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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여성가족부 <청소년 연예인 실태분석> 결과 발표
요즘 십대들에게 연예인은 강한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최근 가요계는 십대들이 중심이 된 아이돌그룹들이 대세를 이루고 전례 없이 많은 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돌 스타를 꿈꾸며 수많은 십대들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방송에서 화려하게만 비춰지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이들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십대’라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되는 듯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3일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에서 수행한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5일까지 청소년 연예인 및 연예지망생 103명(남 53명, 여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그 동안 십대 연예인들을 둘러싸고 제기된 다양한 우려를 뒷받침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학습방치, 밤샘근무 등 근로보호 못 받아
우선 방치되는 학습권과 노동권의 문제가 심각했다. 응답자의 36%가 하루 8시간 이상 초과근무, 41.0%가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47.6%가 1학기 일주일에 반나절 이상 수업에 빠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연예활동을 하는 십대들은 학교생활은 거의 포기하는 것이 수순처럼 되어 있다. 특히 소위 ‘확 뜬’ 연예인들은 밤샘촬영이나 무리한 스케줄을 인기의 대가인 것처럼 참아야 한다.
이번에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는 다른 상황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선 청소년 연예인의 연령별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등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십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이 때 무리하게 노동하거나 학습으로부터 방치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과 근로기준법 등에 연소자 근로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연예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청소년연예인을 보험설계사, 외판원 같은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연소자근로보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성적으로 이용되는 십대들 문제 심각
한편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기획사 맘대로 끌려 다녀야 하는 십대연예인들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점점 선정적인 이미지와 행동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방송현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십대들도 있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0.2%가 특정 신체부위를 노출한 경험이 있었으며 노출경험이 있는 십대 여성의 경우 60%가 ‘강요에 의한 노출’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연예 활동 시 9.1%가 무대나 촬영장에서 애무, 포옹, 키스 등의 행위를 경험했으며 4.5%는 음담패설, 비속어, 성적 희롱, 유혹 등 선정적 암시가 담긴 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최근 십대 아이돌그룹들의 의상과 안무가 너무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청순 글래머’나 ‘꿀벅지’ 처럼 성적인 이미지가 들어간 수식어들도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 십대들의 성적 표현이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성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데 있다.
수많은 걸그룹들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섹시함’ 일색이다. 노골적으로 핀업걸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노출을 강조한 의상과 춤으로 무대 위에 오른다. 예능프로에서도 이들에게 섹시한 춤을 주문하고, ‘장기자랑’을 표방하는 한 토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초등학생밖에 안된 어린 아이들조차 섹시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TV 속에서 십대를 성적 대상화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십대를 점점 선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시선이 불편한 것은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원하는 현실의 왜곡된 성문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을 선망하는 십대들이 스스로 대상화되는 성을 내면화할 경우 어른들의 성적인 악용에 취약해질 우려도 있다.
‘성장의 시간’ 지켜줄 장치 필요
십대들은 사회적 약자다. 더구나 십대연예인들은 보호 장치가 없이 모든 게 기획사에 달린 상황에서 부당한 걸 요구 받아도 거부하기 힘들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소양을 습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할 시간을 빼앗긴 결과는 때로 참담하다.
이번 조사에서 18세 이하 여성응답자의 64.3%가 불면증을 호소하고 14.3%가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고 응답했다. 연예활동을 중단한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5살부터 가수생활을 시작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벽에 스트립댄서의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고 고통스럽게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네버랜드’를 만들고 어린이들과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번 잃어버린 시간은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다. 그것이 ‘특별한 때만 가능한 성장의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예인’이기에 특수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 ‘십대’로서 보호 받아야 할 부분들을 지켜줄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는 법적인 차원에서 세부적 지침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십대연예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획사를 제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박희정/ 일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광고 없이 독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요즘 십대들에게 연예인은 강한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최근 가요계는 십대들이 중심이 된 아이돌그룹들이 대세를 이루고 전례 없이 많은 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돌 스타를 꿈꾸며 수많은 십대들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방송에서 화려하게만 비춰지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이들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십대’라는 사실을 종종 잊게 되는 듯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3일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에서 수행한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5일까지 청소년 연예인 및 연예지망생 103명(남 53명, 여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그 동안 십대 연예인들을 둘러싸고 제기된 다양한 우려를 뒷받침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학습방치, 밤샘근무 등 근로보호 못 받아
우선 방치되는 학습권과 노동권의 문제가 심각했다. 응답자의 36%가 하루 8시간 이상 초과근무, 41.0%가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47.6%가 1학기 일주일에 반나절 이상 수업에 빠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연예활동을 하는 십대들은 학교생활은 거의 포기하는 것이 수순처럼 되어 있다. 특히 소위 ‘확 뜬’ 연예인들은 밤샘촬영이나 무리한 스케줄을 인기의 대가인 것처럼 참아야 한다.
이번에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는 다른 상황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선 청소년 연예인의 연령별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등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십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이 때 무리하게 노동하거나 학습으로부터 방치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과 근로기준법 등에 연소자 근로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연예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청소년연예인을 보험설계사, 외판원 같은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연소자근로보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성적으로 이용되는 십대들 문제 심각
한편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기획사 맘대로 끌려 다녀야 하는 십대연예인들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점점 선정적인 이미지와 행동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방송현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십대들도 있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0.2%가 특정 신체부위를 노출한 경험이 있었으며 노출경험이 있는 십대 여성의 경우 60%가 ‘강요에 의한 노출’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연예 활동 시 9.1%가 무대나 촬영장에서 애무, 포옹, 키스 등의 행위를 경험했으며 4.5%는 음담패설, 비속어, 성적 희롱, 유혹 등 선정적 암시가 담긴 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최근 십대 아이돌그룹들의 의상과 안무가 너무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청순 글래머’나 ‘꿀벅지’ 처럼 성적인 이미지가 들어간 수식어들도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 십대들의 성적 표현이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성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데 있다.
수많은 걸그룹들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섹시함’ 일색이다. 노골적으로 핀업걸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노출을 강조한 의상과 춤으로 무대 위에 오른다. 예능프로에서도 이들에게 섹시한 춤을 주문하고, ‘장기자랑’을 표방하는 한 토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초등학생밖에 안된 어린 아이들조차 섹시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TV 속에서 십대를 성적 대상화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십대를 점점 선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시선이 불편한 것은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원하는 현실의 왜곡된 성문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을 선망하는 십대들이 스스로 대상화되는 성을 내면화할 경우 어른들의 성적인 악용에 취약해질 우려도 있다.
‘성장의 시간’ 지켜줄 장치 필요
십대들은 사회적 약자다. 더구나 십대연예인들은 보호 장치가 없이 모든 게 기획사에 달린 상황에서 부당한 걸 요구 받아도 거부하기 힘들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소양을 습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할 시간을 빼앗긴 결과는 때로 참담하다.
이번 조사에서 18세 이하 여성응답자의 64.3%가 불면증을 호소하고 14.3%가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고 응답했다. 연예활동을 중단한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5살부터 가수생활을 시작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벽에 스트립댄서의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고 고통스럽게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네버랜드’를 만들고 어린이들과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번 잃어버린 시간은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다. 그것이 ‘특별한 때만 가능한 성장의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예인’이기에 특수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 ‘십대’로서 보호 받아야 할 부분들을 지켜줄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는 법적인 차원에서 세부적 지침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십대연예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획사를 제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박희정/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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