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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칼럼] ‘여성의 노출’을 바라보는 십대들의 시선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서영미
<일다의 독자위원인 서영미님은 현재 십대들과 함께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선생님, 질문 있어요. 왜 여자애들은 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어요?”
“여자애들이 핫팬츠 좀 못 입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게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이지? 최근 들어 두 번이나 받은 질문이다. 고등학교 청소년 남자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한번, 그리고 초등학교 남자아이들과 교육하면서 한번. 성장기 자신의 몸의 변화나 성관계, 임신/출산에 관련한 질문들이 대부분인 편이라 이 질문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핫팬츠를 입지 말았으면 좋겠다니 이 무슨 말인가?
뜬금없는 질문이 궁금해 스무고개 하듯 계속해서 질문을 주고받으며 질문한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질문자는 한 명이었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질문에 아이들은 자지러졌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내가 자신들 생각대로 웃어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계속 물으니, 나중엔 아이들도 제법 진지하게 맞받아쳤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은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핫팬츠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
모자와 핫팬츠는 다르다?
“오크가 그런 걸 입는 게 말이나 돼요?”
판타지 소설이나 롤플레잉 게임에 주로 등장하는 괴물, ‘오크’족. 쭉쭉빵빵 몸매도 좋고 능력도 좋은 미녀캐릭터들에 비해 볼품이 없어 쉽게 무시당하고 힘만 센 캐릭터. 아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랬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입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건 당연히 ‘봐줄 만하다’는 것이다. 핫팬츠뿐만 아니라 미니스커트에도 역시 강한 불만을 표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이유를 제기했다.
“옷이 그러면 그렇고 그런 거 아니에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은 여성인 내게 “선생님도 그런 옷을 입냐”며 “도대체 왜”냐고 야단이었다. 한 학생이 모자를 쓰고 있기에 “너는 왜 모자를 쓰고 있냐” 물으니 “그냥 좋아서”라고 가볍게 얘기했다. 그럼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선택해서 착용하는 것은 무엇이 다르냐” 물으니 “그건 당연히 다르다”고 소리친다. 적절한 대답이 없을 때 아이들은 대개 화를 낸다.
그날 종일은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며 남/녀를 탈피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역할활동까지 해봤다. 그러나 그 날의 아이들에게는 이미 모자와 핫팬츠의 ‘선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너무나 견고한 그들만의 ‘패션철학’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만난 이 집단 아이들만의 문제였을까. 교육이 끝난 후 평가시간에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니 유난히 남자아이들 교육을 진행할 때 그런 질문이 많이 나온다는 실무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예쁜 사람이 입으면 괜찮고, 아니면 안 괜찮고, 짧은 옷을 입으면 위험하고 야한 어떤 것이라는 10대 초반의 아이들의 논리. 고등학생 이상의 청소년 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성인과 비슷하게 생각해나가는 시기여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초등학생들에게서까지 강한 불만으로 표출되어 나오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지점은 성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답습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연령이 대폭 낮아졌다는 사실도 놀랄만한 일이다. 그 어린 학생들마저도 ‘여성’의 몸을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간단하게 이분화 시키고, 거기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연결시킨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아이들도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우스갯거리로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됐다.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을 하려던 차에 최근 10대 청소년 연예인들을 상대로 60%가 신체 노출이나 과도한 성적 행위 장면을 강요했다는 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수 이은미는 음악성 보다 외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갖는 사회 분위기를 우려하며, 성적인 면이 강조된 걸그룹의 노래, 의상, 춤에 환호하는 이 사회를 ‘몰상식의 극’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벗겨놓고 대 놓고 섹시하다고 박수를 치거나, 꿀벅지, 꿀복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는 대중문화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는 것.
쏟아지는 대중매체의 벗기기 논란은 새삼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아무 손쓰지 않고 있었음에 반성하게 된다. 상품화되고 대상화되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공공연히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일상생활에까지 주변 사람을 대상화하고 외모로써 평가하는 지금의 일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아이들의 생각을 넓게 펼쳐주진 못할망정 오로지 외모로써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왜곡된 미와 과장된 외모 중심의 평가들로부터 벗어나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서영미/일다)
*광고 없이 독자의 힘으로 운영되는 독립미디어 일다!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서영미
<일다의 독자위원인 서영미님은 현재 십대들과 함께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선생님, 질문 있어요. 왜 여자애들은 그렇게 짧은 반바지를 입어요?”
“여자애들이 핫팬츠 좀 못 입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게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이지? 최근 들어 두 번이나 받은 질문이다. 고등학교 청소년 남자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한번, 그리고 초등학교 남자아이들과 교육하면서 한번. 성장기 자신의 몸의 변화나 성관계, 임신/출산에 관련한 질문들이 대부분인 편이라 이 질문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핫팬츠를 입지 말았으면 좋겠다니 이 무슨 말인가?
뜬금없는 질문이 궁금해 스무고개 하듯 계속해서 질문을 주고받으며 질문한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질문자는 한 명이었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질문에 아이들은 자지러졌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내가 자신들 생각대로 웃어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계속 물으니, 나중엔 아이들도 제법 진지하게 맞받아쳤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은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핫팬츠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
모자와 핫팬츠는 다르다?
“오크가 그런 걸 입는 게 말이나 돼요?”
판타지 소설이나 롤플레잉 게임에 주로 등장하는 괴물, ‘오크’족. 쭉쭉빵빵 몸매도 좋고 능력도 좋은 미녀캐릭터들에 비해 볼품이 없어 쉽게 무시당하고 힘만 센 캐릭터. 아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랬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입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건 당연히 ‘봐줄 만하다’는 것이다. 핫팬츠뿐만 아니라 미니스커트에도 역시 강한 불만을 표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이유를 제기했다.
“옷이 그러면 그렇고 그런 거 아니에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은 여성인 내게 “선생님도 그런 옷을 입냐”며 “도대체 왜”냐고 야단이었다. 한 학생이 모자를 쓰고 있기에 “너는 왜 모자를 쓰고 있냐” 물으니 “그냥 좋아서”라고 가볍게 얘기했다. 그럼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선택해서 착용하는 것은 무엇이 다르냐” 물으니 “그건 당연히 다르다”고 소리친다. 적절한 대답이 없을 때 아이들은 대개 화를 낸다.
그날 종일은 아이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며 남/녀를 탈피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역할활동까지 해봤다. 그러나 그 날의 아이들에게는 이미 모자와 핫팬츠의 ‘선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너무나 견고한 그들만의 ‘패션철학’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만난 이 집단 아이들만의 문제였을까. 교육이 끝난 후 평가시간에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니 유난히 남자아이들 교육을 진행할 때 그런 질문이 많이 나온다는 실무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예쁜 사람이 입으면 괜찮고, 아니면 안 괜찮고, 짧은 옷을 입으면 위험하고 야한 어떤 것이라는 10대 초반의 아이들의 논리. 고등학생 이상의 청소년 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성인과 비슷하게 생각해나가는 시기여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초등학생들에게서까지 강한 불만으로 표출되어 나오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지점은 성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답습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연령이 대폭 낮아졌다는 사실도 놀랄만한 일이다. 그 어린 학생들마저도 ‘여성’의 몸을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간단하게 이분화 시키고, 거기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연결시킨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아이들도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우스갯거리로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됐다.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을 하려던 차에 최근 10대 청소년 연예인들을 상대로 60%가 신체 노출이나 과도한 성적 행위 장면을 강요했다는 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수 이은미는 음악성 보다 외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갖는 사회 분위기를 우려하며, 성적인 면이 강조된 걸그룹의 노래, 의상, 춤에 환호하는 이 사회를 ‘몰상식의 극’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벗겨놓고 대 놓고 섹시하다고 박수를 치거나, 꿀벅지, 꿀복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는 대중문화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는 것.
쏟아지는 대중매체의 벗기기 논란은 새삼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아무 손쓰지 않고 있었음에 반성하게 된다. 상품화되고 대상화되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공공연히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일상생활에까지 주변 사람을 대상화하고 외모로써 평가하는 지금의 일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아이들의 생각을 넓게 펼쳐주진 못할망정 오로지 외모로써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왜곡된 미와 과장된 외모 중심의 평가들로부터 벗어나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서영미/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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