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머리 짧은 여자, 조재] 애인을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S가 놀러왔다. 대한민국 지도 끝과 끝에 떨어져서 사는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계기로 친구가 됐다. 부산에서 꼬박 5시간. S는 눈을 보고 싶어 했다. 부산에서는 쌓인 눈을 보기 어렵다나. 마침 S가 오기 전날 이곳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아빠에게 친구가 부산에서 놀러오는데 눈이 와서 다행이라며 재잘거렸다. 아빠는 “눈 구경 제대로 하겠네” 하시더니 대뜸 네가 부산에 무슨 친구가 있냐고 물어왔다. 인간관계의 폭이 워낙 좁기에 아빠는 내 친구들을 어느 정도 다 꿰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봉사활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갑자기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다시 물어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생산강박[머리 짧은 여자 조재] 무엇을,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가 내가 사는 지역의 구인/구직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오는 커뮤니티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종일 들여다본다. “언니, 아직 쉰지 3일 밖에 안 됐어요.” G가 말했다. 일을 그만둔 뒤 12월 한 달은 편히 쉬려 했지만 괜히 마음이 조급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하루짜리 강연을 신청해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일이 잦다. 각자의 고민과 경험이 오가는 자리에서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청자’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 열심히 자기 경험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주 허무해진다. 나도 내가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지 모..