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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을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가?

의제강간 연령 상향, 더 확장해야 할 논의들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이후, 디지털 성범죄와 더불어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막을 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영향으로 지난 4월 말,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n번방 방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제6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 (2018년 12월 1일) 페미니즘 단체들은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협박’에서 ‘동의’ 기준으로 바꾸라고 요구해왔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그 중엔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만13세 미만에서 만16세 미만으로 상향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19세 이상의 성인이 만16세 미만인 사람과 성관계 등을 할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처벌된다.


이번 형법 개정으로, 만 16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용이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회가 강간죄 판단 기준을 폭행, 협박 등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꿔야 한다는 반성폭력 운동 진영의 강력한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죄가 성립하는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해버린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의제강간 연령 상향’과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될 논의 주제를 모아 <16세 미만의 ‘동의’: 가해자 처벌과 역량 보장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집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요하게 제기된 이슈들을 정리해본다.


‘연령’만이 위계인가? 성적 위계만이 문제인가?


의제강간은 성폭력이 성립하는지 여부에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연령 기준에 속하는 이들에겐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양지혜 공동대표는 “청소년이 어떤 방식으로 성과 연애를 경험하는지, 그 과정에서 위험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식의 권리 보장이 필요한지에 관한 이야기 없이, ‘성범죄가 심각하다’, ‘엄벌해야 한다’는 방식으로만 귀결되는 거 같아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6월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간 긴급 집담회 “16세 미만의 ‘동의’: 가해자 처벌과 역량 보장 사이에서” 현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양지혜 대표는 “여성 청소년이 (성적으로) 무지하고 순결하다는 이미지가 오히려 여성 청소년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근간”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청소년은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배우고 성을 멀리해야 할 것으로 교육 받지만, 지속적으로 성적 대상화와 착취를 경험한다”는 것. 여성 청소년은 그렇게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면서 정작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 보거나 표출하는 것에는 제한을 받는다.


“청소년들에게 금지된 건 연애나 섹스, 임신, 출산만이 아니라 사생활을 가지는 것, 쾌락을 추구하는 것, 생애주기를 벗어나는 것, 독립된 인격으로 사는 것 그 자체”라고 양 대표는 말했다. 그렇기에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동의’ 논의는 청소년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존중받고 있는지에 관한 논의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이 자원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 그냥 ‘너희는 자원이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판단하고 동의할 수 있고, 청소년 관점에서 성적 실천이 해석될 수 있는지 고민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지혜 대표는 의제강간 관련 논의가 연령에 머물지 말고 확장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령만이 위계를 만드는 요인이 아닐뿐더러, 성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많은 관계에서 청소년들은 비청소년과의 위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위계를 어떻게 다루고 협상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계속됩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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