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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의 <두 엄마의 육아일기> “누가 엄마유?”
※ 대안언론 <일다>www.ildaro.com의 새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동성 파트너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김산’님이 “두 엄마의 육아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한국사회의 단단한 이성애 각본을 흔들어 줄 ‘이반(동성애자) 양육’ 칼럼 연재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갓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우리 커플이 듣는 질문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2주가 막 지났으니 정말 갓난 아이다. 길거리를 지나거나 소아과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이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있다. 아이가 귀엽다고 칭찬하거나 태어난 지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옷 색깔이나 디자인이 대체로 성별을 구별할 수 없게 어중간한 때문일까,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도 안 빠지는 질문 중 하나다.
여기에 하나 더, 아마도 파트너와 내가 유난히 받게 되는 질문은 ‘누가 엄마냐’는 거다.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있고 파트너가 유모차를 끌고 있는 경우엔, 나만 엄마인양 아기에 관한 질문은 다 내게로 쏟아진다. 우리 둘 중 막 해산했거나, 수유를 할 만한 이로 보이는 건 외모상 내 쪽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파트너가 수유를 하고 있는 경우엔 예외다. 둘 다 아기를 보고 해죽해죽 웃음을 멈추지 못하거나, 번갈아 아기를 안아주는 걸 누군가 보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말로 하지 않으면 눈으로 묻는 질문. “누가 엄마유?”
이 질문은 양 갈래로 의미를 달리한다. 이곳은 캐나다 모 도시로, 이반(동성애자) 커플과 동성애가족들이 제법 많은 곳이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우리가 커플일 수 있음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우리 둘 다 아기의 양육인이란 건 인정하되, 그래도 ‘누가 아기를 낳은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이 되겠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진보적인 환경과 상관없이 ‘이성애’의 틀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우릴 커플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눈으로 하는 질문은, 엄마는 당연히 한 사람이겠거니 하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래 저래, 이 질문은 파트너와 나로 하여금 대답대신 서로 눈웃음을 주고받게 만든다. 원하는 답이 뭔지 알지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면 피한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대답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참을성이 적은 내 쪽에서, 그들이 이해하는 ‘엄마’(아기를 낳은 사람)로 파트너를 가리켜 준다. 의외란 듯한 표정을 보이면, 순진한(?) 이들이다. 그런 생각을 안 내보이려고 호들갑 떨며 축하한다는 인사를 내 파트너 쪽에 보내며 오버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는 나와 내 파트너만이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이반’(동성애자)들 가운데 아이를 낳거나 기르고 싶은 이들을 위한 12주 프로그램이 있다. 싱글도 있고, 아닌 이들도 들어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이반 커뮤니티 센터’가 개설해서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여성이반과 남성이반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있고,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본인이 선택한 곳에서 듣는다.
우리는 특히 인기가 좋은 여성이반을 위한 프로그램에 등록한 지 1년 가까이 기다려 결국 참여했다. 프로그램 조정자나 초청 강사들, 주로 당사자들이 ‘이반 양육’인 경험을 가진 이들의 말을 듣자니 “누가 엄마냐”란 질문은 여성이반 커플의 경우 심심치 않게 듣는 것 같다.
두 남성이 양육인이거나 남성 혼자 육아를 하는 경우 역시 “누가 엄마냐”란 질문을 듣는다. 이는 여성이반 양육인들이 “누가 아빠냐”란 질문을 받는 것과 비슷하게 ‘부모’ 즉, 이성애 커플로 구성된 양육 단위를 당연시 여기는 질문이다. 남녀 커플이 아니면, 육아를 하는 이들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미완성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시에, 육아의 책임이 없는 정자기증자 혹은 난자기증자의 역할을 ‘양육인’과 동일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족과 ‘가족이 아닌’ 경계를 만드는 일에 대한 복잡한 과정과 의미들은 차후에 좀더 얘기하게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기증인과 양육인간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독자들 가운데는 <에브리바디 올라잇>(원제: The Kids Are All Right)이란 영화에서처럼, 기증인과 여성이반커플 중 한 사람과의 로맨스를 상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이성애 담론이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내가 듣고 본 현실적인 경우들은 훨씬 이성애 각본에서 벗어나 있다. 기대하시라.
한국 독자들에게 '두 엄마의 육아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두 엄마의 육아일기”는 이런 이반들의 아이 기르는 얘기들을 배경으로 하되, 나와 내 파트너의 삶을 중심으로 왜 우리가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의 이것 저것 보따리를 풀어가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제 한부모 가족이나 다문화 가정 등 ‘가족의 다양성’에 대해 여성주의 운동진영에서부터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많이 거론하게 되었다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모순투성이다. 비(非)혼인 사람은 미(未)혼인 것으로 간주되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저출산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상황. 그와 동시에 법적인 “싱글”로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 기르는 것은 어불성설로 여겨지는 상황. 이런 한국의 상황에서, 동성파트너와의 사이에 아이를 행복하게 기른다는 얘길 꺼내는 게 얼마나 현실감 있게 들릴까 싶다.
그와 정반대로, 한국의 이반들 가운데 이성애커플처럼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캐나다의 진보적 주정부와 도시들처럼 그러한 삶이 가능한 곳이 마치 모두의 이상향으로 비쳐지는 게 아닐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일다>의 독자들은 비판적으로, 성찰적으로 내 글을 읽어줄 거라 짐작한다. 내 필명을 ‘김산’으로 정한 배경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어본 이들은 김산이란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두 엄마의 육아일기>의 김산은, <아리랑>의 김산처럼 (일본 제국자본주의에 대항해 중국 공산혁명에 앞장선 한인 사회주의자로서) 시대적 비장함과 개인적 영웅성을 공유하지도 않고, 그럴 무게도 없다. 다만 <두 엄마의 육아일기>의 김산도, 삶의 독특한 위치가 드러내주는 시각과 나름의 갈등이 있을 것 같고, 이를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어줄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첫 장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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