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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 생명을 살리는 도시소비자의 역할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기농 제철음식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카페
생강과 귤껍질이 함께 보글보글 끓는 동안, 온 집안이 향긋한 냄새로 가득하다. 귤과 생강이 풍성한 계절에는 진피차와 생강차가 제격이다. 얼마 전에는 늙은 호박을 사다가 호박죽도 끓이고, 또 선물받은 도토리가루로 생전 처음 도토리묵도 쑤어 보았다. 묵이 아니라, ‘푸딩’같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그래도 쌉쌀한 도토리맛은 그대로다.
맛이 없다고?
물론, 먹는 일은 우선 생존하기 위함이고, 살아남기에 족한 음식 이상을 섭취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나 지구환경이나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기왕이면 적게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지론이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음식의 맛을 무시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맛에 관심이 많고, 맛을 즐기는 편이다. 다만, 복잡한 조리법, 다채로운 향신료, 갖가지 재료, 과식을 통해 맛을 향유하지는 않는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돈, 시간, 노력을 들여 이곳 저곳의 유명한 식당을 찾아 다니지도 않는다.
그냥 평소 생활하는 공간에서 준비하는 매끼 식사를 통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맛을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먹어야 한다면, 즐겁게 먹는 것이 좋고, 맛 좋은 식사를 일상 밖의 이벤트로 만들기보다 일상적 행복으로 삼는 것이 낫지 않겠나.
나는 스스로 준비한 음식이 마음에 든다. 조리도 간단하고, 먹을 만큼 준비해서 음식물쓰레기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맛이 깔끔하고 담백해서 식재료의 풍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유기농산물을 먹어야 하나?
쥐눈이콩 토종종자 심는 여성농민들 ©전여농 추천서- 모심과 살림연구소 엮음 "땅에 뿌리박은 지혜" (그물코, 2006)
처음 유기농산물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수퍼마켓마다 유기농산물 코너가 따로 있었다. 판매되고 있는 유기농산물은 모양도 형편없고 크기도 작으면서 값은 너무 비싸기만 했다. 풍족하지 못한 유학생 처지로는 감히 먹을 엄두도 내기 힘든 고급 식재료였다.
주변 프랑스 친구들 가운데 유기농산물을 이용하고 있던 이들은 대체로 건강상의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유기농산물은 건강을 위한 특별식 정도로 이해했고,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산물로 고집하는 이는 건강과민증 환자로 치부했다. 그러다 유기농산물 소개책자를 접하게 되었다. 나의 건강만이 아니라,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기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초제, 살충제를 비롯한 온갖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그 때문에 토양오염, 수질오염을 야기하는 관행 농업과 달리, 영양순환을 실천하는 유기농업이야말로 생명을 존중하는 농업임을 알게 되었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 농산물을 사서 먹는 소비자는 물론이요, 생산하는 농부의 건강까지 지켜낼 수 있다. 또 익충(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곤충)뿐만 아니라, 흙 속에서, 물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의 목숨도 위협하지 않는다.
생명, 땅, 물을 염려하며 키운 농산물이어서인지, 영양도 풍부하지만 맛도 좋다. 참으로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유기농산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내 경우, 식재료가 신선하고 맛있으니까, 맛 그 자체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오히려 양념은 그 맛을 가릴 뿐이다.
처음에는 유제품을 포함한 축산품만 유기농산물을 이용했지만, 차츰 유제품과 육고기를 멀리하게 되었고, 마침내 몇 년 전부터는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산물로 바꾸었다. 그때부터 관행농산물은 양념을 첨가해 맛을 부풀리지 않으면, 아무런 맛도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농약을 스무 번이나 친다는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은 무농약, 유기농 과일과 비교할 때 영양도 형편없지만 맛도 이상해, 먹기가 두렵다.
콩 세 알의 의미를 아는 농부는 '있다'
물론 직접 자급자족해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처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도시인들은 생명의식으로 투철한, 소신 있는 농부를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땅에는 그런 농부들이 존재한다. 그 훌륭한 농부를 발굴하고 격려하고 마음 편히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도시 소비자의 역할일지 모른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농작물을 땀흘리며 키우는 농부, 콩 세알의 의미(옛 농민은 밭에 콩을 심을 때, 하늘의 새, 땅의 벌레, 그리고 인간을 위해 한 구덩이에 콩 세 알씩을 심었다 한다)를 새기는 농부, 나는 그들을 일단 믿는다.
오늘 귤껍질로 진피차를 끓여 맛 볼 수 있는 것도 그 농부의 노력 덕분임을 안다. ‘과일껍질은 먹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소위 녹색혁명의 산물. 화학물질이 범벅이 된 먹을거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 그 시절은 과거가 되어야 한다. 비로소 참맛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이제, 차 한 잔, 마셔야겠다.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바이러스와의 공생은 불가능한가 | 해산물, 이대로 계속 먹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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