘하늘같은’ 선배 앞 작아지는 신입생들
 

이제 막 대학을 들어온 신입생과 ‘선배’들 사이에는 막강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대학생활에서 선배는 어떤 면에서 교수보다 더 어려운 존재다. 더구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이제 막 대학을 입학해 어리둥절하고 동기들과도 서먹할 때 치러지니 1학년들은 선배들 앞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다. 더구나 ‘전통’이라고 우기니 ‘참아야 되나’ 헷갈리기까지 할 것이다.
 
성희롱은 권력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남학생이 많은 과,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하게 잡혀 있는 과일 수록 신입생 환영회 때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게임’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시대가 변화한 부분이 있으니, 아마도 이러한 신입생 환영행사는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수준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주 극단적인 예만도 아닌 것 같다. 관련 게시물들의 누리꾼 댓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남성에게 구강성교를 해주는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는 남학생들이 찍힌, 모 체육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사진을 올린 이도 있었다.
 
대학사회, 성희롱 문제제기 여전히 어려워
 

이번 사건을 문제제기한 학생은 학내 게시판이 아닌, 포털사이트를 이용해 글을 올렸다. 이는 문제의 ‘게임’이 ‘전통’으로 굳어질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된다.
 
지난 해 1월, 소위 '명문대생‘이 1학년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사건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한 피해자가 익명게시판을 통해 문제제기 하자 다른 피해자들이 나타나면서 피해자는 20여명까지 불어났다.
 
왜 2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은 성추행을 당하고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여전히 성희롱‧성폭력은 대학 사회 내에서도 쉽게 공론화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명문대생‘ 성추행 사건이 문제가 되었던 당시, 취업전문 포털사이트 ‘커리어’가 이틀간 대학생 7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 응답자 중 33.3%가 대학생활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주된 가해자(복수응답)는 78.0%가 ‘선배’였다. 흔히 학내성희롱의 주된 가해자로 떠올리게 되는 ‘교수’를 지목한 대답은 33.3%였다. 대응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6.5%가 ‘그냥 참고 넘겼다’고 답했다. 대응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이유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66.9%)’가 가장 컸다.
 
이렇듯 학생과 학생 사이에 발생되는 성희롱은 학내 성희롱 문제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문제제기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간 성희롱의 경우 성희롱 관련법의 규제의 대상이 되는 반면, 학생 간에 벌어지는 성희롱문제는 제외되고 있다. 따라서 학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희롱을 ‘전통’으로 미화할 수 있는 대학사회에 이러한 미온적인 처치가 얼마나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51.3%만이 성희롱 문제해결을 위한 대학 내 전담기관이나 담당자가 있다고 답했다. 대학사회에서 학생간의 성희롱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관련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박희정*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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