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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재현하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는 영화
레니 에이브러햄슨 연출작 <룸>
※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굿모닝 램프’, ‘굿모닝 식물’, ‘굿모닝 달걀뱀’. 이 날 부로 다섯 살이 된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은 방 안에 놓인 담요, 옷장, 심지어 변기에게까지 차례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조이(브리 라슨)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양치 연습도, 케이크 굽는 것도, 한 쪽 벽면에 몸을 대고 자라나는 키를 표시하는 모습도, 별 탈 없이 평범한 일상의 시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다는 사실이나 비타민을 따로 섭취해야 하는 이유를 곱씹어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영화 <룸>
엠마 도노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룸>(아일랜드, 2015)은 2014년에 제작된 영화 <프랭크>의 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연출작이다. 감독은 납치와 감금, 강간으로 인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이라는 소재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초점을 살짝 옮겨,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정상성’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넘어 치유로 나아가게 되는 발걸음 밑에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영화 속 시공간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 나간다.
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고도 잔혹성을 드러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은 선정적인 재현 방식으로 인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사실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사건의 진실성을 담보하고 관객석에 고통을 전이시키기 위한 방법론이라면서, 폭력의 디테일을 불필요할 만치 구체적으로 묘사하곤 한다. 이런 영화들의 재현 방식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룸>에서도 부지불식간에 폭력적인 묘사가 튀어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굳어진 상태에서 영화를 마주했다. 하지만 <룸>이 사건을 보여주는 방법과 시각은 조금 다르다.
밤이 되고 미리 맞춰둔 타이머가 울리면 조이는 잭을 옷장 안에 넣어 재운다. 곧이어 번호 키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고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 가해자가 ‘룸’에 등장한다. 영화는 조이가 지속적으로 강간을 당해왔음을 암시하지만, 강간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또한 사건의 폭력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해자의 시선이나 행위, 혹은 피해자의 감각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장면은 옷장 안에서 숫자를 세면서 시간을 지나보내는 잭의 시각에서 묘사된다. 이렇게 폭력으로 구성된 장소 안에 자리 잡은 소소한 일상성을 보여주었던 것과 반대로, ‘가해자와의 마주침’이라는 몇 차례의 이벤트를 잭의 시선에서 묘사한 장면들은 생활 안에 깊이 파고든 일상적 폭력의 서늘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영화 <룸>(아일랜드, 2015)
납치와 감금과 강간을 포함하는 7년이라는 시간은 피해 장면에 대한 끔찍한 묘사를 통해 압축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은 잭에게 진실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 하에 조이 자신의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또한 가해자 닉을 나이 들고 무능해 보이는 평범한 느낌의 남성으로 그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납치 강간범인 가해자를 과장된 재현을 통해 악마화된 모습으로 묘사하면, 실재 가능한 현실을 오히려 판타지의 맥락으로 이동시켜버릴 수 있다는 맹점을 고려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룸>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론으로, 잔혹한 폭력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장면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강간 사건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폭력적인 강간 장면을 재현해야만 한다는 믿음은 게으름의 산물이라는 것을.
탈출, 작은 창문 밖 ‘진짜’ 세상으로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거나 닫을 수 없는 ‘룸’ 안에서 조이와 잭이 바깥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하늘로 뚫린 작은 창뿐이다. 환풍구에 대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행인에게도, 외계인에게도 그 소리가 가닿지 않는 ‘룸’ 속에서는 창을 통해 비친 하늘빛이나 창문 위에 떨어진 낙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가늠해볼 뿐이다. ‘룸’ 안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만 자란 잭은 바깥 세상에 대한 인식이 없다. 오직 엄마와 자신만이 세상의 ‘진짜’라고 생각한다. 조이는 그런 잭에게 진실을 전달하고,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영화 <룸>
잭은 진실의 무게에 겁을 먹지만, 유리컵을 눈에 대고 그 안에 비친 빛을 통해 천정 창문을 다시 바라보고, 벽의 바깥을 상상하며 벽면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창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드디어 ‘룸’ 밖으로 나온 잭은 둘둘 말린 담요 안에서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떠 처음으로 바깥 세상을 마주한다. 잭이 세상을 처음 만나는 순간은 카메라가 ‘룸’ 밖으로 처음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안에 갇혀있을 때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조건처럼 느껴졌던 ‘룸’은 바깥에서 바라보면 허약하고 초라한, 절대성을 상실한 공간이다.
잭은 창틀이 가리지 않는 하늘의 풀 샷과 나무, 전선, 철도 등 TV 밖의 ‘진짜’ 풍경을 난생처음으로 마주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계의 발견이자 시작점이다. 잭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조이의 썩은 이를 감싸 쥐며 그와 연결되어있다는 믿음을 통해 바깥 세상을 만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품고’ 다시 시작하는 삶
화면이 화이트아웃 되고 조이와 잭이 ‘룸’ 바깥으로 나와 만난 새로운 ‘안’은 큰 창으로 빛이 밝게 들어오는 병실이다. ‘룸’ 안에서 바깥으로, 또 다른 안으로 공간이 변화하며 조이와 잭의 세계는 커다란 전환을 겪는다. 잭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듯 새로운 세계는 문을 통과해 다른 문으로 나아가고 그 문을 열면 ‘안’과 ‘밖’이 존재하는, ‘전혀 멈추지 않는’ 세계다.
7년 간 ‘룸’ 안에 갇혀서 탈출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조이에게, 바깥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행복과 다른 말이 아니다. 하지만 7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세상에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은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좋은 샤워를 즐기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조이는 돌아간 집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으니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룸’에서의 시간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잭을 돌보는 일에 강박을 갖는다.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 방송 인터뷰에서, 조이는 세상의 편견을 마주하며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나고 만다.
물리적으로는 ‘룸’의 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조이는 마음의 창 안에 머문다. 반면 잭은 ‘플라스틱’처럼 자극에 적응해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관계를 시작해간다.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라서 조이에게 보내겠다는 잭에게, 그의 할머니는 혼자 강한 사람은 없으며 모두 서로를 강하게 한다고 말한다. 잭이 조이의 썩은 이로 연결의 힘을 확인했듯 조이는 자신에게 힘샘을 양보한 잭을 통해 살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이 열렸으니 더 이상 룸이 아니다”
▶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영화 <룸> 포스터
잭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다시 ‘룸’을 찾아간다. 두 사람이 마주한 그 공간은 절대성을 상실하고 일상마저 잃어버린 낡은 헛간일 뿐이다. 조이와 잭은 두 사람이 이곳에 살았다는 물리적인 증거를 확인한다.
듬성듬성 남은 일상의 흔적을 마주하며 정성스레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잭의 모습은 ‘잃어버린 시간’의 상처를 없던 것으로 잊어버리거나, 그 시간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룸’ 안과 밖의 두 개의 이야기를 정상과 비정상적 상태, 행복과 불행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조화하지 않는다. 안과 밖의 물리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문을 열고 열린 문을 통해 안과 밖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룸>은 “문이 열렸으니 더 이상 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려 깊은 잭을 통해, 마음 속에 ‘룸’을 가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넨다. ▣ 케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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