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도착했다. 전화 통화를 끝낸 몇 분 후, 저만치서 하얀 모시옷을 입은 이유순 선배가 지축을 울리는 듯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밥 먹으러 가자! 멋진 총각이 하는 식당이 있는데 너 소개시켜주마!” 덥석 내 손을 잡아 끌더니 훠이훠이 앞장서 걷는다.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거인의 발걸음처럼. 팔월 더위에 무작정 잡혀진 내 손은 종종걸음으로 이끌려간다. 그렇게 온몸으로 다가와 말을 걸고, 금새 마음자리 한 켠에 턱 하니 자리 잡는 유순선배의 인상은 순간, 안도 미키에의 동화에 나오는 머리를 부딪힌 곰을 떠올리게 한다. 곰벌에게도, 거북이에게도, 송충이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한 그 곰처럼,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에게 막걸리 잔 철철 넘치듯 자기를 퍼주는 사람. 자기..
▲ 불교사상을 공부하는 박선예 선예를 처음 만났던 3년 전, 아무리 봐도 그는 대학 새내기로 보이지 않았다. 성숙한 외모뿐 아니라, 조용조용한 말투에서도 어른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선예는 좀 가벼워지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했다. 선예를 아는 이들은 그의 어른스러움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조금은 발랄하고, 조금은 철없는 20대 여대생처럼 살아도 좋으련만…. 그러나 그의 어른스러움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언니 둘, 오빠 하나 있는 막내딸이에요. 아주 어렸을 때는 집안의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제가 미처 철도 들기 전에 언니와 오빠는 다들 절로 출가해버렸어요. 어렸을 때 일이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 마음에 많이 상처를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