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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기록되지 않은 노동>② 요양보호사, 허울좋은 이름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2011년 여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데 돌보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집으로 오지 말고 10시까지 병원으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알았다고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5분이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할머니는 벌써 집으로 가셨다고 한다. 병원에서 할머니네 집은 300미터 남짓 된다.
할머니는 병원에 다녀와서 침대에 누워 계신다. 밤새 아파서 죽을 뻔했다면서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단호박을 사와서 죽을 쑤라신다. 알았다고 하면서 단호박을 사러 나갔다. 내친 김에 할머니의 병원에 다시 들러 의사를 만나, 할머니가 왜 기운이 없고 음식을 못 드시는 지에 대해서 물었다.
“할머니께서 원하는 대로 매일 죽만 먹어도 되나요?”
의사는, “할머니는 음식을 부드럽게 해서 먹어야 하지만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음식을 부드럽게 해서 먹어야 합니다” 하고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뭐하러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왔냐고 타박하신다. 나는 호박껍질을 벗기면서 할머니를 설득하려고 했다.
“병원에서는 영양소 골고루 갖춰진 죽을 먹어야 한대요.”
죽을 다 만들어 할머니께 드리고 청소를 한 후 설거지를 해놓고 퇴근을 하려는데 할머니는 또 잔소리다. “전에 왔던 아주머니는 반찬도 만들어서 갖다 주더라. 너처럼 말대꾸도 안하고 오라는 대로 온다.” 하면서 자꾸 비교해가며 얘기를 하신다.
내가 말했다. “저는 여기 와서 매일매일 반찬 만들어 드리잖아요. 그런데 집에서까지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드려야 하나요?”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비스 시간이 다 되었다. 누워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집을 나왔다.
전철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문자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문자를 확인하니 센터장에게서 온 것이다.
“할머니가 요양사를 바꿔 달라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내일부터 할머니네 집에 가지 마세요.”
나는 알았다고 했다. 센터장은 다른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는 말인가요? 휴업 상태에 대해서 센터장이 책임져야 하지 않나요?”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맘대로 하시던지요.”
난 대번에 그런 경우는 없다, 엄연히 계약서를 쓴 고용인이고 당신 맘대로 근로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명확한 근거를 문서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센터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또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에 말한 근거 서류와 해고 통보서 보내주세요.”
“해고는 아닙니다. 근로 중단 상태이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대기하고 계세요.”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이 지나도 센터장은 해고통보서를 주지 않았다. 난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소송을 걸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소송에 도움을 받으려고 요양보호사협회를 방문하여 노무사와 상담을 했다.
소송을 하려면, 센터 나름대로의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 규정을 복사해 와서 어떤 것에 위반이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소송을 할 수 있단다. 그래서 다시 센터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근로계약서 및 센터 규약을 보내주세요” 라고. 다음날 계약서와 규약이 왔고, 센터장 나름대로의 규약 위반 사항을 메일로 보내왔다. 난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요양보호사협회 노무사는 지금의 요양사가 처한 현실이 명확하게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센터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소송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좀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센터장을 만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근거 자료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센터장은 “해고가 아니라니까요!”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나와 같은 경우를 많이 겪는다. 그러나 나처럼 말대꾸하지 않고 요구를 잘 들어주면서 일한다. 왜냐하면 그 일마저 잘릴까 봐 두려워서이고, 대부분 나이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심리적으로도 끊임없이 감정조절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즉,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일이며 ‘돌봄노동’이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욕구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매우 섬세한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용자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총체적 삶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의 할머니를 돌보기 전에 만났던 분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용자였다. 아주머니를 돌보러 갔는데 아저씨의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고 집안 전체를 청소해야 했다.
이 분은 나이가 오십이 조금 넘었는데 뇌출혈이 와서 왼쪽 신체를 못 쓴다. 친하게 지내면서 필요한 일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아침에 가면 어제 저녁에 먹은 그릇이 싱크대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아저씨는 나이도 젊고 멀쩡한데,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를 위해 설거지도 안 하는 모양이다.
며칠은 설거지 양이 얼마 되지도 않으니까 그냥 했다. 하루 이틀 계속 똑같은 상황이 되니 짜증이 났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준비한 점심을 꼭 아저씨도 같이 드셨다.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 “어제 저녁 먹은 설거지는 아저씨가 좀 해 놓으면 안되나요? 아저씨는 몸이 불편하지도 않잖아요” 라면서 말이다. 아주머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음날 센터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일부터 이태원 OO집에 가지 마세요.”
나는 또 잘렸던 것이다.
이처럼 불분명한 업무 경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심지어 성희롱을 겪는 요양보호사도 있다. 영화 <시>에서도 나왔지만 나이 든 남자 어르신들은 종종 목욕시켜주는 시간이 되면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곤 한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서까지 일을 계속하는 요양보호사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일들은 모두 ‘요양보호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 하에 생기는 일이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이용자들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많은 것을 인내하면서 일하고 있다. 화를 내려고 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존심이 상해도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것은 내가 그만큼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센터장을 길에서 만났다. 다시 해고문제를 명확히 하자면서 물었다. “그러면 내가 센터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죽고 사는 파리 목숨입니까?”라고 했더니, 당연히 그렇단다. 불끈 오기가 몰려왔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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