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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언론의 영향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이여울의 記錄>(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외된 이를 대변하는 비주류언론의 딜레마
▲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다.
석순은 여성주의 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지요? 영향력이란, 내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길 원하지요. 언론활동이란 것 자체가 널리 알려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다> 창간 때부터 줄곧 고민해왔지요.
독자 수가 적은 매체는 보도내용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지 않고, 독자 수가 많은 매체는 실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보도는 현장에 즉각 반영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다>의 경우도 몇몇 보도기사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사실 <일다>의 기사들은 보도된 이후에, 큰 언론들이 해당 아이템을 다시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지요. 그런 일들은 창간 이래 줄곧 있어왔어요.
헌데 비주류언론의 기사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된 내용이기에, 큰 매체들은 그 내용을 가져다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발굴한 기사인양 행세하기 쉽습니다. 마땅히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 할 때조차도, 한국언론들은 ‘관행’이란 미명하에 정직하게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지요. 재정도, 인력도 열악한 곳에서 애써 발굴한 기사가, 규모가 큰 조직에서 일하는 정규직 언론인들에게 손쉬운 기획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 되니까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같은 주류언론과의 관계망도, <일다>의 관점과 보도내용이 더 넓게 퍼져나가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수의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일다>가 발굴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슈들을 알아봐주는 독자들도 항상 있답니다. <일다> 애독자의 상당수가 기자들, 작가들, 편집인들, 출판기획자들이라는 점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체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매체의 ‘영향력’과 관련한 나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해요. 사실상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을 담는 <일다>의 기사들이 이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요. 정성을 기울여 소중한 기사를 작성했건만, 이 울림이 어디까지 닿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고 마는 것인지 답답할 때가 왜 없겠어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부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국에 연락해 기사거리로 가져가라고 제보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로 10여 년간 일해온 지금,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매체의 영향력일까?
이를 테면 TV 방송은 영향력이 크지요. 그러나 과연 누구에게 무슨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방송의 어떤 프로그램 혹은 어떤 보도가 훌륭하다고 해서, 해당 방송이 광고나 다른 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롭게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요. 방송은 광고와 시청률에 의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외부적으로 검열이 따릅니다. 더구나 매체가 조장하는 소비와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많은 왜곡된 이미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미디어를 볼 때, 그 양면성을 함께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큰 매체를 통해서는 보도 내용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지요. 그러나 다루고 싶은 이슈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사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광고수주와 구독률(또는 시청률)이라는 무시 못할 물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학력도 높은 편인 언론인들의 지위와 신분이,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문제를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TV 뉴스에선 왜 노동 이슈를 그다지 주요하게 다루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선 방송국 기자와 직접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뉴스에서 노동 사안을 ‘노사가 싸운다’ 정도로밖에 다루지 않는지, 지금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중요한 시기에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지 물었지요. 기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라는 점도 있지만, 뉴스의 특성상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임금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엔 내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일하는 여성주의자 언론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지만 정작 기획회의 때 꺼내지도 못하는 사안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분야에서, 동의하지도 않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게다가 여성주의가 끼어들기엔, 언론계라는 노동현장은 아직도 상당히 남성중심적이지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그다지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 또한 개개인의 여성언론인에게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규모가 큰 매체에서 기자나 피디로 일하는 것이 덜 중요하고 의미가 적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성주의자가 어디에서 일하든, 그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지지하지요. 다만 언론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과, 여성주의 언론인으로서 ‘영향력’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 매체에서 하찮은 취급 받으며 묻히는 기사가 여성주의 저널에선 빛이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뤄진다 해도 한두 번 부각되고 말아버리지요. 그나마 선정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말입니다. 반면, 장애여성 이슈가 <일다>에서는 메인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매체에 실리는 것이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일까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지속적인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뉴스가 돌아가는 풍토를 좀 보세요. 아무리 큰 이슈도 하루 이틀밖에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하루 반짝”, 이게 한국의 뉴스를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요? 차별과 평등의 문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 생태적인 관점, 소수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이런 기사를 꾸준히 언제나 볼 수 있는 매체로서 <일다>는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고 그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언론의 영향력은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회에서는 “충성도” 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나는 “애정도” 라고 말하곤 하죠. 알짜배기 독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즉 독자들이 매체를 얼마나 아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다>는 독자들의 “애정도”에 있어선 손에 꼽히는 매체일 거라고 자부한답니다.
원고료도 거의 없는 <일다>에 흔쾌히 글을 기고해주는 필자들이 있고, 다른 매체 기자들과는 인터뷰하지 않지만 <일다>의 요청에는 기꺼이 응해주는 취재원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는 곧, 독자들이 <일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도 영향력 아닐까요?
여성주의 저널의 운영, <일다>의 재정
▲ 기사 모니터링과 후원캠페인 참여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일다 독자위원회. 매체를 아껴주는 독자들의 힘으로 일다는 곧 8살을 맞는다. 사진은 일다 CMS후원캠페인 영상.
영향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여성주의 매체는 ‘재정’의 문제에서 너무나도 큰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석순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성주의 언론의 존립 자체와 관련이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드리려 해요.
2003년 <일다>가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이 너무도 순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름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요? 나는 그보다는 ‘모래 위에 성을 쌓았다’는 비유를 더 즐겨 하지만 말입니다.
광고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이 되는 언론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인 <일다>는 구독료마저 없는 것입니다. 언론이 구독료도 아닌 ‘후원’으로, 광고 없이 유지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널의 운영을 책임져야 했던 나에겐 수년 간 너무나 버거운 짐을 얹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구나 창간 초기엔 편집장이면서 동시에 운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다>의 운명은 바람 부는 등잔 위의 불꽃이나 다름 없었지요.
대부분 인터넷 신문들, 소위 ‘남성들 조직’에 비하면 <일다>의 시스템은 소꿉장난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인터넷신문 관련한 실사를 나왔다가, <일다>의 재정상황을 확인하고는 거의 기절을 하셨지요. 바깥에서 보는 <일다>는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규모 있는 언론으로 보였는데, 매체가 운영될 수 있는 바탕인 재정 수준이 동호회 내지는 대학동아리 수준이었기 때문이에요.
재정이 약하고 운영이 부실한 관계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없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심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러던 것이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편집장을 맡게 되고(운영자와 저널 책임자가 분리되고),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준 덕분에 <일다>는 2009년에 유한회사(주식회사의 작은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미디어일다를 설립하고, 보다 튼튼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무 명의 사원(주주 개념)이 함께 조직을 세운 것인데, 상법 상으론 투자의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일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좀더 큰 후원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사실상 <일다>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은 돈이라기보다 애정과 정성입니다. 미약하게 세상에 태어난 작은 불꽃이 꺼질까 봐, 금이야 옥이야 지켜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그 마음이, 그 정성이 <일다>를 지금까지 있게 한 힘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300여명의 ‘일다의 친구’들. 후원금액으로 따지자면 매체를 굴러가게 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지만, 나는 친구들 명단을 볼 때마다 <일다>에 매달 기부를 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감탄하곤 합니다. 수십만 독자 수를 내세우는 매체들과 비교해 너무 약한 외침이라고, 혹은 수천 명이 큰 액수를 기부하는 조직들에 비해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니까요.
지금 <일다>는 박희정 기자가 3대 편집장을 맡아 저널을 책임지고 있고, 편집위원들과 통신원, 필자들이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윤정은 기자는 출판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필자 최현정씨의 책 <조용한 마음의 혁명>을 발간했지요.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함수연씨도 함께, 아주 작은 규모지만 (유)미디어일다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시기랍니다.
물론 아직도 <일다>는 고용을 보장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은 액수의 임금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론 일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구성원들이 매년 논의하고, 또 논의하고 있어요. 머리를 맞대면 뭔가 뾰족한 수가 하나씩 나온답니다. 제가 휴가를 얻어 과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조이여울)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광고없이 독자들 후원으로 운영되는 독립미디어 일다! 정기후원인이 되어주세요!]
<조이여울의 記錄>(8) 대학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보낸 편지-3
[올해 초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여성주의자로서 언론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청탁서였는데, 그 안에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주의 매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진솔하고도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는 흔쾌히 지난 10년 간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며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하고 실천한 내용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을 정성껏 담아 회신했다. <석순> 측의 동의를 구해, 우리가 서로 나눈 편지의 내용을 재탈고의 과정을 거쳐 <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먼저 석순이 보내온 편지를 개재하고, 이어 나의 답신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외된 이를 대변하는 비주류언론의 딜레마
▲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다.
석순은 여성주의 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지요? 영향력이란, 내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길 원하지요. 언론활동이란 것 자체가 널리 알려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다> 창간 때부터 줄곧 고민해왔지요.
독자 수가 적은 매체는 보도내용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지 않고, 독자 수가 많은 매체는 실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보도는 현장에 즉각 반영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다>의 경우도 몇몇 보도기사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사실 <일다>의 기사들은 보도된 이후에, 큰 언론들이 해당 아이템을 다시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은 <일다>에서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모았지요. 그런 일들은 창간 이래 줄곧 있어왔어요.
헌데 비주류언론의 기사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된 내용이기에, 큰 매체들은 그 내용을 가져다 쓰면서 마치 자신들이 발굴한 기사인양 행세하기 쉽습니다. 마땅히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 할 때조차도, 한국언론들은 ‘관행’이란 미명하에 정직하게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지요. 재정도, 인력도 열악한 곳에서 애써 발굴한 기사가, 규모가 큰 조직에서 일하는 정규직 언론인들에게 손쉬운 기획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 되니까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같은 주류언론과의 관계망도, <일다>의 관점과 보도내용이 더 넓게 퍼져나가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수의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일다>가 발굴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변화를 가져오게 된 이슈들을 알아봐주는 독자들도 항상 있답니다. <일다> 애독자의 상당수가 기자들, 작가들, 편집인들, 출판기획자들이라는 점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체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매체의 ‘영향력’과 관련한 나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해요. 사실상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을 담는 <일다>의 기사들이 이 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요. 정성을 기울여 소중한 기사를 작성했건만, 이 울림이 어디까지 닿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공유되고 마는 것인지 답답할 때가 왜 없겠어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부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국에 연락해 기사거리로 가져가라고 제보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로 10여 년간 일해온 지금,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매체의 영향력일까?
이를 테면 TV 방송은 영향력이 크지요. 그러나 과연 누구에게 무슨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방송의 어떤 프로그램 혹은 어떤 보도가 훌륭하다고 해서, 해당 방송이 광고나 다른 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롭게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요. 방송은 광고와 시청률에 의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외부적으로 검열이 따릅니다. 더구나 매체가 조장하는 소비와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많은 왜곡된 이미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미디어를 볼 때, 그 양면성을 함께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큰 매체를 통해서는 보도 내용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지요. 그러나 다루고 싶은 이슈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사실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광고수주와 구독률(또는 시청률)이라는 무시 못할 물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학력도 높은 편인 언론인들의 지위와 신분이,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문제를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TV 뉴스에선 왜 노동 이슈를 그다지 주요하게 다루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선 방송국 기자와 직접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뉴스에서 노동 사안을 ‘노사가 싸운다’ 정도로밖에 다루지 않는지, 지금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중요한 시기에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지 물었지요. 기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라는 점도 있지만, 뉴스의 특성상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임금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엔 내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일하는 여성주의자 언론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지만 정작 기획회의 때 꺼내지도 못하는 사안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분야에서, 동의하지도 않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게다가 여성주의가 끼어들기엔, 언론계라는 노동현장은 아직도 상당히 남성중심적이지요.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그다지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 또한 개개인의 여성언론인에게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규모가 큰 매체에서 기자나 피디로 일하는 것이 덜 중요하고 의미가 적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성주의자가 어디에서 일하든, 그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지지하지요. 다만 언론의 영향력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과, 여성주의 언론인으로서 ‘영향력’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타 매체에서 하찮은 취급 받으며 묻히는 기사가 여성주의 저널에선 빛이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뤄진다 해도 한두 번 부각되고 말아버리지요. 그나마 선정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말입니다. 반면, 장애여성 이슈가 <일다>에서는 메인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매체에 실리는 것이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일까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지속적인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뉴스가 돌아가는 풍토를 좀 보세요. 아무리 큰 이슈도 하루 이틀밖에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하루 반짝”, 이게 한국의 뉴스를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요? 차별과 평등의 문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 생태적인 관점, 소수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이런 기사를 꾸준히 언제나 볼 수 있는 매체로서 <일다>는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고 그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언론의 영향력은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회에서는 “충성도” 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나는 “애정도” 라고 말하곤 하죠. 알짜배기 독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즉 독자들이 매체를 얼마나 아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다>는 독자들의 “애정도”에 있어선 손에 꼽히는 매체일 거라고 자부한답니다.
원고료도 거의 없는 <일다>에 흔쾌히 글을 기고해주는 필자들이 있고, 다른 매체 기자들과는 인터뷰하지 않지만 <일다>의 요청에는 기꺼이 응해주는 취재원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는 곧, 독자들이 <일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도 영향력 아닐까요?
여성주의 저널의 운영, <일다>의 재정
▲ 기사 모니터링과 후원캠페인 참여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일다 독자위원회. 매체를 아껴주는 독자들의 힘으로 일다는 곧 8살을 맞는다. 사진은 일다 CMS후원캠페인 영상.
영향력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여성주의 매체는 ‘재정’의 문제에서 너무나도 큰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석순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여성주의 언론의 존립 자체와 관련이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드리려 해요.
2003년 <일다>가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이 너무도 순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름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요? 나는 그보다는 ‘모래 위에 성을 쌓았다’는 비유를 더 즐겨 하지만 말입니다.
광고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이 되는 언론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인 <일다>는 구독료마저 없는 것입니다. 언론이 구독료도 아닌 ‘후원’으로, 광고 없이 유지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널의 운영을 책임져야 했던 나에겐 수년 간 너무나 버거운 짐을 얹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구나 창간 초기엔 편집장이면서 동시에 운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다>의 운명은 바람 부는 등잔 위의 불꽃이나 다름 없었지요.
대부분 인터넷 신문들, 소위 ‘남성들 조직’에 비하면 <일다>의 시스템은 소꿉장난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인터넷신문 관련한 실사를 나왔다가, <일다>의 재정상황을 확인하고는 거의 기절을 하셨지요. 바깥에서 보는 <일다>는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규모 있는 언론으로 보였는데, 매체가 운영될 수 있는 바탕인 재정 수준이 동호회 내지는 대학동아리 수준이었기 때문이에요.
재정이 약하고 운영이 부실한 관계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없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심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러던 것이 동료인 윤정은 기자가 편집장을 맡게 되고(운영자와 저널 책임자가 분리되고),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준 덕분에 <일다>는 2009년에 유한회사(주식회사의 작은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미디어일다를 설립하고, 보다 튼튼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무 명의 사원(주주 개념)이 함께 조직을 세운 것인데, 상법 상으론 투자의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일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좀더 큰 후원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사실상 <일다>를 만들고 유지해온 것은 돈이라기보다 애정과 정성입니다. 미약하게 세상에 태어난 작은 불꽃이 꺼질까 봐, 금이야 옥이야 지켜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그 마음이, 그 정성이 <일다>를 지금까지 있게 한 힘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300여명의 ‘일다의 친구’들. 후원금액으로 따지자면 매체를 굴러가게 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지만, 나는 친구들 명단을 볼 때마다 <일다>에 매달 기부를 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감탄하곤 합니다. 수십만 독자 수를 내세우는 매체들과 비교해 너무 약한 외침이라고, 혹은 수천 명이 큰 액수를 기부하는 조직들에 비해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니까요.
지금 <일다>는 박희정 기자가 3대 편집장을 맡아 저널을 책임지고 있고, 편집위원들과 통신원, 필자들이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윤정은 기자는 출판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필자 최현정씨의 책 <조용한 마음의 혁명>을 발간했지요.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함수연씨도 함께, 아주 작은 규모지만 (유)미디어일다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시기랍니다.
물론 아직도 <일다>는 고용을 보장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적은 액수의 임금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론 일이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므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구성원들이 매년 논의하고, 또 논의하고 있어요. 머리를 맞대면 뭔가 뾰족한 수가 하나씩 나온답니다. 제가 휴가를 얻어 과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조이여울)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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