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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2) 버자이너 다이얼로그④
                                                                               <여성주의 저널 일다> 공숙영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연일 매우 덥습니다. 이 달의 ‘달거리’ 즉 생리가 이제 끝났습니다. 더워서 은근히 신경이 더 쓰이더니 끝날 때가 되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이 달에는 면으로 만든 대안생리대를 처음으로 구입하여 사용해 보았습니다. 손수 만들어 쓰는 분들도 계시는 모양인데 워낙 손이 둔해 그럴 엄두까지 내지는 못 했습니다. 일일이 빨아야 하는 게 번거롭긴 하나 확실히 면으로 되어 있어서 피부에 닿는 감촉이 훨씬 더 좋고 가려움증도 없습니다.
 
포장에는 ‘개지미’라는 우리 말 옛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생리대를 옛날에 ‘개짐’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비슷하게 ‘개지미’라고도 부른 모양입니다. 월경포, 월경대, 달거리포, 가지미, 서답이라는 명칭도 찾아집니다.
 
‘달거리’와 ‘개지미’ 
 


▲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e)의 <빨강과 오렌지 색의 칸나(Canna Red and Orange)>(1922)  
 
코스타리카로 떠나기 직전이었습니다. 함께 가게 된 한국인 동료 여학생들 사이에 코스타리카 생리대 제품의 품질이 다소 떨어지니 많이 준비해가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곳을 다녀온 이의 말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굳이 여기서 우리 공산품을 많이 사 가느니 대안생리대를 준비해서 가져갈 것을 고려해보게 되었습니다. 말만 들어보고 사용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을 기회로 삼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습니다. 떠나기 직전까지 처리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생기면서, 게으름과 귀찮음,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하리라는 관성적 본능이 발동하여  결국 집 앞 가게에서 원래 쓰던 공산품 생리대를 넉넉히 사서 여행 가방에 챙겨 넣는 것으로 준비를 마감하고야 말았습니다.
 
막상 코스타리카 현지에서 생리대 제품을 구입하여 사용해 보니 품질이 우리 제품보다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런 말을 전해 주신 분이 민감한 체질의 소유자이거나 낯선 곳에 가서 적응해야 할 때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 심리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대안생리대는 코스타리카로 떠날 때였던 재작년 여름으로 부터 두 해가 지난 올 여름에야 인연이 닿았습니다. 사실 코스타리카로부터 돌아온 후 한동안 생리를 쉬어야 했습니다. 때 아닌‘폐경’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생리통의 기억
 
몇 해 전 산부인과에서 자궁 내시경 검사를 처음 받은 때가 떠오릅니다. 그날따라 새벽부터 아랫배가 갑자기 너무 아팠습니다. 마침 생리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생리기간 초기에 원래 생리통을 앓는 편이었으나, 통증의 강도와 양상이 그 전과 달라서 다리까지 마비되듯 뻣뻣해지고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타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내과 검진에 이어 산부인과에서 자궁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생리 첫날이라 검사를 받는 가운데 피는 아래로 계속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피가 많이 나요.” 검사를 하는 의사 선생님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습니다.
 
검사 결과 제 자궁 안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크기나 모양으로 판단하건대 악성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 체크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새벽 제 아랫배를 엄습한 이상한 고통의 원인이 그 종양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검진 받는 것을 잊지 마세요.” 자궁경부의 이상세포를 얼리는 치료를 실시한 코스타리카의 한국인 여성 의사 선생님이 제 증상과 치료에 대한 소견서 및 확인서를 주면서 일러 주었습니다.
 
귀국한 후 그 의사 선생님이 권한 대로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서 재검진을 받았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치료 받은 자궁경부는 문제가 없었는데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이 터졌습니다. 원래 있던 문제가 커짐과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종양과 내막
 
 

▲난소 위의 자궁내막조직(오른쪽 보라색 부분) ©출처:위키피디아      
 
재검진과 함께 자궁의 종양을 체크하기 위해 자궁 내시경 검사도 또 받았는데, 새로운 종양이 난소에서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종양제거수술 결정이 났고 수술하는 김에 그 전부터 자궁 안에 살던 ‘선(先)주민’ 종양도 떼기로 했습니다. 수술을 하다가 난소로부터 종양만 제거하기 어려우면 난소를 아예 떼어낼 수도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수술 결과, 종양만 잘 제거되어 난소가 살아남은 한편, 자궁내막증이 발견되어 장에 증식되어 있는 자궁내막조직을 떼어내는 처치도 수술 중에 받았습니다.
 
자궁내막증이란 병은 자궁 안쪽에만 생겨야 하는 자궁내막조직이 자궁의 바깥에 뿌리를 내리고 증식하는 병으로서 자궁표면이나 난소, 난관, 심지어 장과 방광, 드물게는 폐에까지 이동하여 자궁내막조직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제 경우 자궁내막조직이 장 쪽에 자란 것으로서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막연히 상상해 보면 기이하고 으스스합니다. 자궁 안쪽에 있어야 할 조직이 장 쪽에서 솟아나다니, 돌연변이가 된 것만 같습니다.
 
자궁내막증의 대표적인 증세가 바로 생리와 함께 또는 생리 직전에 찾아오는 통증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여러 해 전 생리 첫날 응급실까지 가야 할 정도로 갑작스런 통증이 온 것이 자궁내막증의 전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폐경’을 겪다
 
수술 후에 한동안 호르몬 주사를 맞아 생리를 멈추게 하는 호르몬 요법을 처방받았습니다. 생리주간에 변하는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자궁내막증이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위적인 생리 중단에 의한 일시적인 완화일 뿐 다시 생리가 돌아오면 자궁내막증 또한 활성화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총 여섯 번의 주사를 맞았고 그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거짓말처럼 신기하게 생리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여성이라면 자연스레 달마다 있어야 할 것을 억지로 없애는 게 과연 몸에 좋겠느냐며 엄마는 걱정을 계속 하셨습니다. “그 주사 꼭 맞아야 하는 거라니?”
 
생리를 안 하니 생리대를 쓸 일도 생리통을 겪을 일도 생리로 인해 염려하거나 불편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편해졌습니다. 또한 일시적이지만 생리가 없는 동안 ‘폐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정말로 생리를 하지 않게 될 때 겪게 될 것들을 미리 연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완경’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작 <뿌리 (Roots)>(1943)       

‘폐경’을 앞당겨 체험하면서 ‘폐경’을 대신하는 ‘완경’이란 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경(完經), 생리하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의미입니다.
 
직접 여쭈어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이제 환갑을 넘긴 여성인 엄마는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 게 확실합니다. 엄마가 이른바 폐경기에 들어설 때 어떤 증상을 겪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전혀 몰랐고 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계획된 횟수만큼 호르몬 주사를 다 맞은 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생리는 거짓말처럼 신기하게 돌아왔습니다. 다시 꼬박꼬박 생리대를 준비하여 생리기간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생리하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속옷에 묻은 흔적을 보자마자 엄마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엄마, 피가 나요.” 제 말뜻을 바로 알아들은 엄마는 생리대를 챙겨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리를 즐거운 일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습니다. 즐거울 리 있겠습니까. 번거롭고 부자유스러워지고 무엇보다 생리통까지 앓았는데. 그런데 사라졌던 생리가 돌아오니 즐거움까지는 아니지만 반가움이 솟습니다. 이 반가운 감정을 잘 기억해 두면 앞으로 생리하는 것을 전처럼 아예 불편한 일로만 여기게 되지는 않을 성 싶습니다.
 
저의 ‘폐경’에 대해 염려하시던 엄마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생리가 잘 돌아왔어요.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엄마의 ‘완경’을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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