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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사 공유한 베트남과 ‘다리잇기’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 본부장 구수정씨를 만나다

 

※ 한국여성재단 공익단체 여성활동가 쉼 프로그램 ‘짧은 여행 긴 호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 본부장 구수정씨   ©일다 
 

베트남전쟁(1960~1975)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이 가슴 아픈 역사를 한국에 알린 사람은 1999년 당시 호치민 시에서 공부하고 있던 구수정씨다. 그때 한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커다란 충격과 파장은 이제 잠잠해졌지만, 지난 17년 동안 구수정씨는 베트남에서 학살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활동을 하며, 2011년에 공정여행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 <아맙>을 만든 구수정씨는 베트남 곳곳에 있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소개하는 연재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다> 독자들과 만나고 있기도 하다. 아맙은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꼬르족의 전통 악기다. 두 사람이 대롱을 물고 호흡을 주고받으며 연주하는데,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대롱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한국-베트남 평화재단’(가칭) 설립 준비 차 한국을 방문한 구수정씨를 만나 <아맙>의 활동과 평화재단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베트남에서 사회적 기업 <아맙>에서 활동해오고 계신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된 것인가요?

 

<아맙>은 2011년 겨울에 만들었어요. 계기는 두 가지가 있어요. 2010년까지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이루어지는 시민단체 활동이나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구수정이라는 저 개인이 매개가 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었죠.

 

학살 문제를 다루던 초기에는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라는 연합체도 있었고, 동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10년 쯤 지나니까 진실위원회는 평화박물관으로 계승되고, 관련 사업들은 몇몇 단체들이 맡아서 하게 됐죠. 베트남에서 저 혼자 각 단체들의 사업을 다 감당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2010년쯤엔 굉장히 지쳤죠. 사업을 일원화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어요.

 

또 하나는,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NGO를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베트남 사회적 기업의 상당수는 NGO이면서 사회적 기업인 곳들이죠. NGO로서 존립 기반을 갖기 쉽지 않으니까 그 형태를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아맙>도 그런 셈이죠.

 

-<아맙>이 해오고 있는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아맙>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공정여행. ‘베트남 평화기행’을 하고 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의 과거를 만나고 싶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 현장에 가보고 싶다”는 한국인들의 요구가 있어요. 그런데 민간인 학살 지역에 들어갈 때는 베트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일반 여행사들은 할 수가 없죠. <아맙>을 만들기 전에 제가 17년 동안 학살 현장 답사여행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베트남 당국이 <아맙>만 허가해주고 있어요.

 

이 외에도 여행 문의가 많이 와요. 북부 트래킹을 하고 싶다, 사회적 기업을 탐방하고 싶다, 공정무역 산지에 가고 싶다 등등. 지금 그런 요구들을 <아맙>이 다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  서울지하철노조원들과 함께한 베트남 평화기행, 전쟁증적박물관을 안내하는 모습.  ©사진: 이수원 조합원 
 

두 번째는 공정무역이에요. 처음에 캐슈넛으로 시작했어요. 한국에 있는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이하 아공네)가 공정무역 상품을 수입하는데, <아맙>이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자와 아공네를 엮어주는 역할을 해요. 조합의 농부들이 영어나 컴퓨터 사용을 어려워하니까 서류를 작성해 드린다든지, 공정무역 인증을 받는 과정에 도움을 드린다든지, 세계공정무역 인증기구(FLO. 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 International)에서 메일이 계속 오는데 농민들은 (영어) 메일을 읽을 수가 없어요. <아맙>이 대신 받아서 중요한 내용은 번역해서 조합에 전해 주기도 하죠.

 

그래도 여전히 아맙의 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학살 피해자 지원 사업이에요. 한국과 베트남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하는 한국 단체들의 사업을 베트남에서 지원하거나, 베트남 정부의 허가를 받아주거나, 단체 활동가들이 베트남에 오면 일정을 짜주고 통역을 하고 관계 기관과 협의를 하는 등 지원하죠.

 

이런 역할들을 하다 보니 <아맙>은 사실 온전히 기업으로서 마인드를 갖기 어렵죠. 그동안 ‘베트남 평화기행’이 잘 돼서 유지해오긴 했지만, 수익 사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고생을 많이 했어요.”

 

-2013년부터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 기업” 연재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소개해주고 계신데요. 벌써 50여회가 되어가더라고요. 베트남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건 수월한 편인가요, 인증 시스템이 있는 건지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게 수월한 편은 아니에요. 한국처럼 사회적 기업이 정부의 인가를 받거나 등록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아요. 기업이 사회적 지향이나 공익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경우, 스스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는 거죠. 베트남도 마찬가지에요. 최근 베트남의 기업법이 개정되면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규정도 포함되긴 했지만, 시행령이 나오고 현장에 적용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CSIP(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 관계자를 얼마 전 만났는데 “앞으로도 2, 3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네요.
 

▲  베트남 사회적 기업 어우꺼(Au Co) 죽공예품 합작사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  ©사진: 이재갑 작가 
 

CSIP의 경우는 사회적 기업의 활동을 홍보해주거나, 네트워킹을 해주는 역할을 해요. 정부 기관이 아니니까 기업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만한 역량은 없죠. 그런데 제가 사회적 기업가들을 인터뷰 해보면 “교육이나 네트워킹 측면에서 CSIP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해요.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창업 단계에서 헤매고 있거나 방향성 못 잡을 때, 같은 분야의 멘토들을 연결해주는 거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멘토들도 연결해줘요. 홍콩의 멘토를 연결해주면서 항공권을 지원해준다든지 이런 식이에요. 또 어떤 기업이 재정, 회계 분야가 막혀있다고 하면 그 쪽의 전문가들을 연결해주죠. 전문가들이 직접 그 기업에 가서 분석해주고 시스템을 깔아주고 교육해주는 거에요. 그런 지원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정부에서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시킨 면이 있죠. 3년간 인건비를 보조받지만 이후엔 재정 자립해야 하는데, 자립하지 못한 곳이 많아요. 지속 가능한 기업 활동이 어려운 것이죠. 그런데 정부의 지원이 없는 베트남에서 사회적 기업이 활성화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베트남은 사회 시스템이 자유롭지 않잖아요. 사회주의 시스템 안에서 정치성이나 사회성을 띠는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굉장히 제약이 많아요. 그래서 지식인층이나 해외 유학파들이 베트남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출구를 찾다보니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태가 용이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들이 베트남 사회의 환기통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기업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사람들이 마인드뿐만 아니라 능력도 겸비하고 있는 진짜 인재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아이디어도 굉장히 참신하고요. 사회적 기업가들 중에서 40, 50대는 거의 찾기 힘들고 20, 30대가 많아요. 젊은 세대들이 하니까 에너지와 추진력을 더 갖겠죠. 

 

▲ <띠엔흥(Tien Hung)사 캐슈넛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모임> 조합원들. ©사진: 이재갑 작가 
  

-한국의 사회적 기업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베트남 기업들이 우리와 다른 점을 찾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한국은 사회적 기업이 많이 생겨난 게 정부 주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된 거잖아요. 또 사회적 기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초점이 ‘일자리 창출’에 꽂혀있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의 아이템이 다양하기 힘든 조건이죠. 그런데 베트남은 사회적 문제에서 출발해서 사회적 기업으로 가요. 내가 꽂혀있는 문제가 굉장히 명확하고,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면서 사회적 기업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인터뷰한 <함께 가요>(2012년 창립된 곳으로 하노이, 호치민 등 대도시의 교통체증과 공해를 해결하기 위해 ‘차 함께 타기’ 사업을 하는 하노이의 사회적 기업)의 경우도, 베트남의 교통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죠. 베트남같이 버스 체계가 없는 나라에서 그런 사업을 할 엄두를 낸다는 건, 정말 용감한 일이죠. 젊은 친구들이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니까 (일반)기업들도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이렇게 사회적 기업의 목적이 굉장히 뚜렷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강해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다보면 좌절도 오기 마련이죠. 창업 단계에서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고 정착 단계에서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처음에 사회적 기업들을 찾아가 인터뷰할 때는 ‘내년에는 이 기업이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같이 눈물을 흘리고 온 적도 있어요. 너무 상황이 안 좋아서.

 

초반에 인터뷰했던 <떠해>(Tohe)(2009년에 설립되어 장애아동이나 고아 등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림 교실을 열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패션 상품의 디자인으로 활용해 사업을 벌이는 사회적 기업)도 과연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잘 되고 있거든요. 건물도 증축하고 매장도 만들고 뻗어나가는 걸 보면, ‘목적이 뚜렷하니까 어려운 고비 고비를 의지를 갖고 건널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아맙>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와 생산자를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제공 
 

-<아맙>은 한국에 베트남 사회를 알리고, 공정무역과 공정여행을 통해 직접 다리를 놓고 있는데요. 가장 주요한 사업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죠?

 

네. 베트남 현지에서 피해자들을 직접, 가깝게 만나는 게 <아맙>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을 해요. 예를 들면 큰 병이 아니더라도 피해자 분들이 대부분 전에 다쳤던 부위가 쑤신다고 호소하시거든요. 그러면 파스를 전해 드리죠. 갑자기 피해자분이 돌아가시는 경우에, 급하게 장례를 치러 드린다든지.

 

우리가 감당을 못할 때는 이런 피해자들의 상황을 한국에 알려서 베트남 사업을 하는 단체들의 힘을 모으기도 하죠. 아직도 채 발굴되지 않은 민간인 학살지와 피해자들이 있지만, <아맙>의 제한된 역량으로는 지원을 늘리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계신 한-베 평화재단의 구상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한국 사회에 제기되었을 때부터 “한국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진상 규명을 해서 그게 사실이라면 공식 사과를 받는 데까지 가자” 이런 요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회가 이런 운동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인 것 같아요. 각 단체들이 학살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업만 개별적으로 남아있는 거죠.

 

이 문제는 엄연한 우리 과거사 문제이고, 사실 역사 문제는 50년, 100년 가는 문제잖아요. 그런데 개별적으로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하는 형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을 이어갈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지금까지 힘겹게 이어왔던 활동을 앞으로도 지속가능하게 하고 싶었죠. 17년 활동을 하면서도 어떤 구심점이나 연대체를 만들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재단을 추진하게 되었어요. 

 

▲  하미학살 45주년 위령제에서 참배하고 있는 베트남 평화기행팀  ©사진: 문용포 곶자왈작은학교 교사 
  

처음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어요. 지금은 50대 중반이죠. 더 이상 적은 나이가 아니죠. 이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미래 세대의 활동가를 양성하는 작업도 해야 된다는 요구도 받아요.

 

또 베트남 상황도 만만치 않아요. 전에는 개별 단체들이 들어와서 지방정부의 허가를 얻고 사업을 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에게 NGO 활동 허가증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어요. 베트남의 시스템이 복잡해서 허가를 받는 데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힘들어요. 그렇게 활동이 중지된 단체도 있어서 이런 단체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도, 재단 설립에 나서게 된 또 하나의 이유에요.

 

-한-베 평화재단 설립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나요?

 

사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재단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까 판단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됐어요. 거의 반나절 만에 49명의 추진위원들을 모을 수 있었죠. 놀라웠는데요, 아마 한국 사회 지식인들이 베트남 문제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정서가 어느 정도 성숙되어야 재단의 활동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 본부장 구수정씨  © 일다 
 

이번에 들어와서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연을 다니다보니까 대부분이 여전히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해서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그러나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해도 예전과는 반응이 다른 걸 확인했어요.

 

2000년 즈음에는 처음 듣는 얘기인 만큼 사람들도 충격이 컸어요.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 저질렀다고?” 저를 매국노로 몰아가기도 했고, 강의 도중 고함 소리가 나기도 했죠. 지금은 놀라긴 하지만 이 문제를 소화하기 어려워하거나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아요. 어떻게든 이 문제가 우리 안에 스며든 거고, 시민들의 의식도 어느 정도 성숙한 것 같아요.

 

-전에는 한국을 늘 피해국이라고만 상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동안 시민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는데, 한국-일본이라는 국가나 민족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역사인식을 넓히는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시민의식을 키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베 평화재단에 기대하는 바를 말씀해주세요.

 

한국 사회에서 미래지향적인 평화담론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사실 언제든지 전쟁이 가능한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잖아요. 다양한 평화담론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또, 재단은 젊은이들이 신나게 사고 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베트남 평화기행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만났어요. 여행에서 민간인 학살 현장을 돌아보고 피해자들을 만난 후에, 어른들은 한국에 오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몸에 스미는 것 같아요. “잊지 말아줘, 우리 이야기를 전해줘”라고 말하는 피해자들과 약속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길거리에서 엽서를 팔거나 친구를 붙잡고 얘기하거든요.

 

우리 미래 세대들의 역사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그게 오솔길처럼 흔적이 나면 언젠가 커다란 실천, 담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재단의 발기인은 그런 아이들도 포함하고 싶어요.  나랑 기자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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